뉴스의 미래(1/2)
2018년 7월 19일  |  By:   |  IT, 칼럼  |  No Comment

* 존 미켈스웨이트 블룸버그 편집장이 지난 5월 쓴 칼럼입니다.


4월 28일, 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에 앉아있는 대신 흥미로운 밤을 보냈습니다. 보통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대통령은 단장이 속해있는 언론사의 편집장 옆에 앉죠. 이 영광은 저한테 올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트럼프는 다시 한번 주요 언론사를 무시하기로 하며 2년 연속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녁 대부분을 미국 저널리즘의 연단에서 기자들을 보고, 중세의 취한 군인처럼 테이블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이코노미스트>의 한 표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표지는 제가 잡지의 편집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왔습니다. 표지는 우리에게 친숙한 신문 제호에 쓰이는 글꼴을 하나씩 잘라 붙여, 몸값을 요구하는 포스터처럼 이렇게 외치고 있었죠. “누가 신문을 죽였는가?” 좋건 나쁘건 그 후 이 표지는 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올드 미디어”가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같은 새로운 매체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언론사가 신문 인쇄 제작을 포기하고 (인디펜던트), 회사가 파산하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모기업 트리뷴 퍼블리싱),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해고되고, 구글과 페이스북에 광고를 뺏기면서 표지의 문구는 적중한 예언처럼 되었죠. 또한, 2006년은 이 행성에서 가장 큰 신문이 될 무언가가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트위터입니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저널리즘의 경제적 위기는 “가짜뉴스”를 둘러싼 언론의 타당성과 효율성 논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트위터의 등장도 영향을 미쳤죠. 자유 세계의 대통령은 언론사를 통하기보다 유권자들과 직접 280자의 창에서 말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리를 속이며 즐거움을 얻습니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 내용이 맞다면, 러시아는 한 달에 1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비용으로 미국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기존 미디어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저널리즘이 트럼프를 추궁하거나 브렉시트를 막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언론에 의심스러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통령의 백악관 기자단 만찬 불참 소식은 (실제로 제 옆에 앉았던) 코미디언 미셸 울프의 발언을 두고 다투는 보도에 압도되었습니다. 울프는 그날 대통령과 백악관 직원들을 향해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마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할 정도의 혹평을 쏟아냈죠. 트럼프는 그 만찬이 실패한 것을 기뻐하는 트윗을 올려 다시 한번 기자들을 조롱했습니다. 언론사의 일원 중 몇몇은 울프의 발언이 검열되었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정헌법 1조를 수호해야 하는 언론인들이 꺼내기엔 아무래도 이상한 주장이죠.

저널리즘은 정말로 위험한 상태인가요? 더 가까이 들여다봅시다. 사실 뉴스는 쇠락하기보다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더 디지털화되고, 개인적이며, 자동화되고, 유료의, (궁극적으로는) 덜 가짜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는 여러모로 반복됩니다. 기존의 미디어는 살아남았고, 좋은 저널리즘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바꿀 영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독자를 효과적으로 분석한 유료 기사 서비스를 도입해 이미 부활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싫어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광고 대신 기사를 보여주지만, 웹사이트를 가끔 방문하는 독자들에게는 돈을 받는 대신 광고를 노출하죠. 2백만 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한 뉴욕타임스는 구독자 수를 1천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매달 뉴욕타임스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은 1억 명이나 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모두 수익 대부분을 구독료로 창출하고 있습니다. 콘데나스트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같이 광고에 의존하던 언론사들도 유료 온라인 구독 체계를 빠르게 정립하고 있죠. 대부분 사람이 자본주의와 거리를 둘 거라고 생각하는 르몽드와 같은 언론사도 이제 유료 기사 서비스를 도입해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도 자체적인 소비자 구독 사업모델을 정립하며 이러한 추세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장 데이터를 유료로 판매하는 가장 수익성 높은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이제 우리는 지난해 만든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유료 서비스를 블룸버그 온라인 사이트 전체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기존 미디어들의 콘텐츠를 받기 위해 돈을 지급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무료 뉴스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가디언조차 이제 매우 정중하게 독자들에게 기부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가디언의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응원하는 독자 80만 명이 기꺼이 가디언을 후원했죠.

이러한 변화는 왜 일어나는 걸까요? 부정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제 독자의 수와 상관없이 어떠한 미디어도 광고를 통해서는 큰 수익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죠. 소비자들이 돈을 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2006년, 소비자들은 이코노미스트 같은 소수의 매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웹 콘텐츠를 무료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죠. 소비자들은 이제 콘텐츠에 돈을 낼 의향이 있습니다. 생각과 정보가 중요한 지식 경제사회에서 뉴스는 아직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카푸치노를 사 마시는 돈이면 당신은 위에 언급된 모든 상품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경제로부터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한 제프 베조스는 2013년에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이며 질 높은 저널리즘에 투자했고, 유료 서비스를 확대했습니다. 이제 2006년 당시에는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던 대다수 미디어는 어떻게 해서든 유료 구독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좋은 소식이죠. 광고주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독자들에게 수익을 의존하면 편집국도 윤리적 딜레마를 겪을 일이 아무래도 줄어듭니다. 신문이 더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해당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가 많아진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겁니다.

 

(블룸버그, John Michkleth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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