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증후군: 나는 ‘가면을 쓴 사기꾼’입니다
2018년 6월 16일  |  By:   |  건강, 문화  |  1 comment

지난 5월,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디어 이벤트에 참석했습니다.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저널리스트들로 가득한 회의장에 들어서며 보풀이 생긴 카디건 끝자락을 꼭 쥐고 곱슬곱슬한 앞머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었어요.

웨이터가 슬라이스 된 오이와 프로슈토가 담긴 접시를 건네며 “크루디테(신선한 채소) 드시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한입에 세 조각을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이기고 미소와 함께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죠. 저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해야만 했거든요. 바로 ‘프로들 사이에 숨어든 ‘사기꾼’인 티 내지 않기.’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에 대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간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죠.

1978년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가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가면 증후군은 “높은 성취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똑똑하거나 유능하거나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믿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남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본인의 신뢰도, 권한, 성취와 관계없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다 거품이고 스스로 일종의 사기꾼이라고 느끼는 무기력한 감정인 것이죠.

이러한 심리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인생에 한 번쯤은 가면 증후군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가면 증후군이 소수집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케빈 코클리 텍사스 오스틴대 교육심리학 및 아프리카 디아스포라학 교수에 따르면 대표성(representation)이 결여된 소수집단은 스스로 외부인이라고 느끼기 쉬운데, 그들이 겪는 차별에 가면 증후군까지 더해지면 심각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코클리 박사는 “소수집단의 정신적 피해를 설명하는데 가면 증후군이 차별보다 더 중요한 예측자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제 예상대로 그대로 들어맞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기꾼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고, 코클리 박사도 소수자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하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소수자들이 직장에서 ‘사기꾼’ 대우를 받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로스앤젤레스 행사에서 HBO 코미디 시리즈 인시큐어(Insecure)의 공동제작 및 주연을 맡은 이사 레이를 만났습니다.

“‘네 이야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그때마다 정말 힘들었죠.”

할리우드에서는 그 어떤 업계에서보다 포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양성을 외치고 있지만, UCLA의 보고서는 여성과 소수집단이 여전히 매우 과소대표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레이는 이러한 현실이 가면 증후군과의 싸움을 더 두드러지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과 소수집단이 과소대표된] 현실 속에서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레이가 저서 <The Misadventures of Awkward Black Girl>에서도 썼듯이, “HBO 시리즈 걸스(Girls), 주이 디샤넬 주연의 뉴걸(New Girl), CBS에서 방영하는 시트콤 투 브로크 걸즈(2 Broke Girls). 이 세 드라마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여성(Girl)은 백인’이라는 공식이 깔려 있다는 거예요. 할리우드에선 그게 너무나 당연한 거고, 그래야지만 먹히는 거죠. 나머지는 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될 뿐이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소수 인종에 속했던 코클리 박사는 스스로 가면 증후군을 경험한 후 연구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저 자신이 가면을 쓴 사기꾼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다 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내가 여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이라도 알아챌 것만 같았죠. 그러면서 가면 증후군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요.”

상담심리학 학술지에 실린 코클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가면 증후군은 소수집단이 이미 겪고 있는 차별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코클리 박사와 동료 연구자들은 심각한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이 더 심한 불안감과 차별로 인한 우울증을 겪는다고 밝혔습니다.

“차별이 가면 증후군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요? 아니요. 하지만 분명 둘은 연관되어 있습니다.”라고 코클리 박사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가면을 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차별을 당했을 때 훨씬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어요. 저희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발견한 현상이죠. 저는 반대로 차별이 가면 증후군의 영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도 봅니다.”

링크드인에서 Global Diversity, Inclusion and Belonging 부서를 이끄는 로자나 두루티는 소수자의 경우 자신의 관점과 신뢰도, 권한을 스스로 경시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자꾸 자신을 의심을 하게 될 뿐 아니라 남들의 동의를 얻으려고 애쓰게 되죠.”

두루티는 소수자들이 회사에서 새롭고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매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는 여러분의 의견을 필요로 해요. 여러분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조직은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되는 거죠. 가끔 리더가 유일하게 의견을 낸 사람이고 나머지는 조용한 상황이 있는데, 그럴 때는 자신의 관점에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호해지는 것은 말보다 행동이 훨씬 어렵습니다. 특히 외부인이라고 느낄 경우 더더욱 단호하게 행동하기 쉽지 않죠. 두루티는 이는 조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회사가 나서서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은 코클리 박사와 두루티가 제안한 개인 차원에서 가면 증후군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동호인 모임에 가입하세요.

비슷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코클리 박사는 “가면 증후군을 심하게 앓는 사람들은 보통 혼자 고군분투합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생각,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코클리 박사는 “성별, 인종 등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로 이뤄진 모임에서 자신의 불안감, 취약성, 상처에 대해 털어놓아라”고 조언하며 동호인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동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직원들을 위한 사내 동호인 모임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고, 직원 리소스 그룹(employee resource group) 혹은 공통 관심사 그룹(shared interest group)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교 동창회를 통해 동호인 모임을 찾거나 링크트인,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좀 더 사적인 모임을 만들 수도 있겠죠. 핵심은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겁니다.

 

멘토를 찾으세요.

두루티는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멘토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멘토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이룬 성취와 일하는 방식, 사람을 사귀는 방식, 사고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을 찾으세요.”

두루티는 나만의 독창적인 관점과 능력을 계속해서 계발하도록 독려하는 멘토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신의 성취를 기록하세요.

코클리 박사는 매일 일기장에 그날 하루 동안 받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모두 상세히 기록하라고 권유합니다.

“일주일 혹은 한 달 동안 적은 기록을 다시 읽어보면서 ‘잘했다, 훌륭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던 일들을 떠올려보세요.”

자신이 가면을 쓴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스멀스멀 밀려 들어올 때, 일기장을 보면서 ‘나는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고,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상기하세요.

직장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일기장은 차별을 인지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코클리 박사는 “자신이 가면 증후군을 겪는 이유가 단순히 과소대표된 소수집단에 속해서인지, 아니면 실제로 차별을 받기 때문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차별을 당한다고 느낄 경우 가능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히 기록하고, 사내 반차별 정책과 연방 및 주 정부의 차별금지법을 찾아보세요. 

직장 일기를 쓰는 것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발전과 성취를 기록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인 기록이 다음번 연봉 협상 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실질적 증거가 될 수 있겠죠.

레이는 아직도 가끔 스스로 가면을 쓴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기억하기 위해 일종의 주문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야. 내가 여기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뉴욕타임즈, Kristin Wong)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