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중국의 성비 불균형,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2018년 5월 14일  |  By:   |  세계, 정치  |  2 Comments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가장 인구가 많은 두 국가의 문화적 선호와 정부 정책그리고 현대 의학의 조합은 유례없는 차원의 성비 불균형을 낳았습니다중국과 인도의 남성 인구는 여성 인구보다 7,000만 명이나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다양한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고독이 전염병처럼 번져가는가 하면노동 시장을 왜곡하고저축률은 올라가는 반면 소비는 줄어들고 있죠특정 부동산의 가치가 부풀려지고폭력 범죄인신매매성매매의 증가 추세와도 궤를 함께하고 있습니다또한, 이와 같은 변화는 인도와 중국의 국경 안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이웃 나라와 미주유럽의 경제에까지 영향을 줍니다인류는 그 현상을 이제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했고요.

인구학자들은 결혼하지 못하는 남성의 수가 수백 만에 이르게 될 것이고이것이 사회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중국에서 남녀 인구 차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인구 전체폴란드 인구 전체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3,400만 명의 남성이 평생 한 번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성관계도 거의 하지 못할 것입니다. 1979년부터 2015년까지 지속된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과 남아선호는 이러한 결과를 낳은 주요 요인입니다.

역시 남아선호가 뿌리 깊은 인도에서도 남성이 3,700만 명 더 많습니다인도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태어나는 여아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미혼 남성의 숫자가 늘어나고결혼 또는 성매매를 위한 인신매매 역시 늘어납니다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 태아 성별 선택은 이제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만연해있죠.

잉여 남성” 7,000만 명 중 5,000만 명이 20세 이하입니다. 15~29세 사이의 남녀 인구 차이는 수십 년 내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성비 불균형이 결혼에 미칠 영향이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남성들은 몇 안 되는 또래 여성을 두고 같은 나잇대의 다른 남성들뿐 아니라 아래위 세대의 미혼 남성과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인도와 중국은 뒤늦게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지만그러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침체된 삶

신부를 구할 수 없는 남성의 수가 늘어나면서이는 전통적인 가정의 리듬을 깨뜨리고 있습니다성인이 된 남성이 여전히 모친과 함께 살면서남아를 선호하던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노인이 된 후에도 아들에게 요리와 청소를 해주느라 고통받습니다결혼 여부로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던 남성들은 남성성의 위기를 느낍니다결혼을 하지 못해 사회생활에서 소외되는 남성들은 우울증에 시달리죠.

중국 남부에 살고 있는 리 웨이빈(30) 씨는 연애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나고 자란 산골 마을에서부터 10대 때 다닌 공장지금 일하는 건설 현장에 이르기까지 늘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 환경이었죠지금도 그는 담배꽁초가 굴러다니는 기숙사 방에서 5명의 남성 룸메이트와 함께 지냅니다. “여자친구를 찾고 싶지만 돈도기회도 없어요여자들은 눈이 높아서 차와 집을 원하죠저랑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리 씨가 연애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빈곤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단순히 여성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죠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이 큰 중국 사회에서 리 씨와 같은 남성들은 마른 가지라 불립니다그리고 마른 가지들은 사회에도 리스크로 작용하죠리 씨가 사는 지역의 남녀 성비는 118 대 100입니다그는 연애에 대한 희망을 아예 접은 지 오래죠여가 시간에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남성 동료들과 함께 가라오케와 발마사지숍에 갑니다. “제 인생이 그래요지루하고 외롭죠.”

인도 농촌에서 농부와 결혼한 옴 파티 씨는 딸을 원했지만아들만 일곱을 낳았습니다물론 아들을 낳을 때마다 마을 전체로부터 뜨거운 축하를 받았죠재산을 물려받고 노부모를 모시는 것은 아들의 일이니아들을 낳는 것은 곧 큰 축복이었습니다아들 일곱을 키우기는 쉽지 않았지만언젠가 며느리들을 맞아 이야기와 집안일을 나누고 손주들을 볼 생각에 힘든 시간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이 38세가 된 지금불법 성감별과 여아 낙태라는 관행은 화살이 되어 돌아왔습니다중매결혼을 추진했지만, 몇 안 되는 젊은 여성들은 모두 결혼을 한 상태였죠옴 파티 씨는 60세가 된 지금도 다 큰 아들들을 돌보느라 고된 하루를 보냅니다남편과 일곱 아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빵을 하루에도 수 파운드씩 구워내야 합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수레쉬 쿠마르(35) 씨는 한 차례 중매결혼 시도가 무산된 이후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매력적인 신랑감이 되기 위해 뒤늦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죠노총각이라고 불린 지도 이젠 오래쿠마르 씨는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부양할 처자식도 없으면서 일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말하죠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이 찢어집니다제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부인이 있다면 제게 차도 타주고 목욕은 언제 할지도 알려주겠죠결혼 안 한 남자는 사회에서 별 가치가 없어요다들 저 사람은 뭐가 문제라서 결혼을 못 했냐고 생각하죠.”

저녁은 가장 외로운 시간입니다그는 방안에 틀어박혀 TV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그에게도 고등학교 시절 짧은 로맨스가 있었죠하지만 연애가 들통나자 부모들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이후 쿠마르 씨의 가족은 그에게 어울리는 신붓감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한 점도 불지 않는 곳에 화분이 있고잎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그런 답답한 공간그게 제 기분이에요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거죠.”

신부를 얻기 위한 절박한 노력

중국에서 신부를 얻기 위해서는 집과 돈,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남성들 간의 경쟁이 군비경쟁에 비유될 정도죠. 중국인들의 높은 저축률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무역 흑자를 뒷받침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값이 싼 수출용 신발을 만드는 노동자가 번 돈으로 수입한 제품을 사지 않고 집을 짓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중국의 주택 가격 상승세는 꺾일 줄을 모릅니다. 남성들은 예비 장인·장모의 허락을 구하기 위한 돈을 모으는데, 10, 20년 전에는 몇백 달러에 불과했던 평균치가 일부 지역에서는 3만 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한때 중국에서 아들을 낳는 것은 노후 대비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 부모들이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희생을 하죠.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며느리의 책무였던 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리 데푸(21) 씨는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중국의 젊은 남성입니다. 7년 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시골집을 떠나 대도시로 향했죠. 가족들이 저축한 돈을 몽땅 털어 고향에 방 10칸짜리 집을 지었습니다. “지금 제 주변엔 또래 여성이 전혀 없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집을 지어두는 거예요.” 리 씨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 역시 도시의 공장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예비 장인·장모에게 줄 “지참금”으로는 1만 달러 정도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공장에서 버는 돈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자들이 별로 없기도 하고, 대부분은 가난한 시골로 시집오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아내를 얻으려면 꼭 집을 지어야 합니다.” 손수 타일을 깔아 집을 짓고 있는 주 하이지앙(25) 씨의 설명입니다. 그는 평생 고향에서 살고 싶었지만, 신부를 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도시로 향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도시로 온 남성들의 의지는 대단합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하는 작업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죠. 그렇게 일해서 고향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을 모은 사람들에게도 결혼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눈이 높다면 더 어렵죠. 도시에는 남자들도 많으니까요.”

외국인 신부

짝을 찾지 못한 중국 남성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합니다. 8천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내고 외국인 신부를 찾아 원정에 나서죠. 결혼하기 위해 중국에 오는 여성들에게도 국제결혼은 큰 도박입니다. 일자리를 약속받았다가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죠. 새로 이룬 가정에서 며느리의 위치는 가장 아래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구조에서는 모든 연령대에서 짝없는 남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남성들도 여전히 결혼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보다 어린 남성들과 그 또래 여성을 얻기 위한 경쟁에 참여하게 되죠. 2050년이 되면 중국 결혼 시장에는 여성 100명을 두고 경쟁하는 남성이 150~190명에 이를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여성들의 이른바 “상향 선택” 경향도 한 요인입니다. 여성들은 자신보다 교육수준, 경제력,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을 찾기 위해 시골을 떠나고, 시골에 남는 남성들은 더욱 절박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중국에서 짝을 찾을 수 없었던 리우 화 씨는 외국인 신부를 맞았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의 도움으로 날씬하고 웃는 얼굴이 예쁜 캄보디아 여성을 선택했죠. 가족들의 걱정거리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신부가 신랑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들의 시선이었죠. “외국인 신부는 중국인 신부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도망갈 거라는 말도 많았어요. 하지만 제 아내는 도망가지도 않고 이웃들과 잘 지냅니다. 이제는 다들 좋은 부인 얻었다고 말해요.” 화 씨와 결혼한 릴리 씨는 가난한 고국을 떠나 중국으로 들어오는 수십만 외국인 신부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제 중국의 시골 지역에서 외국인 신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결혼 안 한 남자가 50~60명인데 결혼 안 한 여자는 한두 명뿐이었어요. 40이 넘은 노총각들에겐 캄보디아 여성이 두 번째 기회죠.” 하지만 외국인 신부들에게 중국행은 큰 도박입니다. 안 그래도 며느리의 지위가 낮은데 “팔려 온” 외국인 며느리의 지위는 바닥이고,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니까요. 릴리 씨의 어머니는 중국행을 반대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린 남동생 셋과 남게 되자 다른 방법이 없었죠. 그녀는 중국으로 오면서 450달러 정도의 돈과 여행 경비, 공장에서의 일자리를 보장받았습니다. 물론 결혼을 하는 조건으로요. 한편 화 씨는 중국에서 신부 후보 세 사람의 가족들에게 여성을 만나보는 조건으로 5천 달러에서 4만 달러에 이르는 “보증금”을 내야 했습니다.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면 일부를 돌려받았지만요. 캄보디아 결혼 중개인에게 15,000달러를 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결정한 이유입니다. 결혼사진이 걸린 집에서 두 아들과 지내는 두 사람은 행복하다고, 이것이 거래가 아닌 진정한 결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릴리 씨는 남편의 수입이 생각보다 적었고, 약속받은 일자리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속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개인에게 속아 큰돈을 뜯긴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집을 떠나 있는 때가 많아 릴리 씨는 하루 대부분을 아이들을 돌보며 지냅니다. 어머니가 신혼집을 방문했을 때는 1,500달러라는 큰돈을 드리기도 했죠. “남편은 착한 사람이고, 저한테도 잘 해줘요. 이제는 아이들도 있으니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릴리 씨는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 32세 여성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갔다가,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남성과 결혼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넌 내가 돈 주고 사 온 노예야, 내가 원하면 너한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녀는 남성의 집에 감금된 채로 생활했고, 하루 네 차례씩 성관계를 강요당하기도 했습니다. 거절하면 폭력이 돌아왔죠. 아이를 낳은 지 7일 만에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했을 때도 거절하자 구타가 이어졌습니다. 임신했다가 유산을 한 적도 있었지만, 가족이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아 죽을 뻔한 적도 있고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고, 돈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 처음 3년간은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견디다 못해 오빠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픈 어머니를 본다는 핑계로 캄보디아에 돌아올 수 있었죠. 하지만 아이는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성비 불균형 문제는 이렇게 이웃 국가들에 리스크를 안겨줍니다. 서구에서 신랑감을 찾던 러시아 여성들도 이제는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피부가 하얗고 얼굴이 서구적인 러시아 여성들은 중국 외국인 신부 시장에서 큰 인기죠. 또한, 교육 수준이 높으면서도 서구 여성들만큼 “해방된” 존재는 아니라는 인식 역시 인기 요인입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로 떠나는 “신붓감 찾기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은 5천 달러가량입니다. 며칠간 현지에서 10~20명의 여성을 만나볼 수 있죠. 결혼이 성사되면 추가 비용을 지급합니다.

숫자가 많은 쪽은 역시 베트남 여성입니다. 이들은 중국 여성들보다 요구하는 것이 적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있죠.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밝고 눈이 크며 날씬하다는 점도 인기 요인입니다. 중국인 남성이 베트남 남성보다 성실하고 가정적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중국 남성을 선호하는 베트남 여성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성업 중인 중국-베트남 결혼 중개 업체는 신부가 처녀가 아니면 중개료를 돌려주고, 1년 안에 도망가면 다시 소개해준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있습니다. 라오스나 미얀마에서 중국 남부로 들어오는 외국인 여성들도 많죠. 이들은 더 나은 신랑감을 찾아 대도시로 떠나는 중국 여성들의 자리를 메꾸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의 기아 사태 이후, 북한에서 건너오는 외국인 신부들도 생겨났습니다. 다수가 가정 폭력이나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는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폭력에 맞서다

인도 북부의 하리아나주에서는 지난 10년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가 127% 증가했습니다. 이 지역의 젊은 남성들은 변변한 일자리도, 여가활동도 없다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다수는 지루함과 좌절감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합니다. 자기 자신이 소극적인 여성을 쟁취해내는 볼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으로 여기면서요. 인도 정부가 태아 성별 선택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관행은 여전합니다. 딸은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도 어렵고 결혼할 때 지참금도 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여아를 낙태하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고트라 타파 다히나 마을의 여고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은 매일같이 등하굣길에 당하는 성희롱을 참다못해 등교 거부와 단식 투쟁에 나섰죠. “이브 티징(eve teasing, 이브 놀리기)”이라고 불리는 길거리 성희롱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인도에서 오랫동안 큰 사회 문제였습니다. 성비 불균형이 심해지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죠. 보수적인 인도 북부 마을 7천여 곳에서는 “잉여 남성”이 마을마다 150~200명씩은 족히 있습니다. 이들이 값싼 술을 마시고 길 가는 여성을 괴롭히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긴 남자가 너무 많아요.” 시위를 이끄는 여고생 니키타 차우한(14)의 말입니다. 이들은 작년 5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연좌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탈수 증세로 쓰러지면서도 서로 손부채질을 하고 물을 떠먹이며 시위를 이어나갔죠. 마을 이장과 어머니들이, 그리고 이웃 마을 여성들이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인도에서도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지역입니다. 여성 100명 당 남성이 133명이죠.

“이브 티징”을 하는 남성들은 자신들이 무해하며, 일부 여성들이 자신들을 부추기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20세 대학생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보수적인 부모님에게는 어떤 조언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기는 쉬우니, 본보기로 삼을만한 것은 볼리우드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뿐입니다. 볼리우드 로맨스 영화는 스토킹과 강간을 미화하는 장르라는 비판을 받고 있죠. “여자가 싫다고 해도 남자가 계속 따라다니면 결국 여자가 넘어오잖아요.” 이런 남성이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에 이르다 보니 정부는 “착각에 빠진 로미오들”을 단속하기 위해 특별 순찰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트라 마을 여학생들의 시위는 작은 승리를 끌어냈습니다. 무더위에 쓰러져가는 소녀들의 사진이 주요 일간지를 연일 장식하자 학교 당국이 조치에 나선 것입니다. 우선 당국은 11학년과 12학년 수업을 마을로 옮겨, 학생들이 먼 길을 걸어 학교까지 오지 않아도 되도록 했죠. 문제가 된 남성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근본적인 조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승리는 승리입니다. 여학생들과 연좌 농성을 함께 한 마을 이장은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인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TV와 인터넷으로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면서 젊은 세대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상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지만, 여학생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투쟁에 나서기 전까지는 우리 마을이 이처럼 진보적인 곳인 줄 몰랐어요. 다들 우리를 지지해줄 줄도 몰랐고요. 우리는 이제 가만히 있지 않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Simon Denyer, Annie Go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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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수

    미국에서 인종간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자로 욕 하는게 미국의 주류언론인데 그런 언론들이 중국인들이 같은 인종인데 민족이 다른 사람끼리 결혼하는건 반대하는구나. 이걸 보니 백인이 하면 폴리아모르인데 이슬람이 하면 일부다처제라는 어떤 네티즌의 댓글이 생각났다.

  • Anna Kyoungmee Lim

    한국이랑 비슷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