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스푼 전쟁, 엘리트주의에 대한 조롱인가 또 다른 성차별인가
2018년 4월 2일  |  By:   |  세계  |  4 Comments

21세기 식문화 전쟁이 후세에 기록으로 남는다면 “에그스푼 논쟁”은 중요한 챕터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불 위에서 직접 조리할 수 있도록 긴 손잡이가 달린 계란 조리도구를 일컫는 에그스푼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밈으로, 미투 운동에서는 새로운 전선으로, 공예품 시장에서는 250달러짜리 상품으로 떠올랐고, 유명 셰프인 앨리스 워터스와 앤서니 보데인 사이의 대립을 낳기도 했죠.

모든 전쟁에는 역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에그스푼 전쟁의 서막은 2009년 오가닉 쿠킹의 대모와도 같은 앨리스 워터스가 시사 프로그램 “60분”의 한 코너에 등장해 진행자 레슬리 스탈에게 에그스푼으로 계란을 조리해 준 장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워터스는 윌리엄 루벨의 저서 “불의 마법: 화로 요리: 모닥불과 캠프파이어를 위한 100가지 레시피”에서 처음 에그스푼을 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금속 제조 명인인 앤절로 개로에게 의뢰해 구입한 에그스푼을 사용했죠. “(에그스푼을) 바라보는 것, 또 들고 있는 느낌이 좋아요. 프라이팬으로 요리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주도적인 요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죠.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면이 있달까요.”

그러나 워터스가 방송에서 에그스푼을 사용하는 모습은 몇몇 시청자를 자극했습니다. 당시 미식 여행 프로그램인 “노 레저베이션스”를 5시즌째 이어가고 있던 셰프 앤서니 보데인이 그중 한 사람이었죠. “60분”이 방영된 직후 보데인은 워터스가 계란 하나 요리하는 데 장작을 잔뜩 썼다며 그녀를 “하와이언 드레스를 걸친 폴 포트”라고 비난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선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에그스푼을 엘리트주의적 요리의 상징이자, 슬로우 푸드 운동의 짜증 나는 모든 면을 대변하는 존재로 보게 되었죠. 이들은 부엌에 화로를 가진 사람은 아주 돈이 많거나 몹시 가난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며, 일하는 부모들이 불 위에서 계란 요리를 할 시간이 도대체 어디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선의 반대편에는 어렵게 구한 신선한 목장 달걀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그스푼이 현실성 없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더라도 건강에 나쁜 가공식품으로 넘쳐나는 맹목적인 기술 지배 문화에 대한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에그스푼은 편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워터스의 재단에서 일하는 요리 평론가 대니얼 듀앤은 워터스의 유혹으로 “에그스푼파”에 합류했습니다. “워터스가 장난스럽게 저를 보면서 ‘계란 하나 해드릴까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죠? 일단 불을 피워야 하거든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에그스푼은 “쿠킹 라이트”와 같은 요리 잡지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점차 메인스트림으로도 진출했습니다. 작년에는 디자인 웹사이트 “리모델리스타”가 에그스푼을 두고 “전설적”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했죠.

올해 1월에는 워터스의 재단 출신이자 요리 평론가인 타마르 애들러가 “뉴욕 매거진”에 기고한 칼럼에서 에그스푼에 대해 적었습니다. 글에서 애들러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지만, 나 역시 직접 제작한 에그스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사랑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에그스푼 전쟁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인 칼럼이었죠. 술자리에서, 또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은 에그스푼을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에그스푼”이 금수저의 새로운 상징 정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맥락이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포스트 하비 와인스타인 시대”, 전문 요리사들의 세계에도 젠더 불평등과 성폭력, 성희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에그스푼은 “주방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에그스푼을 조롱하던 이들은 이제 새로운 공격을 받게 되었죠.

미식 웹사이트 “엑스트라 크리스피”의 수석 편집자 캣 킨스먼은 에그스푼 논쟁에서 드러난 성차별주의에 대한 칼럼을 썼습니다. 킨스먼은 에그스푼을 처음 들고나온 이가 나무 십자가에 매단 양고기를 불 위에서 요리하는 조리법 등으로 주목받은 프랜시스 멀먼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워터스는 실제로 멀먼에게도 직접 아끼는 에그스푼을 선물한 적이 있죠.)

요리책 저자이자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칼럼니스트인 사민 노스랏 역시 가세했습니다. 화로 위에서 에그스푼을 사용해 계란을 요리하는 것보다 300달러짜리 수비드 기계를 쓰는 것이 훨씬 더 엘리트주의적이라면서요. 그녀는 두 가지 방법의 차이가 에그스푼은 여성이 쓰고, 수비드 기계는 남성이 쓰는 것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꼬았죠. 에그스푼이 대변하는 가치를 똑같이 이야기하면서도 오히려 칭송 일색의 주목을 받은 유명 셰프 댄 바버를 예로 들면서요.

마지막 반격의 주인공은 앨리스 워터스의 딸 패니 싱어입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웹사이트에 판매용 에그스푼을 올렸습니다. 워터스의 디자인으로 캘리포니아의 여성 장인이 직접 제조한 물건이죠. 이 에그스푼의 판매가는 250달러로, 가격의 5%는 워터스의 “학교 채소밭 프로젝트”에 기증됩니다.

워터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 도구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 마케팅한 적이 없습니다. 이 의외의 결정에 대해 싱어는 에그스푼이 사고방식의 문제이자 사회적 분위기의 문제라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스푼 하나의 가격을 그렇게 높게 매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반대파의 공격에 명분만 더해주는 게 아닐까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에요. 여성과 남성이 다르게 취급받는 것이 우습죠. 남성 셰프가 자신만의 특별한 조리 도구를 선보일 때 ‘소중한’ 같은 단어를 써서 조롱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졸지에 “미투 운동 스푼 지부”의 선봉장이 되어버린 워터스는 딸의 행보를 지지합니다. “너무 재밌죠. 한편으로는 남자아이들도 에그스푼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불을 가까이서 느끼고, 단순한 생활에 한 걸음 가까이 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감수성이 풍부해집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남성으로 자라나서 그런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거예요.”

이 시점에서 에그스푼 반대파의 수장인 보데인의 의견은 어떨까요? 그는 에그스푼 전쟁에 성차별주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에그스푼은 성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있는 척 허세를 부리느라 더 큰 악행을 저지른 남성 셰프들도 엄청 많을 거예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비웃을 대상이 충분하다는 거죠.”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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