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 EU, 그들의 운명은?
2018년 2월 28일  |  By:   |  세계, 정치  |  2 Comments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를 보호하고 엘리트 진보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정부가 낙태 전면금지 법안을 추진한다.

대통령은 동성결혼을 절대 합법화할 수 없다고 공표한다.

인접국에서 유입되는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운동이 벌어진다. 상당수의 난민이 무슬림이라는 이유에서다 .

시민단체들은 외국인 혐오, 이슬람 혐오, 반유대주의가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고 발표한다.

극우파 운동이 기세를 부리면서 유럽 전역에 극단주의를 퍼뜨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서 학계에서는 이로써 정부의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우려를 표한다. 동맹국들은 이러한 정부의 행동에 분노한다.

그리고 사법부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일어난다.

2년 동안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13개 법안이 통과된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선거의 정당성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을 포함한 사법부 전체가 이제 정부가 심어놓은 사람들로 들끓는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읽은 모든 상황이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2015년 이후로 폴란드에서 모두 실제로 발생한 일들이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리 심각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자유, 민주주의, 법치(法治)의 근본 가치를 표방하는 EU가 왜 폴란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폴란드가 자유민주주의를 등지고 독재주의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바르샤바의 싱크탱크인 공공문제연구소(Institute of Public Affairs)의 야섹 쿠차르치크 소장은 “폴란드는 독재를 향해 표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고 정치학자들이 ‘다수제(majoritarian)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의회 다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수 의견은 무시하는 거죠.”

일반 대중의 견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폴란드 사회가 현재 심각하게 분열된 것만은 사실이다.

쿠차르치크 소장은 “거의 모든 이슈에 있어서 집권 다수 세력과 야당 세력이 막상막하로 대립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은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좀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야당의 내부 분열을 틈타 발 빠르게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폴란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담 자이크는 성공한 크라쿠프 출신 기업가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일의 약 90%를 지지한다.

자이크는 “정부는 소수의 부유한 진보 엘리트들의 배를 불리는 게 아니라, 서민 가정에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등 평범한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유럽 언론들의 보도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편향됐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국민들은 폴란드에서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죠. EU와 폴란드가 지금처럼 갈등을 겪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논란이 되는 폴란드 정부의 사법부 개혁에 EU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상황을 두고 폴란드와 EU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기존의 사법부가 비효율적이고 느릴 뿐만 아니라, 구소련 시대의 사건들을 맡았던 “공산주의” 판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EU 집행위원회는 폴란드에서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EU 집행위는 급기야 회원국 제재에 있어 최후의 수단으로 꼽히는 ‘리스본조약 7조’ 카드를 꺼내 들었고, 최악의 경우 EU 회원국으로서 폴란드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방안마저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극우파 단체 내셔널 무브먼트 소속인 로버트 위니키 하원의원은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의 지지세력만 더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폴란드 사회에는 위니키 의원처럼 폴란드가 동유럽 반자유주의의 축이 되어 EU에 대항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위니키 위원은 특히 EU가 무슬림 난민의 ‘침입’을 부추겨서 폴란드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려 한다고 우려한다.

“지금은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규모 경제 위기가 닥치면 서유럽의 국민들이 자국으로 유입된 무슬림 및 아프리카 난민들과 내전을 치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거예요. 폴란드를 이러한 위기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폴엑시트(Pol-exit: 폴란드의 EU 탈퇴)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어요.”

물론, 이와 같은 견해는 폴란드 내에서도 아직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폴란드는 EU가 제공하는 인프라 펀드의 최대 수혜국이기 때문에 EU 회원국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들이 원하는 것도 EU의 변화이지 폴란드의 탈퇴는 아니다.

법과정의당의 아르카디우스 물라치크 의원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폴란드는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EU 내에서 독립국으로써 자주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고 국익을 보호하려는 것뿐이고, 그래서 EU와 마찰이 생기는 겁니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에는 EU 회원국들이 EU가 제공하는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면서도 반드시 회원국에 지워지는 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이 자리한다. 하지만 폴란드의 야당 진보 세력은 이러한 발상이 궁극적으로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반정부단체 오비와텔레RP에서 활동 중인 사회운동가 콘래드 코르제니오스키는 “현 정부의 적대적인 정책 때문에 폴란드와 EU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봐 매우 심려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돌아볼 때, EU에서 멀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동쪽으로, 푸틴에게로 향하는 거죠.”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폴란드와 EU의 미래는 어디로?

지난 12월, EU 집행위는 폴란드 정부가 사법 개혁을 취소하고 EU의 권고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3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었다. 그 이후의 사건들은 양측이 궁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분쟁이 폴란드와 EU 양측 모두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EU가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데 실패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EU의 신뢰도가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만약 폴란드 정부가 지금의 노선을 고수한다면 폴란드에 대한 EU의 지원금이 끊길 것이고, EU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는 유럽 통합이 지닌 경제적인 잠재력을 대변하는 국가였다. 폴란드는 EU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으로는 8위, 인구로는 6위를 기록하며 머지않아 EU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주목받았다.

지금 폴란드는 하루아침에 왕따 신세로 전락했다.

포퓰리즘은 폴란드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는커녕 폴란드의 미래를 갉아먹었고, 덕분에 이제 폴란드는 유럽의 중심이 아닌 영영 변두리에 머무는 국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ABC)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