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소원하게 지내면 정말로 몸과 마음에 해로울까?
2017년 12월 29일  |  By:   |  건강, 문화  |  No Comment

부모, 형제자매, 아이들까지 적어도 삼대가 모두 한데 오손도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거의 모든 나라의 명절과 연휴를 장식하는 비슷한 장면일 겁니다. 가족이 빠진 휴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몇 년간 불화 끝에 휴일이나 명절에도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도 드리지 않고, 가족 모임이 있어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식 가운데 누군가를 특히 싫어해 부모님 댁에 가도 환영받지 못하리란 것을 알게 된 자식이 자연히 발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5년간 가족관계가 소원해지는 현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연구진이 내놓은 결과는 가족관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정설과 달랐습니다. 또 가족끼리 소원하게 지내는 사례가 실제로 전혀 드물지 않다고 연구진은 덧붙였습니다.

가족 사이에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넓게 정의하면 계속된 불화와 갈등 끝에 누군가 다른 가족과 연락을 끊고 남처럼 지낸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에 파병돼 있거나 부득이한 이유로 연락이 뜸해진 건 물론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로건에 있는 유타 주립대학에서 통신과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크리스티나 샤프 교수의 말을 빌리면 “적극적으로, 의지를 갖고 다른 가족과 거리를 두고 그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 관계는 자연히 소원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영국 엣지힐대학교에 출강하는 루시 블레이크는 <가족이론학>에 실린 소원한 가족관계를 다룬 논문 51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블레이크 박사는 자신의 연구가 가족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실제 사람들이 겪는 가족관계를 당위나 이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가족관계가 소원해지는 데 관한 대중의 오해가 꽤 여러 가지 있었는데, 최근 들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몇 가지 오해와 편견은 바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관계라도 그 관계가 평생 끈끈하리라고 가정하는 건 이 세상의 모든 커플은 절대 헤어지지 않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처럼 순진한 가정입니다.

 

잘못된 믿음 1: 가족관계는 갑자기 소원해진다

대개 관계가 멀어지는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급격히 틀어지는 일은 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오랜 시간 녹이 슬고 먼지가 앉듯 바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란 것이 갑자기 깨지고 끊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호주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카일리 아길리아스는 지난해 “소원한 가족”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책은 관계가 소원해지는 데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린다고 쓰고 있습니다. 다툼 끝에 생긴 상처와 배신, 섭섭함과 화가 계속 쌓이면서 상대방을 향한 신뢰는 점점 사라지곤 합니다.

지난 6월 발표한 논문에서 샤프 교수는 성인 52명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이 자기 부모와 거리를 두는 방법은 무척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냥 부모가 사는 데서 먼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딸이나 아들의 역할에 충실하고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려는 모든 노력을 더는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48세 여성은 아버지와 33년간 어떤 연락도 주고받지 않다가 마지막에 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에도 물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위의 사례는 다소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보다는 상투적이고 가식적인 알맹이 하나 없는 안부 주고받기에 그치는 대화를 줄여가거나 연락 자체를 점점 뜸하게 하는 사례가 더 흔합니다. 한 21세 남성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머니에게는 가끔 전화도 드리고 문자를 보내지만, 아버지와는 직접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두 분이 아직 함께 사시니까 제가 어머니께 연락을 하면 아버지가 알게 되시겠죠. 근데 그게 불편하신가봐요.”

샤프 교수는 소원해지는 것은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서구 문화에서 가족을 용서하지 않으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도 어렵지만, 그 거리를 계속 유지한 채 소원해지는 건 더 어렵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소원한 관계가 굳어지고, 더 오랜 시간 뒤에는 아예 관계 자체가 끊어지게 됩니다. 오타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니콜라우스 마크(47) 씨는 지난 3년간 가족 대부분과 거의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모, 형제들과 마음속에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10년 전의 일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의 괴팍한 기질을 견디기 힘들었고, 특히 명절 때마다 보기도 싫은 가족과 억지로 식사를 같이해야 하는 게 그에게는 큰 고역이었습니다. 마침내 마크 씨는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 친지에게 발길을 끊었습니다.

마크 씨의 아버지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인터뷰는 거절한 채 이제는 니콜라우스는 자기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남이나 다름없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잘못된 믿음 2: 소원한 가족은 드물다

지난 2014년,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 스탠드얼론(Stand Alone)이 영국 전역에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영국 성인 2천 명 가운데 약 8%가 가족 중 누군가와 사실상 연을 끊었다고 답했습니다. 이를 전체 국민으로 환산하면 약 500만 명이 가족 중 누구와 아예 담을 쌓고 산다는 뜻입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19%는 자기가 아는 친척 중에, 혹은 자기 자신이 가족과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믿음 3: 관계가 소원해지는 데는 꼭 결정적인 계기나 원인이 있다

사실 관계가 소원해지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사회복지사인 아길리아스 박사는 지난 2015년, 적어도 자녀 가운데 한 명과 관계가 소원해진 호주 부모 25쌍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발표했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었는데, 먼저 아들이나 딸이 부모와 다른 무엇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부모를 저버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 부모가 너무 안 맞았을 때 자녀가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고자 부모와 거리를 두게 된 거죠. 자식들이 부모의 가치관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모가 잘못한 일”에 대가로 연락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가정폭력이나 이혼, 건강 문제도 관계가 소원해지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한 여성은 아길리아스 박사에게 지난 7년간 아들, 며느리와 연락하지 않았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가 며느리에게 가족 모임 때 콕 집어 어떤 디저트를 좀 준비해 가져와달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전에 들고 왔던 파이를 똑같이 가져왔다는 겁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깡그리 대놓고 무시한 처사”라며 며느리와 더는 얼굴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아길리아스 박사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미 그 전부터 고부 사이가 멀어진 정황이 드러났는데, 그녀는 며느리가 일부러 손주들을 자기와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고 아들을 잘 챙기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며 불만을 품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디저트 사건이 터지자 그녀는 더는 못 참고 자신을 무시하는 며느리와의 단절을 선언했던 것이죠.

 

잘못된 믿음 4: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진다

<호주 사회복지학>에 실린 한 연구를 보면 부모와 관계가 소원해진 성인 26명이 관계가 틀어진 이유로 크게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자식을 무시하거나 대놓고 깔보는 것, 직접적인 폭력, 나아가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온갖 괴롭힘이 첫 번째였고, 비밀을 지키지 않거나 흘려 자식을 난처하게 만든 배신이 두 번째, 마지막은 부모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경우였습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혼내기만 하는 부모, 자존감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무안 주거나 자식을 희생양으로 삼는 부모 등이 속합니다. 위의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아길리아스 박사는 말합니다.

부모와 관계가 소원해진 이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이미 부모와 제대로 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을 때 그들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자식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크 씨는 어렸을 때 두 어린 동생을 항상 부모님이 아니라 자기가 대신 돌봐야 했던 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도 어린아이를 돌보는 데 이골이 나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정도입니다.

성인이 되고 떨어져 살면서 관계가 서먹해지다가 그의 결혼식 날 드디어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니콜라우스 마크 씨는 2014년,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시청에서 간단한 혼인신고만 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체했습니다. 혼인신고를 시청에서 해야 바로 그에게 주어지는 연금을 부인이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도 했고, 앞서 남동생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도 마크 씨를 고심에 빠트렸습니다. 남동생은 가족과 친지, 친구를 불러놓고 전통적인 결혼식을 올렸는데, 아버지는 축사를 하기로 했다가 막판에 약속을 어기고 축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의 결혼식을 망쳐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본 마크 씨는 자기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불러봤자 어떻게든 방해만 될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를 부르기는 싫었고, 아버지를 안 부른다면 다른 가족을 부르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가족을 불러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마지막에는 가족이 없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가족들은 니콜라우스 마크 씨의 결혼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습니다. 남동생 한 명은 자기한테 결혼한다고 말도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동생과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마크 씨와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친척들이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줬죠.

현재 마크 씨는 동생 한 명하고만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간단히 서로의 소식만 전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