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파시즘 반대 운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2017년 10월 30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미국 대학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가 극우주의자(극단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 혹은 남성 우월주의자)가 강연을 하는 것을 금지, 혹은 강제 취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잘못된 사상을 전파하는 강연은 학교가 보다 적극적으로 검열을 해야 할까요?

많은 학생은 파시즘, 인종차별주의, 폭력적인 사상 등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이므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랫글은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오레곤대학교의 마이클 쉴(Michael H. Schill) 총장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쉴 총장은 예정된 연설이 있었는데 파시즘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연설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쉴 교수는 파시즘의 본질은 반대 의견을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무시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예정된 총장의 연설을 못 하게 한 것은 파시즘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학생들의 파시즘 반대 운동은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나아가 아무리 듣기 힘든 주장일지라도 듣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번 달 일부 학생들이 제가 총장으로서 해야 하는 업무인 연례 연설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저는 약 5천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몇 가지 신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해 직접 설명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녹음된 연설을 온라인에 개재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시위하는 학생들은 확성기를 통해 과도하게 인상되는 등록금, 공공교육기관을 영리 기관화하는 학교의 정책, 그리고 대학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저를 비난했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파시즘과 백인우월주의”가 지속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시위에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시위는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많은 경우 학교는 이렇게 표현된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학생 시위자들이 요즘 자주 사용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이 처음부터 발언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은 자기모순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발언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힘이 없고 발언권이 적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시위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킵니다.

상대방의 발언권을 빼앗으면서 파시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모순입니다. 제가 발언을 하는 동안 무대로 뛰쳐나온 학생은 언론을 향해 “우리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저항을 각오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학생들이 혐오한다고 말하는 파시즘의 언어, 방식과 무서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근본적으로, 파시즘은 반대의견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모든 대학교에는 파시즘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는 수업이 있습니다. 파시즘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협박하며, 반대 의견을 공포와 보복 등으로 위협합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학풍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논의하고, 반대 의견을 보호하려고 노력합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시민을 침묵하게 하고, 권위에 저항하는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을 구속하고, 심지어 사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대학교들이 파시즘을 옹호한다는 비난은 심각하게 잘못되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권위주의에 반대할 때 쓰면 효과적인 느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 단어가 요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반대하는 연설은 대부분 그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소외시키는 사상과 관점에 대한 것들입니다. 학생들은 극단적으로 갈 경우 네오 나치(Neo Nazis)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발언권조차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강한 반감이 있습니다. 저 역시 네오나치즘이나 백인 우월주의에 반대하지만, 공격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발언권을 아예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쓰는 전략을 살펴보면, 얼마나 쉽게 사람이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감정이 북받칩니다. 두 세대 전 우리 가족 구성원 중 몇 명은 홀로코스트가 자행될 당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제가 파시즘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면 저는 기분이 나쁩니다. 하지만 제가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학생들의 발언을 검열하고 규제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격적이라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현 상태를 개선하거나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015년 전국적으로 퍼거슨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학생들이 시위를 할 때에도 저는 오레곤대학교의 총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흑인학생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이 제 집무실 앞에서 시위했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을 초대해서 토론했고, 가끔 저희는 감정이 격해졌지만 결국 서로가 존중할 수 있는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그 토론을 통해 학교가 변화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레곤대학교는 교내 인종 차별 현황에 조사하고 역사적으로 인종 차별 문제를 고찰해 보고 있습니다. 오레곤대학교는 흑인 교수 수를 두 배 늘렸으며, 흑인 학생을 더 모집하기 위한 신규 프로그램을 개설하였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였으며, 160만 달러를 투자하여 흑인문화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오레곤대학교는 학교의 주거시설에 전 쿠클럭스클린(Ku Klux Klan) 수장이었던 사람의 이름을 딴 건물이 있었는데 그 명칭을 걸출한 흑인 동문의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교육자와 학생들은 서로에게 배워야 하고, 서로에게 배우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레곤대학교의 미래, 나아가 국가의 미래는 우리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의미 있는 토론을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를 공격하는 연설을 허용해야 하는지, 또 그러한 연설로부터 공격받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역시 해결하기 매우 어렵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표현의 자유는 더욱 중요합니다.

모든 중요한 토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논의를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열심히 해결하기 위해 토론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반대 의견을 말할 기회를 빼앗는 전략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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