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도서 추천 기능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
2017년 10월 16일  |  By:   |  문화, 세계, 정치  |  No Comment

좌파 성향 독자와 우파 성향 독자들이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읽는 책 뿐 아니라 사는 곳, 먹는 음식, 음악 취향, 뉴스 소비 행태까지 모든 것이 다르니까요. 그리하여 사람들의 정치색은 점점 짙어지고,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이코노미스트가 데이터 과학자 발디스 크렙스에게 의뢰해 분석한 아마존의 도서 판매 데이터는 그러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보수 성향의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책만 구입하고, 반대쪽도 마찬가지죠.

현재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지배하고 있는 책은 힐러리 클린턴의 “What Happened”와 NBC 기자 케이티 터(Katy Tur)의 “Unbelievable”입니다. 클린턴은 책에서 대선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해커와 떼로 움직이는 기자단,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탓하는 데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죠. 케이티 터 역시 트럼프를 취재하면서 얼마나 어이없는 행동들을 목격했는지에 대해 주로 썼습니다.

저자들 사이에서 특정 정파를 겨냥한 저술 활동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움직임 가운데 하나는 성실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반대편”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책을 쓰는 것입니다. 특히 진보 쪽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죠. UC버클리 사회학과의 명예교수가 루이지애나에서 수 개월 간 살면서 우파 유권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담은 책을 쓴 것도 그와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훌륭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주로 진보 성향의 독자지, 저자가 소통하려 했던 이들이 아닙니다. 백인 하층민의 분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룬 책 “White Trash”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저자들은 브루클린이나 버클리 유권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오히려 그런 시도가 줄어들었죠. 보수 성향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최신 인기작 “The Big Lie: Exposing the Nazi Roots of the American Left(커다란 거짓말: 미국 좌파의 나치 뿌리를 밝히다)”와 같은 책이 민주당원과의 진지한 대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몇몇 용감한 보수파 저자들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우리편”을 돌아본 것이죠. 트럼프의 부상에 대해 경고성의 책을 쓴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끝까지 트럼프 지지선언을 거부한 네브레스카 주 상원의원 벤 새스는 저서 “The Vanishing American Adult(미국 성인의 실종)”에서 미국 문화가 “끝나지 않는 사춘기”에 빠져, 가족, 독서, 봉사와 같은 가치가 이기심, 유명인, 미디어 노출과 같은 것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책은 진보 성향 독자와 보수 성향의 독자에게 모두 어필하며 드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잘못된 선택을 보다 신랄하게 비난한 아리조나 주 상원의원 제프 플레이크의 책은 진보 성향의 독자들에게만 주로 읽히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작가들 역시 비판적 자기 성찰에 나섰습니다. 컬럼비아대 소속의 마크 릴라는 미국 좌파가 “평범한 중산층” 대신 소수자 집단에만 너무 집중하면서 사람들을 단합시키지 못하는 세력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기대와는 달리 보수 성향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죠.

가장 호평을 많이 받은 책 중에 하나는 깜짝 베스트셀러인 “Hillbilly Elegy”였습니다. 켄터키를 떠나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로 이주하면서 민주당을 버린 ”백인 쓰레기“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저자가 인류학자가 아닌 가족의 일원이었다는 것이죠. 이 책은 드물게 좌우 양 쪽의 호평을 받았지만, 역시 실제로 구입한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다수였습니다.

이 같은 “크로스오버” 장르의 가장 슬픈 케이스는 아마도 내부자들이 클린턴 캠프의 문제점들을 폭로한 책(“Shattered: Inside Hillary Clinton’s Doomed Campaing”)일 것입니다. 정치색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였죠. 반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클린턴의 패배 이유를 분석한 책(The Destruction of Hillary Clinton”)은 여러 아마존 리뷰어들로부터 별 다섯 개 호평을 받았지만 격한 비난과 함께 별 하나를 준 독자들도 있어,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후자는 책 제목을 잘못 이해하고 실수로 책을 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고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는 모토를 내세웠죠. 하지만 아마존이 도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책을 구입한 분들이 구입한 다른 책”을 함께 보여주는 추천 엔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독자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무지라는 맹점을 낳았죠. 아마존이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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