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양에서 바라본 북미 교착상태
2017년 10월 9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 로이터통신에서 오랫동안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2007년부터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으로 국제 관계와 외교에 관한 칼럼을 써 온 캐럴 자코모 위원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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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수도 평양은 어디를 가나 선전·선동 문구가 가득합니다. 주요 거리마다 걸려 있는 포스터에는 여기저기 미사일을 그려놓았는데, 그 가운데 미국 수도를 직격한 미사일의 모습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고등학생과 공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이미 오래전에 군 복무를 마친 민간인 수백만 명이 미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나라를 위해 싸워달라는 북한 정부의 요청에 예비군 등록으로 호응했습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고조된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북한 외무성의 최강일 북미국 부국장이 지난주 평양을 방문한 저와 뉴욕타임스 기자 세 명에게 한 말입니다.

평양에서도, 휴전선 이남의 한국에서도 군부대를 특정 지역에 파견한다거나 하는 식의 특이 동향은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언제 전면전으로 비화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관광객은 물론 저 같은 언론인들도 여전히 빼놓지 않고 들르는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 이후 그랬던 것처럼 미군과 남북한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무장 능력을 둘러싸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여 왔습니다. 호전적인 언사로 가득한 비방과 위협을 주고받는 가운데 긴장은 고조됐고, 실제로 충돌할 위험도 커졌습니다. 나흘간 북한에 머물며 상황을 두 눈으로 살펴보고 온 지금도 이 위기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이 북한 정부가 내세우는 선전 문구를 그대로 읊으며 미국과 싸우게 되더라도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면 당혹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증오하지만, 미국인에게 따로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북한 사람들도 그저 평화롭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미국에 관해 복잡다단한 감정을 이야기하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관한 기사를 처음으로 쓴 건 1992년의 일입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이제 막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려던 북한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자 대화 채널을 가동했고,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미 협상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던 북한에 25년이 지난 이제서야 갈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투명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국가라 할 수 있는 북한이 올 들어 전략을 바꿔 미국 주요 언론사 기자들을 자국으로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언론사별로 기자들을 따로 불러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목표를 알리고 반대로 미국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북한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북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인 채로 미국에 송환됐고, 송환된 지 며칠 만에 숨을 거둔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를 생각하면 더욱 불안했습니다. 오토 웜비어 씨가 어쩌다 혼수상태에 이르렀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북한 외무성 초청으로 북한에 갔습니다. 여행에 든 모든 비용은 뉴욕타임스가 부담했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진실을 취재하고 북한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자 했습니다. 보안 부분은 외무성이 담당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호텔 방 밖에만 나서면 보안 부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북한 관리 두 명이 항상 저희 곁에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허가 아래 실을 짜는 공장을 둘러보고, 과학기술 복합단지도 들렀습니다. 인터넷은 허용되지 않았고, 북한 안에서만 통용되는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명문 고등학교와 반미(反美) 구호로 가득한 전쟁기념관, 놀이공원, 식당들, 돌고래가 있는 수족관도 갔습니다. 북한 당국이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당원과 가족들이 모여 사는 평양 시민들의 즐길 거리를 위해 지어놓은 여가시설일 겁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만나게 해달라는 우리의 요청은 거절했습니다. 모든 것이 엄격하게 통제된 곳이지만, 이따금 사람 사는 곳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한번은 한 고위 관리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식당 밖 인도에서 즉흥적으로 아주 잠깐이지만 사교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북한이 과연 미국과 핵 협상에 나설 의향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목표로 협상에 임할지였습니다. 두 나라는 1990년대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8년간 동결하기로 합의하고, 미사일을 비롯한 군축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협의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정권 아래서 앞선 합의는 휴짓조각이 되어버렸고, 현재 북한은 적어도 핵무기 20여 기와 미국 본토가 사정거리 안에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는 북한이 그런 군사 기술을 보유하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최강일 부국장은 북한이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계속된 제재와 역사적인 북미 갈등,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을 고려하면 핵무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또한, 미국의 군사 위협에 맞서 지역 내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반세기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 휴전 체제를 영구적인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경제 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 부국장의 말을 정리해보면 제가 궁금했던 점, 즉 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데 필요한 선결 조건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옵니다. 즉, 미국이 한국군과의 연합 군사훈련을 중지하고, 북한에 부과한 각종 제재를 철회하며,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끝없는 노력을 중단해야만 북미 대화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한 뒤 미국 정부가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연설은 여러 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언사로 가득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조롱하고, 2,600만 명이 사는 북한이란 나라 자체를 완전히 파괴해버리겠다고 위협한 결과 미국과 트럼프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적개심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시험을 무기한 중단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고 거듭 밝혀 왔습니다. 이렇게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 구실조차 보이지 않는 교착 상태는 위험합니다. 서로 비방과 도발을 일삼으며 무력시위만 주고받는 현재 상태가 지속하는 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는 요원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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