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안 하는 시대 (5/7)
2017년 9월 4일  |  By:   |  건강, 문화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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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비만 주간 콘퍼런스에 가서 살쪄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비만 주간은 점점 규모를 늘려 어느덧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대규모 산업 박람회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포스터와 헤어진 뒤 저는 박람회장에서 행사에 참가한 비만 전문가들에게 소개하려고 사람들이 내놓은 제품들을 살펴봤습니다. 신형 압박붕대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배에 차는 이 압박붕대는 뱃살을 쉽고 단단히 조여주면서 위의 일부분을 밀어 올려줍니다. 위가 작아지면 당연히 먹는 양도 줄어드는 원리를 활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제품입니다. 환자의 위에 직접 삽입한 뒤 뱃속에서 부풀어 올라 마찬가지로 위의 공간을 차지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작은 풍선을 직접 시연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식습관을 개선하고 나면 언제든 다시 뱃속에서 빼낼 수 있는 풍선이라고 제품을 홍보하던 사람은 말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도무지 입에 익지 않는 슈퍼푸드로 만든 스무디도 마셨습니다. 한 업체는 자기들이 고안한 수분 보충과 식단 조절법을 소개하면서 글을 읽는 독자들이 기발한 방법에 환호할 거라고 요란스레 홍보했습니다.

“태피, 잘 아시죠? 저런 마술 같은 방법은 애초에 없어요.”

제게 스무디를 따라준 사람이 말했습니다. 스무디까지 얻어 마셨는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게 예의에 맞겠다고 생각하던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포스터가 회의에 참석하러 가기 전, 저는 사실 비만 주간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슬퍼진다고 포스터에게 털어놨습니다. 먼저 이곳에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저를 비롯한 많은 비만인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취급하는 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울 만큼 배운 똑똑한 사람 수백 명이 각자 연구하고 고민을 거듭해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게 고작 슈퍼푸드 레시피나 식습관 교정, 뱃속에 집어넣는 풍선, 아니면 위절제술 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결국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는 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터의 생각은 다른 듯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 방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희망을 보기도 하는걸요.”

오프라 윈프리가 웨이트 워처스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한 시점은 제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25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저는 15살 때 <Shape>라는 잡지에서 다이어트에 관해 읽은 뒤 곧바로 다이어트에 입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키 160cm에 몸무게 50kg이었죠. 그리고 몇 년 동안 저는 꾸준히 장 세척을 비롯한 해독 레시피를 따르며 주기적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다이어트약을 세 번씩 먹었습니다. 점심때는 직접 갈아 만든 셰이크 두 잔을 먹고 저녁때까지는 물, 과일, 단백질과 탄수화물 중에도 좋은 탄수화물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먹지 않았죠. (마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처럼 탄수화물에도 좋은 탄수화물과 나쁜 탄수화물이 있습니다.) 저녁으로는 제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양 이상의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레몬을 탄 미지근한 물 두 잔을 먹으면 끝이었습니다. 비슷한 결심을 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 나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피라고 합니다. 저의 가장 큰 문제는 식탐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손가락을 목구멍에 억지로 집어넣어 구역질을 하고 먹은 것을 억지로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그렇게라도 하면 살이 빠지지 않을까 기대했죠. 사우스 비치 다이어트, 애트킨스 다이어트, 슬림패스트만 먹기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실 수도 있겠네요. 아마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 최근 검색과 구매 기록을 토대로 맞춤형 광고가 나오죠. 최근 제게 나타난 맞춤형 광고는 “최면요법 위장 밴드(Hypnotic Gastric Band): 수술 없이 살 빼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책과 CD였습니다. 비만 치료용 수술과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는 최면요법에 관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웨이트 워처스 본사를 방문했을 때 저는 당연히 취재차 갔던 것이지만, 직접 체험해봐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논리로 저 자신을 설득하며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일단 등록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을 받아적고 등록 절차를 도와주던 직원분이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가만, 뭔가 이상한데요. 태피 애크너라는 고객이 이미 세 명이나 있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저는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그 세 명 다 저예요.”

“주소는 브루클린으로 돼 있는데요?”

“네, 저 고등학교 다닐 때요.”

“로스앤젤레스는요?”

“결혼 직전에 거기 살았어요. 나머지도 확인해보실 필요 없어요. 다 저 맞다니까요.”

매번 저는 이번에는 반드시 모든 걸 쏟아부어 효과를 보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다이어트에 임했습니다. 사실 매번 그랬는데도 말이죠. 추수감사절을 몇 주 앞둔 어느 토요일 아침 8시, 뉴저지주 유니온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추수감사절 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기는 행복한 명절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한가한 명절 운운하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매년 추수감사절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은 살인마나 다름없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죠.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찾아올 테고, 명절을 몇 주 앞두고 그때 제가 참석했던 그런 종류의 모임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겁니다. 아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 중 누가 죽고 누구는 몸져누웠다는 이야기,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고등학교 동창회 이야기에 이어 어김없이 딸이 제빵에 흥미를 붙인 뒤로 자꾸 설탕 듬뿍 뿌린 롤빵을 구워댄다, 남편이 자꾸 스테이크만 찾는다, (아들 몰래 채식용 패티로 재료를 바꿨더니) 아들이 귀신같이 미트로프 맛이 왜 예전 같지 않냐고 묻는다, 직장 동료가 자꾸 휴게실에 도넛츠랑 베이글을 남겨놓고 가서 유혹을 참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이런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인데, 이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 주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반드시 모임에 나오는 겁니다. 도나라는 이름의 여성은 제게 “이 모임은 제게 교회나 다름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몇 달 전에 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장례식을 금요일에 치르고 바로 다음 날 모임에 나왔습니다.

이 모임을 이끄는 데이나는 보통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습니다. 데이나는 모임의 리더답게 옷차림과 꾸밈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죠. 토요일 이른 아침 모임이다 보니 대부분 기껏해야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오거나 옷의 무게가 덜 나가는 레깅스를 입는 게 보통인데, 그녀는 항상 긴 부츠를 신고 멋진 치마에 화장까지 빼놓지 않습니다. 자연히 독보적인 차림을 하고 모임에 와서는 지난 한 주 동안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거나, 바람직한 습관을 들이는 데 진전을 보인 회원들에게 별 모양 스티커를 큰 상을 내리듯 주곤 합니다.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은 이들의 이름까지도 잊어먹는 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회원 한 명 한 명을 소중한 보물처럼 꼭 안아줍니다.

도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체중이 늘었다고 오늘 모임에서 고백했습니다. 목표로 했던 몸무게보다 약 2.7kg 더 나가는 수준에서 한동안 변함이 없던 도나의 몸무게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인 겁니다. 2009년, 네 무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9년 이 모임에 처음 나온 이후 도나는 매주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사이 무려 60kg이나 몸무게를 줄인 도나는 말 그대로 8년 전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7kg이 문제였습니다. 정말 갖은 수를 다 동원해봤지만 더는 살이 안 빠졌던 겁니다. 백일기도를 드리는 심정으로 2주 동안 오로지 운동만 생각하며 헬스장에도 가봤습니다. 하지만 3주 전에는 이렇게 운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꾸 신경이 쓰여 좀처럼 운동에 집중이 안 됐고, 결국 살을 빼는 데 별 효과도 없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던 마지막 2.7kg을 빼는 일이 뚱뚱했을 때 몸무게가 146kg 나갔다는 사실보다도 더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약이 올라 죽겠다니까요.”

그녀는 제게 이렇게 말하며 저는 살을 어떻게 뺐는지 비결을 물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고작, 그러니까…”

전 어깨를 으쓱하며 고작 1.4kg밖에 못 뺐다는 말을 하려다가 자칫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임에 나오는 또 다른 회원인 에이미가 전에 제게 해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절대로 고작 몇 kg 뺐는걸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아시죠? 그럼 다들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거.”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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