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회복세로 돌아선 스페인 경제
2017년 7월 31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공항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휑뎅그렁한 공장 안에서 절반 정도 조립된 차가 공정 라인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서서히 움직이는 조립품 양옆으로는 아래위가 한 벌인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정확히 정해진 시간 안에 부품을 맞춰 길거리를 달릴 자동차의 모습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서쪽의 작은 공업 단지에 있는 세아트(SEAT) 자동차 공장의 활기찬 모습에서 과거와 달라진 스페인 경제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스페인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섰습니다. 지난해 스페인 경제 성장률은 3%를 기록했고, 수출이 늘어났으며,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 냈습니다. 오랜 시간 절망에 허덕이던 나라에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지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 경제에 모두 반가운 소식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스페인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19개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업률은 26%라는 충격적인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높은 실업률은 마치 투자 거품이 빠지면서 붕괴된 부동산 시장에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덮치며 시작된 경기 침체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몰랐습니다.

지난 금요일 스페인 정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스페인 경제는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겪은 경제 위기 가운데 세계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로 기록될 만한 스페인 경제 위기가 끝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는 여전히 유로존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어마어마한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유럽 대륙이 마침내 회복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로 볼 만합니다.

바르셀로나 항구와 그 주변만 봐도 경기 회복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항만에서는 기중기가 분주히 컨테이너 상자를 날라 대형 화물선에 싣습니다. 컨테이너 상자에는 유럽과 아시아 곳곳으로 수출하는 공산품이 가득합니다.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주요 도시에서 경기 침체로 버려졌던 사무실 공간은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입주하며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런던이나 파리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물가는 스페인 도시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창업 정신을 앞세운 젊은이들은 주로 가족 중심으로 경영하던 와인 산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와인을 새로운 병에 담아 전에 없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며 수출을 시작해 와인 업계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페인의 경험에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유럽의 지도자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엄격한 긴축재정만 고집하는 잘못된 처방을 내렸고, 스페인은 그 처방의 희생양으로 경제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시점에 부동산에 낀 거품이 빠지면서 시장이 무너지려 했을 때 정부가 돈을 풀고 대대적인 기간 산업을 발주해 일자리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유로존을 이끄는 금융 당국은 스페인 정부의 지출을 엄격히 제한했고, 고통을 분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스페인 경제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되찾은 데는 일자리가 회복됐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은 점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의 경제 회복은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담보로 한 현상으로 오래 가지 않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축하할 일과는 거리가 멀죠.

실제로 이 문제는 통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실업률은 여전히 18%를 웃돌고, 청년 실업률은 39%에 육박합니다. 전체 인구 4천7백만 명 가운데 425만 명이 공식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성장세를 회복한 분야에서도 노사 협상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낮은 임금 탓에 파업이 잦습니다.

반면에 스페인을 강력한 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둔 모범 사례로 추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했고, 그 덕분에 회사들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사람을 뽑아 썼다는 겁니다. 이들은 특히 프랑스의 에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이 스페인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 개혁안은 노조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양측은 팽팽한 기 싸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스페인의 경제 개혁과 구조조정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로화 출범과 함께 신용 등급이 높아지고 갑자기 돈을 싸게 빌릴 수 있게 되자 스페인에는 대대적인 건설 붐이 일었습니다. 한동안 이어지던 건설 경기의 호황이 끝난 10년 전부터 부실 대출이 많았던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나라 경제 전체에 엄청난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건설업이 스페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창 거품이 꼈을 때의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대신 GDP의 1/4 정도를 담당하던 수출의 비중이 1/3까지 커졌습니다.

폭스바겐 산하 브랜드인 세아트 공장의 성공은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를 다시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2010년만 해도 연간 30만 대 차량을 생산하던 이 공장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 대수는 연간 45만 대로 늘었고, 이 가운데 80% 이상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있으며, 153만 유로(약 20억 원) 흑자를 내는 이 공장은 무엇보다 지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우디 세단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MIT 미디어랩의 복합경제연구소의 데이터에 따르면 스페인 경제에서 자동차, 트럭, 차량 부품 수출은 전체 수출의 17%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옥스포드대학교 경제학과의 앙헬 탈라베라는 “자동차 산업은 스페인에서 개혁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세아트 공장은 5년에 걸쳐 새로운 생산 시설로 탈바꿈하는 중인데, 33억 유로(약 4조 4천억 원)어치 기계를 들여 생산 공정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입니다. 공장 지배인과 경영진은 모회사인 폭스바겐 관계자들에게 투자를 유치할 때 무엇보다 스페인의 노동개혁을 내세웠습니다.

“스페인 경제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로 성공적인 노동개혁을 언급했죠.”

세아트 공장의 재무 책임자인 호아킴 힌츠는 말했습니다.

얼마 전 찾은 세아트 공장에서는 무인 카트가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부품을 분주히 날라주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이상 징후라도 보이면 컴퓨터 센서가 즉시 이를 알렸고, 바로 나사 조립이 중단되고 모든 전기 설비는 작동을 멈췄습니다.

“적자 기업은 온 힘을 다해 싸워야죠. 1년 365일 쉼 없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매진하다 보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게 됩니다.”

힌츠는 말했습니다.

세아트 공장에서 조립을 마친 차량 완제품은 기차에 실려 바로 바르셀로나항으로 갑니다. 항만 노동자들이 기차에서 선박으로 차량을 실어나르면 차량은 독일,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 곳곳으로 수출됩니다. 올해 상반기 바르셀로나항의 물동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나 증가했습니다.

아침이면 항만 노동자 수백 명이 출근해 커피를 마시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일감을 찾고 자신의 업무를 확인합니다. 항만 입구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현장 감독부터 기중기 운전, 적재기 관리 등 그날 어떤 업무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필요한지 적혀 있습니다.

경제 위기가 한창일 때는 항만 노동자 7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일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일하지 못한 날은 최저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데 생계를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요즘은 600명 이상이 매일 어렵지 않게 일감을 구합니다.

항만 노조 지역 사무실에서 일하는 차비에르 타라가는 경제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모두가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한때 어려움을 겪던 회사들의 사정이 나아지자 경제 위기와 함께 곤두박질쳤던 정부의 세수도 다시 회복됐습니다. 바르셀로나 정부가 거두는 지방세는 2013년 25억 유로에서 꾸준히 늘어나 올해는 27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역 경제 전반에도 천천히 돈이 돌고 있습니다. 항구에서 약 1km 떨어진 공사 현장에서는 작업복을 입고 먼지투성이 작업용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콘크리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새 지하철 역사를 짓고 있습니다. 총 68억 유로가 드는 바르셀로나 지하철 확장 공사는 3년 전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됐습니다.

공사 현장 안전 관리자인 토마스 로페즈 메디나 씨에게 공사 재개는 곧 실직 상태의 끝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한 달에 1,100유로(약 145만 원) 정도 되는 실업 수당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10년 전인 2007년 메디나 씨 부부가 벌던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습니다. 건설회사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던 메디나 씨의 부인도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메디나 씨 부부는 당장 살던 아파트부터 처분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살던 동네는 메디나 씨의 부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아직 가족, 친구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부부는 익숙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시 외곽의 공단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지만, 이사하기 싫어하던 아내의 모습을 회상하는 메디나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새로 이사 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게도 전혀 없죠. 그저 사람들이 일하러 도시로 갔다가 밤에 와서 잠만 자는 곳이에요.”

메디나 씨 부부는 몇 년 동안 옷 한 벌도 새로 사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해산물 대신 저렴한 닭고기로 식단을 바꿨습니다. 실업 수당 지급 기한도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부인과 월세를 내지 않고 아파트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어요.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궁리를 해야 했으니까요.”

그때 마침 하늘이 도운 것처럼 바르셀로나 지하철 확장 공사를 재개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공사를 맡은 회사 가운데 한 곳에서 메디나 씨에게 한 달에 1,500유로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일자리를 제안했죠.

“아내와 부둥켜안았습니다.”

아직 예전의 삶을 완전히 되찾으려면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새로운 기회에 감사합니다.

스페인 정부는 여전히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1년 예산에 버금가는 양을 빚으로 지고 있죠. 특히 파산한 은행에 투입한 구제금융 비용과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지급한 실업 수당 때문에 빚이 늘어났습니다. 여전히 정부의 기간시설 투자는 부족합니다.

이제 막 회복의 조짐이 보이는 정도에 불과한데, 벌써 예전의 좋지 않은 감정이 튀어나오고 불편한 관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항만 노동자들은 최근 3년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임금 삭감과 함께 고용주가 비노조원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조건을 골자로 하는 불리한 근로 계약에 서명한 뒤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문제는 현행 지하철 기관사와 노동자들에게도 주요 현안입니다. 올여름 잇따른 파업으로 스페인 지하철이 자주 운행을 멈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스페인 물가가 싸지면서, 바르셀로나는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는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유려한 건축물에 훌륭한 음식, 화창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날씨도 바르셀로나에 매력을 더했습니다.

생활 물가를 종합적으로 비교한 한 통계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의 물가는 런던보다 36%, 파리보다 28% 쌉니다. 심지어 오랫동안 유럽의 삶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첫 번째 행선지로 꼽히던 베를린보다도 4% 정도 싼 값에 살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덩달아 발돋움하며 바르셀로나는 점점 햇살 가득한 거리에 맛있는 커피숍이 즐비한 도시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시 차원에서 아예 창업 지원 센터를 열었습니다. 지원하는 회사에는 아주 저렴한 임대료만 받고 빌려주는 업무 공간은 스타트업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그대로 갖췄습니다. 들쭉날쭉한 모양으로 땅에 납작 엎드린 듯한 높이에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게 하는 네온 빛깔 가구와 통유리로 된 창, 그리고 사무 공간은 한 층 전체를 모두 터놓았습니다.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기발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회사 멜러는 바르셀로나 창업 지원 센터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멜러를 창업한 마르코 그란디(27)는 2014년 창업 첫해 매출 4만 유로에서 지난해에는 매출만 500만 유로를 넘어섰다고 말했습니다.

멜러의 직원은 24명으로, 베네수엘라부터 독일까지 출신 국적도 다양합니다. 회사는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에 관한 영감을 얻는데, 다분히 복고풍인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테에 모던한 분홍빛이 감도는 렌즈를 넣은 디자인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스페인의 높은 청년 실업률 때문에 스타트업은 원하는 인재를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유능한 선글라스 디자이너를 100유로도 안 되는 값에 찾기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IBM에서 퇴사해 건물주와 일시적으로 열었다 닫는 팝업 스토어를 찾는 소매상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스타트업인 고팝업을 창업한 다비드 페레즈는 “경제 위기일 때가 어쩌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적기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관행에 젖어있던 회사들도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고 혁신을 모색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 피코사는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주로 생산하던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자율주행 자동차 부품을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인 관광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트립유니크 같은 특별한 경험을 찾는 관광객에게 그곳에 사는 사람이 직접 맞춤형 일정을 짜주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먹을거리와 와인도 빼놓을 수 없겠죠.

카사 베르게르는 가족이 경영하는 와인 양조장입니다. 이 집안의 삼형제는 지난 몇 년간 요즘 추세에 맞춰 와인을 생산해야 사업이 번창할 거라고 아버지를 설득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카사 베르게르는 별 특색 없는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한 다음 병을 국경 너머 프랑스로 실어 보내 “프랑스산 와인”이라는 상표를 붙여 팔아 왔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은 그저 그런 싸구려 와인으로 팔리다 보니 생산자에게 남는 이윤도 별로 없었죠.

삼형제는 와인을 프랑스로 보내는 대신 직접 바르셀로나에서 병입하고 상표를 붙여 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삼형제의 간청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삼형제의 할아버지 대부터 50년간 이어 온 방식으로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오기 전부터 카사 베르게르의 매출은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경제위기 중에는 도산 위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삼형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집요하게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누가 들으면 멍청한 소리라고 비웃을 만한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챠렐로(xarel-lo)라는 지역의 흔하디흔한 포도 품종으로 화이트와인을 생산한 뒤 와인 라벨에서 승부수를 띄우기로 한 겁니다. 라벨에는 “멍청한 젊은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카탈루냐어 엘 치트챠렐로(El Xitxarel-lo)라는 단어와 함께 수십 가지 카탈루냐어 욕을 써넣습니다.

“아버지와 삼촌들에게 총 77가지 카탈루냐어 욕을 써넣은 병을 생산해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되, 단 우리 상표는 절대로 써넣지 말라고 하셨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오늘날 엘 치트챠렐로는 평범한 가정에서부터 와인 이름과 무관한 각종 행사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삼형제는 기울어가던 와인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2013년 가을, 3천 병으로 시작한 생산량은 주문이 폭주하며 연간 8만5천 병으로 늘어났습니다.

삼형제는 최근 바르셀로나의 한 철물점을 개조해 유기농 와인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요즘 감성의 와인바를 열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다양한 와인을 와인통에서 직접 따를 수 있는 와인 꼭지가 가득합니다. 와인 가운데는 벌써 시작한 지 37년이나 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핀카 파레라도 있습니다. 이 와이너리를 시작한 루벤 파레라 씨의 이야기도 카사 베르게르 삼형제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당시 파레라 씨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과수원은 경영난에 직면했는데, 파레라 씨는 아버지를 설득해 체리, 자두, 복숭아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포도를 심고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삼형제의 와인바를 찾는 사람들은 직접 잔을 가져와 이 와인 저 와인을 마셔보고 마음에 드는 와인을 사 갑니다. 결국 카사 베르게르의 삼형제는 집안 대대로 이어오던 대량생산 와인의 전통을 오늘날 소비자들의 취향과 제대로 접목한 겁니다.

삼형제는 카탈루냐어 욕설이 가득한 라벨의 와인에 흥미를 보일 새로운 고객을 찾아 뉴욕 출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형제가 새로운 시작을 개척하면 와인도 자동차, 자동차 부품, 올리브유를 비롯해 전 세계로 수출되며 스페인 경제를 침체에서 끌어올리는 수많은 상품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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