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직장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3/3)
2017년 7월 24일  |  By:   |  경제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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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미국인은 늘 정부의 규제 때문에 시민의 자유가 희생당했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삶을 구속하는 또 다른 ‘government’를 직시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마주치는 이 사적인 ‘government’는 적어도 정부 규제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우리 삶을 지배합니다. 지시를 거스르거나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내리는 벌이 국가가 범죄를 지은 이에게 내리는 벌 만큼 가혹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대신 사용자는 노동자의 일상에 훨씬 광범위하고도 깊이 영향을 미치는 권력입니다. 게다가 권력의 사용이 정해진 규정을 따르지 않을 때가 많고, 무엇보다 사용자의 권력은 지배받는 자들에게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자 오랫동안 기울였던 그 노력을 직장의 통치 주체와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데 쏟아야 할 때입니다.

특히 중요한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미국이 냉전 시대 공산주의 독재국가에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항을 떠올려 봅시다. 바로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풀어달라는 것이었죠.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은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하죠. 특히 미국 노동자들의 20% 정도는 이른바 ‘경쟁 금지 조항’에 서명한 뒤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일을 그만두거나 해고됐을 때 경쟁 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일터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영업 비밀이나 복잡한 설계 등 지식 경제 최전선에 있는 엔지니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과도한 경쟁 금지 조항이 적용돼 노동자들에게 족쇄로 작용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고용 계약을 맺을 때 사용자가 경쟁 금지 조항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주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노동자에게 주어진 여러 권한과 권리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둘째로 만약 국가가 회사가 노동자에게 하는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이것저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강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당장 헌법에 명시된 시민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했다며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겁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비슷한 일을 겪어도 고용주에게 저항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지 몰라도 아주 미약하죠. 한 사회의 시민이기도 한 노동자가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고용주에게 필요하다면 맞설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합니다. 법이 판례를 통해 조금씩 인정하고 있는 권리부터 지켜줘야 합니다.

이런 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과 결사의 자유입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라도 근무시간 외에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조직에 몸 담는지에 관해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휴식 시간이나 혹은 근무 중이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발언이나 업무 특성상 말을 해선 안 될 때를 제외하면 대화를 금지해서도 안 됩니다. 정치적인 지지나 의사 표현도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시민의 권리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없게 몰아세우는 직장은 헌법을 어기고 있는 겁니다.

셋째, 직장에서 노동자에게 미치는 권력을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공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내야 합니다. 업무상 불만을 제기해도 해고되지 않는 정도의 기본적인 권리 말고, 전체적인 회사의 업무를 결정하는 과정에 노동자들의 이익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합니다.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노조는 권력을 남용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용자를 견제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노조의 결성이나 업무 환경에 관한 불만을 제기하는 데 관해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됐습니다. 대체로 고용주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기본적인 심리 때문에 노동자들이 먼저 노조를 멀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의 선의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즉, 사용자가 훌륭하더라도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여전히 중요합니다. 유럽의 여러 부유한 나라에서는 꼭 노조원이 아닌 노동자라도 의견을 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습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직원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인 회사는 자동으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노사 공동 경영 회의에 참여할 노동자 대표를 스스로 뽑고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댄 회의에서 근무 시간과 인원, 생산라인 감축 혹은 증가, 근무 여건과 과정 등을 논의합니다. 공개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이사회 임원 몇 명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자유방임주의자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제안을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성이나 자율성, 권익을 지키고자 목소리를 높인다지만,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회사의 경영상 효율성이 떨어져 이윤이 줄어들면 노동자의 임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제 발등을 찍는 행위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경영진이 직원들을 확실히 관리할 수 없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 환경이나 근무 여건에 다소 강압적인 면이 없지 않더라도 이는 높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보상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그 정도 돈 받으면서 일하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누릴 거 다 누리면서 할 수 있는 일 찾으려면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이 이론은 처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직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미리 알고 있으며, 저임금 노동자들도 언제든지 근무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임금을 가장 많이 떼이는 편입니다. 회사들이 법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인데도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은 돈이 한 해에 무려 5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임금이 낮은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2/3가량은 상습적인 임금 체불에 시달리거나 아예 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전체 소득의 15% 정도나 됩니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것을 임금 절도(wage theft)라 부르는데, 임금 절도 규모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절도 액수의 총액보다 세 배 많습니다.

반대로 고용주 가운데는 노동자가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빈둥대며 월급이나 축낸다고 경멸하는 이들이 없지 않죠. 대개 그런 고용주일수록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근무 여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노동자를 쥐어짜 내려는 생각뿐일 때가 많습니다.

사용자가 독재에 가까운 전권을 행사해야만 회사를 잘 아는 경영진이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결국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진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경영이 근무 중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바지를 입은 채로 소변을 봐야 하는 상황의 다른 말이라면 여기서 효율성은 논할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대단히 오랜 시간을 힘겹게 싸워 왔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훨씬 전부터 인정됐던 기본적인 권리마저 희생해야 하는 효율 경영이라면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효율 경영은 실로 하찮은 가치가 되는 겁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과 직장 등을 “선택”했다는 잘못된 표현도 계속 문제를 일으킵니다. 노동자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터의 독재, 견제받지 않는 사적인 통치는 계속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시행한 초과 근무수당 인상분을 다시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 중에 직장 내 안전 수칙을 어기거나 정해진 최소 임금과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회사에 면죄부를 주려는 겁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행한 규정 가운데 임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규정은 이미 철회했습니다. 이제 여성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는 남성 노동자보다 자신이 언제 얼마큼 임금을 덜 받았는지 확인하기가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사적인 통치는 아무런 원칙 없이 움직이는 무책임한 통치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대부분 미국인이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권력은 대개 이러한 사적인 통치입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란 결국 사적인 영역에 머물던 권력을 공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내 나누고 견제하며 관리하는 과정의 역사입니다. 통치자의 이익보다 시민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부를 만들어 온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입니다. 이제 역사의 교훈을 직장 곳곳에 건재한 사적인 권력을 바꿔내는 데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노동자들은 유권자로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뿐 아니라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잘 나가는 테크 기업에서도, 육류를 가공하는 작업장에서도 노동자로서 자기 삶에 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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