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직장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2/3)
2017년 7월 21일  |  By:   |  경제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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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시장경제를 부르짖던 이들이 꿈꾸던 독자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

우리는 어쩌다 정부와 기업에 이토록 다른 잣대를 들이대게 된 걸까요? 답을 찾으려면 산업혁명 이전에 자유로운 시장경제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싹을 틔우던 때를 주목해야 합니다. 17, 18세기 영국에서는 대규모 상인들이 취급하는 품목별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소상공인들은 자연히 대형 업체들이 정한 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됐죠. 여기에 넓은 토지를 쪼개서 팔지 못하게 한 장자상속제를 비롯한 상속 관련 규제로 인해 주로 귀족 출신 집안 몇몇이 영국 전역의 토지를 사실상 독점하게 됐습니다. 토지를 짧은 기간 빌릴 수밖에 없다 보니 농민들은 지주에 철저히 종속된 소작농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작농들은 온 가족이 지주의 거처에 매여 살면서 지주를 주인처럼 모시고 지주 집안의 규율을 따르며 사실상 종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이때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부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불만이 쌓이고 문제가 증폭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며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해주는 자유시장 경제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제도로 여겼습니다.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는 모두를 평등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레벨러(Leveller)’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영국 내전 시기 등장한 자유시장 경제는 다분히 급진적인 사상으로 분류됐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대규모 상공인이 누리던 독점적인 지위를 철폐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제조업이나 상업에 직접 뛰어들고 농사를 지어도 자영농이 되어 일을 할 때 사회가 훨씬 더 평등해지리라는 데 기대를 걸었습니다.

18세기 들어 독점, 장자상속제를 비롯한 재산의 온전한 대물림, 돈이 없어 사실상 노예가 되는 관습 등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시장 경제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건 아담 스미스(Adam Smith)였습니다. 스미스는 제대로 된 유인 동기만 주어지면 (독점을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가 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독자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를 모두 챙기기 때문에 자본가나 지주자 생산물의 적지 않은 부분을 떼어갈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할 동기가 생깁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토지와 부를 상속받은 지주들은 열심히 일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자영농보다 노동 생산성이 훨씬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주들은 단지 토지를 매매할 수 없게 한 법의 보호 덕분에 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와 노동, 상품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시장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자, 독자적으로 일하는 자영업자는 성공하고 반대로 지대를 받아먹는 게 전부인 무능하고 멍청한데 게으르기까지 한 지주들은 몰락할 제도로 여겨졌습니다.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당대 유럽인들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때의 평등은 백인 남성 사이에서의 평등이었습니다) 혁명기에 자유를 얻은 이들은 대부분 대자본이나 토지에 예속되지 않은 사람들로 자영농과 독자적으로 일하는 소상공인이 주를 이뤘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생각을 앞장서 주창한 사람은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었습니다. 실제 이때 페인이 내세운 주장을 살펴보면, 마치 현재 공화당 안에서도 특히 시장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의원들의 소모임 책자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내용입니다. 페인은 먼저 개인은 국가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당면한 거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좋은 정부란 개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역할만 하고 그 이상은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 그래서 세금도 최대한 걷지 않는 정부라고 페인은 말했습니다. 국가가 걷는 세금은 강도나 다름없는 것으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이 가난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존재에 있었습니다. 페인은 평생 일관되게 상업, 자유무역,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했습니다. 그는 신중한 재정 정책과 함께 경화(hard money)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페인은 1809년 숨진 뒤 수십 년간 급진 노동자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페인이 주창한 자유시장 경제 하에서는 소규모 자영업자로만 이뤄진 평등한 경제 사회가 구현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세상이란 평등하면서 자유로운 사회, 다시 말해 개인이 서로 의지하고 지내지만, 누구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명령을 내리지 않는, 모두가 중산층인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토마스 페인의 사상을 계승한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의 사상적 근간이라 할 만한 두 가지 정책을 세웁니다. 첫째는 미국 내에서 노예제의 확산에 반대한다는 기조를 천명한 것이고, 둘째는 자영 농지법, 혹은 공유지 불하법(Homestead Act)을 입안한 겁니다. 결국, 노예제 덕분에 노예를 거느린 대지주들은 자영농을 몰아내고 넓은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습니다. 땅을 잃은 자영농은 소작농이나 임금 노동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링컨은 미국 연방 내에서 노예제의 확산을 금지하고 새로 획득한 땅을 그곳에 정착하는 사람에게 조금씩 나눠줌으로써 평생 누구도 강제로 임금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평등한 세상을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공화당은 이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됐지만,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의 기반을 닦을 때만 해도 그는 진정한 자유로운 노동이란 임금을 받고 하는 노동이나 자본에 예속된 노동이 아니라는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링컨 시대에 본격적으로 가속화되던 산업혁명이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습니다. 자유로운 시장을 바탕으로 자영업자들로 이뤄진 평등한 사회의 꿈은 결국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대량생산은 막대한 자본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규모의 경제보다 노동의 대가를 스스로 온전히 가져갈 수 있게 보장해주는 유인 동기가 더 중요하다던 아담 스미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죠. 미국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내쫓으며 새로운 영토를 계속해서 획득한 덕분에 유럽보다 자영농이나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몰락이 훨씬 늦었습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에서도 산업화가 촉진되고 인구가 늘어나며, 더 이상 영토 확장이 불가능하게 국경이 확립되고 철도 산업을 중심으로 독점 사업자가 나타나면서 결국 경제적 이윤을 독점적인 주체가 독식하는 일이 굳어집니다.

 

산업혁명으로 새로이 노동자보다 권력의 우위를 점한 사용자들과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명쾌하게 분석해내는 데 실패한 경제학

아담 스미스, 토마스 페인, 그리고 링컨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 기조는 산업화와 함께 사실상 사장됐습니다. 산업화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임금 노동이 자리를 잡았고, 규모를 앞세운 대기업은 과거 대지주가 하던 역할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할 때도 아담 스미스나 토마스 페인의 주장을 인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접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은 우리가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는 제도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거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된 뒤 제3의 체제, 즉 (기업이나 고용주의) 사적인 통치 아래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냅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평등주의자들은 시장경제 기반 사회를 꿈꿨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시민이 자본이나 사적 영역에 예속되지 않는 체제였고,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시장을 통해 필요한 거래를 하고 국가는 자유로운 거래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하는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자유방임주의자들과 이들이 내세우는 규제 없는 시장경제에 무엇보다 동조하는 친기업 세력들은 아담 스미스 식의 시장경제 기반 사회가 현대 경제 체제에서도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이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주입해 왔습니다.

편측공간실인(片側空間失認, hemiagnosi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의 한쪽의 통증을 다른 쪽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입니다. 자유방임주의가 현대 사회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상가, 정치인, 그리고 이를 믿는 꽤 많은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편측공간실인 증세를 보이는 환자 같습니다. 경제에 관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인 거죠. 오늘날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 안에서 정작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거의 완벽하게 눈을 감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버젓이 하는 겁니다. 주지하다시피 고용 계약은 결국 노동자들이 기업이라는 책임성 없는, 제멋대로인, 사적인 통치 주체에 예속되는 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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