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직장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1/3)
2017년 7월 20일  |  By:   |  경제  |  No Comment

미국 회사들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해 몇 가지 알려진 사실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아마존은 근무 중인 직원들끼리 잡담을 나누지 못하게 금지했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아마존은 잡담을 “시간을 갉아먹는 도둑”으로 규정했습니다. 애플은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개인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합니다. 소지품 검사 시간은 근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데, 직원들은 매일 30분 가까이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식품 회사 타이슨은 가금류 처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무 중에 화장실도 못 가게 합니다. 어떤 노동자는 관리자로부터 대놓고 조롱을 받는 사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강제로 소변을 보기도 했습니다.

딱히 아무런 징후가 없어도 미국 노동자의 절반가량은 회사에서 상시로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받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적인 행위에 동원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몇몇 회사들은 공식적으로 직장인 건강보험에서 피임 관련 비용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많은 회사가 운동을 안 하거나 살을 빼지 못하는 직원에게 값비싼 건강보험을 들게 하는 식으로 비용을 떠넘깁니다.

회사와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밥벌이 수단을 제공하는 데 대한 대가로는 지나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노동자의 삶을 규제합니다. 일하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government’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정부’라는 의미보다는 ‘다스리다’, 혹은 ‘통치하다’라는 뜻을 가진 ‘govern’의 명사형으로써 ‘government’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삶의 특정 영역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뜻을 거스를 경우 일종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때 이를 다스리는 주체라는 뜻에서 ‘government’라고 칭합니다.

흔히 우리는 ‘government’ 하면 국가 권력을 먼저 떠올립니다. 국가는 ‘다스리는 주체’ 혹은 ‘통치 주체’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모든 조직에는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 통치하는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일을 처리할 때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결정을 내릴지, 조직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못한 하부 구성원에게 어떤 식의 처벌이나 제재를 어떻게 가할지 등이 이러한 규율에 포함됩니다.

사기업의 관리직 임원들은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강등하고, 임금을 삭감하거나 더 나쁜 조건에서 더 오래 일하게 할 수 있으며, 이런저런 방식으로 괴롭힐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죠. 기업의 최고 경영진은 어떤 의미에서 소규모 정부의 수장과도 같습니다. 특히 일하는 동안 노동자의 삶을 규정한다는 데서 그렇고, 사실 근무시간 외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합니다.

모든 통치 주체에는 최상위 법인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은 민주주의든 독재든 아니면 다른 형태든 통치 방식을 규정하죠. 미국 같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스리는 주체는 공공의 것입니다. 통치를 받는 대상에 투명해야 하고, 통치를 받는 대상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죠. 다시 말해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이 통치자가 잘못했을 때 통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든 정부가 이런 식으로 공공의 것이지는 않습니다. 과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죠. 통치 주체인 국가를 왕이 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이 말은 통치받는 이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권한이 통치자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아닌 신민에게는 왕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는지 알 권리도, 신민의 이익을 고려해 통치에 관한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할 권한도, 왕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도 없습니다.

 

국가가 “공적 영역”으로 옮겨오는 사이 미국의 일터는 여전히 철저히 “사적 영역”에 머물러

전형적인 미국의 일터는 아직도 루이 14세의 정부에 더 가깝습니다. 통치 주체가 통치 대상에 구애받지 않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회사 관리직이나 임원들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관해 비공개로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대량 해고나 직장 폐쇄 같은 노동자들의 생계에 직결되는 사안도 사전에 아무런 고지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부하 직원을 종처럼 부리며 모욕적으로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임원들을 보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란 가치가 인정받을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직장 내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충과 고역은 회사 차원에서 혹은 임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 (부하 직원들을 가혹하게 질책하거나 업신여긴 사례로 월마트아마존 임원들의 행태가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모욕적인 일을 당해도 가해자인 직장 상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습니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해고할 수도 없고, 명백한 차별 행위가 아닌 한 부당 행위로 상사를 고소하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왜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사적인 통치의 굴레에 구속되는 걸까요? 국가의 통치 기준을 적시한 헌법에 해당하는 것이 직장에서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규정한 고용법입니다. 사용자 마음대로 고용을 정할 수 있다는 기본 조항은 사용자가 갖는 강력한 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체결한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용자는 노동자의 삶을 전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근무에 관한 사안뿐만 아니라 근무시간 외의 삶도 영향을 받죠. 사용자들은 이 권력을 마음껏 사용해 왔습니다.

잔디 관리 회사인 스코츠는 근무시간도 아닌데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레이크랜드 은행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유권자와 만나는 행사를 열지 않아 문제라는 청원을 제기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뻔했습니다. 뉴저지 주 공화당 소속인 해당 의원 로드니 프렐링귀센이 레이크랜드 은행에 이 사실을 전하며 에둘러 징계를 종용했기 때문입니다. 샌디에이고 크리스천 칼리지는 결혼 전에 성관계했다는 이유로 담당 교사를 해고했습니다. 그리고는 해고한 교사의 약혼자를 그 자리에 채용했습니다. 직장 상사는 가히 독재자나 다름없고, 노동자는 독재자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힘없는 이들처럼 보입니다.

미국 사회는 지금껏 이러한 고용주의 전횡과 횡포를 제대로 공론화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노동자가 마치 직장 상사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처럼 말하며 현실을 외면해 왔습니다. 우리는 규제받지 않는 시장이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배웠고, 시장의 자유를 위협하는 유일한 적은 국가라고 배웠습니다. 시장의 모든 행위자는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노동자도 자신이 원하면 노동 계약을 맺고 일하고, 원치 않으면 일을 그만두며 이 과정은 철저히 노동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자유로운 시장 질서에 간섭하려는 정부를 향해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 정작 거의 모든 일터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런 독재와 전횡에는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복스)

원문보기

2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