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스트 트럼프 시대, 성조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017년 7월 11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늦게까지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 잠들었던 대선 다음 날 아침, 여전히 현실 부정 상태로 러닝화를 신고 나서려다 주춤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뉴욕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외로 이사온 후, 일상에 전에 없던 긴장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는 바로 몇 달 전, 무장도 하지 않은 흑인 남성이 대낮에 교통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가 총에 맞아 죽은 곳이니까요.

선거 후 첫 아침 운동을 나서는 제 머리 속에 수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앞서가는 백인 여성을 겁주지 않으려면 뛰는 속도를 낮추어야 할까? 맞은 편에서 개와 산책하는 백인 남자가 보이면 길을 내주어야 하나? 내 옷차림이 범죄자가 아닌 아침 운동 중인 평범한 주민이라는 인상을 충분히 주고 있나?

잠깐의 망설임 끝에 문을 나섰지만, 모퉁이를 돌기 무섭게 저는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성조기가 여기저기 내걸린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집에서 무서운 개를 풀어 키우는지까지 알만큼 익숙한 거리였기에 즉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30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제게 성조기는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조기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든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습니다. 평범한 애국심의 표현일 뿐인, 마당에 내걸린 성조기가 갑자기 “새로운 미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새로운 미국”이란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기간 내내 강조했던 바로 그 미국, KKK단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던 비전으로서의 미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기어코 당선시키고 만 미국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적이고 이슬람혐오적이며 고립주의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질수록, 나부끼는 성조기의 숫자 역시 늘어났습니다. 남부기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던 최근 몇 년 간의 분위기 속에서 마지못해 남부기를 내려놓았던 자들이 대선 결과에 고무되어 애국자를 자처하며 성조기를 집어든 것일까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가장 최근까지도 주 의사당에 남부기를 게양하던 곳입니다. 2015년 6월, 백인우월주의자를 자처하는 청년이 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간 후에야 남부기를 내리기로 결정한 동네이기도 하죠.

미국 역사를 알면 맥락이 조금 더 보입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달리 성조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추앙은 남북전쟁 이후에야 생겨난 현상입니다. 그 전에는 개인이 깃발을 드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노예제 문제로 내전이 일어나고 남부의ㄴ 깃발이 부상하자, 그제서야 북부의 미국인들은 단합과 자유, 애국의 상징으로서의 성조기를 내세우기 시작했죠. 이후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기의 날 지정 등을 거치면서 성조기는 미국의 상징으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고, 오늘날 독립기념일 등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국기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웃의 각 가정에서 성조기가 어떤 의미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알고보면 백인 우월주의 성향을 과시하기 위해 내건 것이 전혀 아닐 수도 있죠. 어쩌면 현 정부의 “미국 우선” 기조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나 외국인들이 방어의 수단으로 깃발을 들었을 수도 있고요. 많은 이들이 그러듯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깃발을 꽂은 집도 있을 겁니다. 별 생각없이 성조기를 걸어놓은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테죠.

분명한 사실은 인종차별이 모양을 바꾸어가며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한 때는 노예제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 그 다음에는 인종차별법으로, 인종 간 분리로 모습을 바꾸어 유지되었죠. “마약과의 전쟁” 역시 또 다른 이름의 흑인 탄압이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억압과 차별의 상징에 늘 주의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최근 버즈피드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하에서 진행 중인 여성혐오와 종교적 불관용, 인종 차별의 주류화는 학교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고 합니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 성조기가 더 이상 단합의 상징이 아닌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티셔츠를 입은 백인 소년들이 미국 국가를 부르며 흑인 소녀 하나를 둘러싼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국가는 1814년 프랜시스 스캇 키가 성조기에 헌정한 시를 가사로 붙인 노래죠. 소년들은 노래의 마지막 구절 “용자들의 고향에서(and the home of the brave)”를 “노예들의 고향에서(and the home of the slaves)”로 바꾸어 불렀다고 하죠. 선거 당일에는 오리건 주 실버톤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트럼프 지지 팻말을 든 학생들이 성조기를 휘날리며 라틴계 학생들에게 추방 협박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지난 번 뉴욕을 방문한 저는 제가 도시에서 제일 좋아하는 지역을 산책했습니다. 블루밍데일스 백화점과 플라자 호텔 등 뉴욕의 유명 건축물들이 모인 5번가와 59번스트리트 구역이었죠. 거기서 몇 블록을 더 걸어 뉴욕의 또 다른 랜드마크이자 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트럼프타워까지 둘러봤습니다. 일종의 연구일 수도, 순례일 수도 있는 산책을 통해 저는 대통령 선거 후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자랑스레 흔들고 있는 성조기가 우리 대통령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발견하기를 바랬습니다. 트럼프타워에 도달한 저는 화려한 금빛 외벽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조기는 단 하나도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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