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치료하는 동물들 (3)
2017년 6월 8일  |  By:   |  건강, 과학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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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동물은 어떤 식물이 약효가 있는지를 처음에 어떻게 알았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수수께끼 같은 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비얄바는 기생충에 감염된 양이 그렇지 않은 양에 비해 목초지에 풀어놨을 때 먹어본 적 없는 풀을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보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neophobia)”이라 부르는 습성이 모든 동물에게 있기 마련인데, 양들은 아프고 나니 이 습성을 자연히 조금 버리고 모험을 택한 듯했습니다. 즉, 어떤 맛일지 모르니 좀 걱정은 되지만, 새로운 풀을 먹어보고 혹시 그중에 지금 아픈 걸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약효가 있는 풀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였죠.

허프만은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경향을 “미리 적응하기(pre-adaptations)”라고 부릅니다. 이 사례에서는 약용 식물이나 의료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해 평소 같으면 입에도 대지 않았을 쓴맛이 나는 풀을 먹어보고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는 기제가 “미리 적응하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모험적인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 관한 근원적인 통찰을 자세히 풀어쓰면 아래의 논리 정도가 될 것입니다.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다른 개체에 독이 되는 물질이나 해로운 화합물을 함유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 독들은 무척추동물이나 미생물을 겨냥한 것인데, 동물을 아프게 하는 균이나 기생충도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맛이 없어서 피하게 되는 식물도 동물을 아프게 하는 원인인 균이나 미생물을 퇴치하는 데 쓸모가 있을 확률이 높게 되는 것이다.

원숭이나 유인원, 양이 몸이 아프다고 수술을 하지는 않습니다. 백신을 발명하지도 않았고, 인슐린을 대량 생산하는 법을 알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칼룬데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관찰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간단한 실험을 통해 발견한 전통적인 인간의 치료법이 동물의 자가 치료보다는 훨씬 더 정교하고 앞선 방법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의 자가 치료는 우리에게 의료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던져줍니다. 허프만은 인간이 한 가지 성분만으로 약을 지으려 할 때 동물은 여전히 여러 가지 항균, 구충 성분이 섞인 식물을 약으로 한꺼번에 섭취하는 점을 예로 듭니다. 사실상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한꺼번에 먹음으로써 동물들은 한 가지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위험을 최소화합니다.

비얄바의 연구에서 실질적인 함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은 물론 가축에서도 구충제나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초식 동물은 스스로 약효가 있는 식물을 가려내 치료할 수 있으니 한두 가지 풀이나 사료만 먹이는 대신 다양한 풀을 먹어보고 시험해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가축들은 스스로 필요한 약용 식물을 가려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주인으로서는 약값을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입니다. 또한, 이론적으로 보면 항생제에 내성을 지녀 박멸하기 어려운 슈퍼버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비얄바는 넓은 초원을 누비며 다양한 풀을 뜯어 먹는 가축들이 좁은 지역에서 늘 먹는 풀만 먹는 가축보다 더 건강하다고 전한 목장 주인들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아마 가축들도 아프면 스스로 치료해 건강한 것일 겁니다.

군집 붕괴현상 등으로 인해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작물의 꽃가루받이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데도 동물의 자가 치료를 응용할 수 있습니다. 벌들은 특정한 나무에서 송진을 모읍니다. 감염을 막고 무리를 보호하기 위한 이런 행동은 일종의 사회적 면역 혹은 집단 자가 처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농업 환경에서 꿀벌이 송진을 채집할 수 있는 나무들이 귀해졌다고 미네소타 대학교의 곤충학자 마를라 스피박은 말합니다. 송진의 부족은 꿀벌 군집이 특정 질병에 취약해져 폐사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합니다.

동물은 (사람보다) 높지 않은 지능 탓에 오히려 더욱 과학적인 절차를 철저히 지키는 면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즉, 동물은 어쨌든 원인과 결과를 철저히 따르고 그에 맞춰 행동을 조정하며, 경험을 통해 학습한 걸 그대로 실천합니다. 반대로 사람은 가끔 근거가 별로 없거나 아예 없는데도 그럴싸한 이론을 만들고 거기에 휩쓸리곤 합니다. 오히려 덜 과학적이죠. 피뽑기(bloodletting)로 알려진 치료법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고 오히려 환자를 더 아프게 하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수백 년간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피뽑기 치료는 질병에 관한 고대의 이론에서 비롯됐는데, 즉 질병이란 인체의 필수적인 액체인 체액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생기는 것으로, 피를 뽑는 등 조치를 취해 체액을 다시 균형 잡히게 해주면 병이 낫는다는 이론입니다. 천식을 흡연으로 치료하거나 매독을 성 경험이 없는 사람과의 성교를 통해 치료하는 등 능률은커녕 위험천만한 치료법은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물도 당연히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믿음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건 인간만이 저지르는 과오로 보입니다. 현대 의학을 통째로 부정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대신 더욱 간절히 기도하라고 종용하는 일부 종교 단체 때문에 신도들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차우시쿠나 침팬지라면 절대 그런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침팬지가 약으로 대용하는 식물은 아무런 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공허한 믿음으로 찾아낸 약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험으로 검증한 약이기 때문입니다.

효험이 입증된 약을 집중적으로 처방해 병을 치료하는 이른바 증거 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은 역사적으로 인간이 앞서 언급한 인간의 부족함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전공의가 되기 전에 수년간 엄격한 수련을 거치는 오늘날의 의사들에게도 결국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넘어 추론에 바탕을 두고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증거 중심의학의 부상은 어떤 면에서 동물처럼 하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이론이나 가정, 대우주를 아우르는 설명 따위에 너무 기댈 일이 아닙니다. 대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바탕으로 실증적인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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