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한 트럼프, 그 뒤를 받친 공화당
2017년 6월 5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언론에는 “제멋대로인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 혹은 “백악관 실세인 수석 고문 스티브 배넌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정”처럼 이번 일을 개인의 결정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았겠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이는 핵심을 비켜 나간 분석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보수적인 정치세력 전반을 넘어 공화당에도 단단히 뿌리 내린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란 미국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라는 어떠한 요구에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화당과 보수적인 미국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각오로 줄기차게 기후변화 논의 자체를 부정해 왔습니다.

트럼프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해 2016년 대선에서 이겼더라도 마찬가지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 대부분, 보수 성향 싱크탱크, 정치 단체, 보수 언론, (석유 업계를 비롯해) 보수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는 백만장자들을 아우르는 정치 세력은 한목소리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해 왔습니다.

파리 협정에서 탈퇴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하는 공화당 의원들도 환경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찬성합니다. 또한, 실제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의무를 지우는 행동에는 소극적으로 나서거나 훼방을 놓을 것입니다. 어차피 파리 기후변화협정은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니었습니다.

공화당은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당 안에서도 조금씩 논점이 다른데, 먼저 산업화를 비롯한 인간의 행위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하며 그런 주장은 진보 진영에서 만들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115차례나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는 트윗을 올린 트럼프 대통령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좀 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정치인도 있는데, 이들은 기후변화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재앙이 올 수 있다며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혹은 기후변화 대책이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실천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방점이 조금씩 달리 찍히기는 해도 결론은 같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됐든 간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기후변화를 앞장서서 의제로 삼고 정책을 추진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는 무엇보다 공화당 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합의된 당의 정강이나 다름없습니다. 후원자, 당원, 정치인, 전문가, 유권자 모두 큰 틀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이해하는 데 공화당 전체의 일치된 목소리는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트럼프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는 보수적인 정치인과 유권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의 결단을 상식에 어긋난 독선이자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내부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트럼프의 결정은 그저 당의 바람을 행동에 옮긴 것일 뿐입니다. 우리 편 안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걱정 따위는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쉬운 결정이었습니다. 공화당 내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던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꼽아보겠습니다.

  •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넬을 비롯한 공화당 상원의원 22명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파리 협정 탈퇴를 촉구.
  • 헤리티지 재단, 미국 번영의 길(Americans for Prosperity) 등 보수 성향 싱크탱크, 그리고 오랫동안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해 온 허트랜드 인스티튜트(Heartland Institute) 등 정치 단체 40여 곳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파리 협정 탈퇴 촉구.
  • 폭스 뉴스와 브레이트바트 등 친 트럼프 성향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보수 성향이면서도 트럼프를 탐탁지 않게 여겨 온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도 편집장과 주요 필진이 칼럼에서 트럼프의 파리 협정 탈퇴를 칭찬.
  •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참여하기로 하고 서명했을 때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모든 후보가 일제히 이를 맹비난. 마르코 루비오는 파리 협정을 “재미도 없는 우스갯소리”로 폄하했고, 존 케이식은 “파리에서 한가롭게 기후변화 논의하기 전에 IS부터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 테드 크루즈는 대통령이 되면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발 빠르게 공약에 넣었고, 젭 부시도 “미국 경제에 짐이 될 게 뻔한 협상장에는 아예 가지도 말았어야 한다.”고 비난.

 

탈퇴는 지나치다고 말하는 공화당원들도 대부분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는 트럼프의 기조에는 찬성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와 관계없이 이미 공화당원 대부분은 환경 관련 규제를 대폭 없애고 기후변화 대책을 사실상 백지화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박수갈채를 보내 왔습니다.

스캇 프루잇(Scott Pruitt)을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프루잇은 정부가 탄소 배출을 앞장서서 규제하는 데 완강히 반대해 온 인사입니다. 프루잇은 오클라호마 주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환경보호청이 기후변화나 대기오염과 관련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집행하던 규제와 관련해 일어난 법정 다툼에서 예외 없이 규제를 무력화하는 편에 섰습니다. 그는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과학적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의원이라면 당연히 이런 사람을 환경보호청장에 앉히려는 대통령의 임명에 반기를 들었어야 하지만,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프루잇의 임명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건 수잔 콜린스(메인 주)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사실상 전부 다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이 환경보호청장에 앉아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공화당 의원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2016년 퓨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유권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온난화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공화당 유권자는 23%에 불과했습니다.

가끔 공화당 내에서도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외 없이 축출되거나 엄청난 낙선 압박에 시달리며 뜻을 꺾어야 했습니다. 2010년 탄소 배출 거래 관련 법안을 상정하려던 린지 그레이엄 의원을 폭스 뉴스는 맹폭했습니다. 유권자들의 항의와 낙선 운동 위협도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공화당 소속으로 계속 배지 달고 있으려면 기후변화에 관해서는 찍소리도 안 하는 게 상책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트 롬니도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협정에서 탈퇴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듯 기후변화에 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해수면 상승을 막거나 병든 지구를 치료하려고 미국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선에서 패한 지 3년이 지난 2015년에서야 공개적으로 기후변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의 양대 정당 가운데 한 곳은 탄소 배출 감축을 비롯한 환경 관련 규제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권자와 당원, 정치인으로 똘똘 뭉친 곳입니다. 이 정당을 대표해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는 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복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