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FBI 국장 전격 해임, 제2의 워터게이트로 비화할까? (2)
2017년 5월 11일  |  By:   |  세계, 정치  |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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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 국장이 증언한 지 이틀이 지나, FBI가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수사하고 있다는 CNN 보도가 나옵니다.

FBI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진이 클린턴 캠프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정보를 퍼뜨리는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 요원들과 교감하며 시기를 조율했다는 의혹에 관해 믿을 만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FBI는 자체 정보망과 여행 기록, 통화 내용, 관계자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 CNN 보도 –

CNN은 해당 정보가 사실로 굳어진 것은 아니라고 전하면서도 트럼프 정권 관계자들이 스캔들에 광범위하게 연루된 정황이 수사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만약 트럼프 캠프가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와 모의해 상대 후보 진영에 대한 해킹을 도왔거나 방조했다는 점을 FBI가 사실로 밝혀낸다면 이는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할 사안이 됩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출된 제임스 코미 FBI 국장 (사진: 게티이미지)

 

4월 초가 되자, FBI는 수사 인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고 아예 워싱턴 DC에 특별 수사팀을 설치해 수사를 이어갑니다. 그러는 동안 하원 정보위원회의 조사에도 진척이 없었는데,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타워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자신을 사찰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주장을 누네스 위원장이 귀담아들어야 한다며 위원회의 조사를 지연시킨 탓이 컸습니다. 하원보다 인력과 재정 지원이 부족해 조사력이 낮은 상원 상임위원회의 조사도 더디기만 했습니다. 상원의원들이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의외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FBI가 트럼프와 러시아 정부가 모의한 의혹을 의회나 여느 언론이 파헤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아주 진지하게 수사했습니다. FBI는 그럴 수 있는 재원과 수사 인력을 갖춘, 조사 장비와 경험이 쌓인 조직이었고, 무엇보다도 수사기관의 장이 이 사안을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과 세션스 법무부 장관은 수사기관장을 찍어냈습니다.

 

민주당, “이번 사건은 제2의 워터게이트”

코미 국장이 해임된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즉각 이번 사건을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 스캔들로 기록된 워터게이트에 비할 만하다며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어 민주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때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제도를 소환합니다.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죠.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별검사는 의회의 승인 없이도 증거를 모으고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특별검사입니다.

키르스텐 질리브랜드(민주당, 뉴욕)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트럼프 정권과 러시아 정부의 관계를 낱낱이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합니다.”

브라이언 샤츠(민주당, 하와이) 상원의원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사안에서) 특별검사에 반대하는 주장은 애초에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이제 그 빈약하던 근거마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한 여론의 향배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촌평이 있다면 에드워드 마키(민주당,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의 발언일 겁니다.

“코미 국장의 해임 과정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당시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Saturday Night Massacre)과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법무부가 거부하면서 대혼란이 야기되고, 마침내 닉슨 대통령은 탄핵을 앞두고 스스로 물러납니다.

워터게이트는 미국 정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입니다. 이후 정치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것도 워터게이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워터게이트조차 처음부터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순식간에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극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토요일 밤의 대학살입니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좁혀오는 수사망을 와해시키려 마지막 수를 던집니다.

1973년 10월, 닉슨 대통령에게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축소를 지시한 닉슨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백악관 집무실 회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소환장을 발부합니다. 닉슨은 이를 거절했죠.

10월 20일, 궁지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엘리옷 리처드슨 법무부 장관에게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명령합니다. 리처드슨 장관은 이에 반발해 사임합니다. 닉슨 대통령은 윌리엄 러클쇼 법무부 차관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고, 러클쇼 차관도 이에 반발해 물러납니다. 이 사건이 바로 토요일 밤의 대학살입니다. 닉슨 대통령은 연방 수석 검사였던 로버트 보크 검사를 법무부 차관대리로 임명한 뒤 간신히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의혹을 무마하려는 닉슨에게 여론은 등을 돌리고 닉슨은 탄핵이 가결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사임합니다. 보크 검사는 후에 대법관 후보로 임명되지만, 청문회에서 인준받지 못하고 낙마합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인사 검증위원장을 역임한 리처드 페인터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세 명이나 바꿔가며 워터게이트 수사를 무마하려다가 낙마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을 수사하는 사람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토요일 밤의 대학살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이번 코미 국장의 해임과 연관성이 높은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데 성공한 닉슨 대통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도 이 사실이 명시돼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또한 특별검사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워터게이트에 관한 모든 수사 권한을 다시 법무부에 귀속시켰다. 워터게이트에 관해 용의자를 수사하고 피의자를 기소하는 일은 법무부의 소임이 되었다.

눈치채셨나요? 바로 이 지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지 자신의 선거 캠프가 러시아 정부와 공모해 상대방 후보 클린턴을 음해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사람 한 명을 해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을 해임하며 관련 수사 일체를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이 지휘하는 법무부에 귀속시켰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션스 장관은 그 스스로 러시아 정부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을 위증해가면서까지 숨기려 했던 인물입니다. 그에게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맡기는 건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워터게이트의 결말이 어땠는지 다시 한 번 기억해 봅시다. 닉슨 대통령은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해 어떻게든 수사 자체를 무마하려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얻은 건 아주 짧은 유예 기간이었을 뿐, 닉슨의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1974년 8월 마침내 닉슨은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옵니다. 자진 사임이었지만, 의회가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는 탄핵 소추안 처리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에서의 사실상 탄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번 사안을 제2의 워터게이트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그때와 다른 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마지못해 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이어왔고,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방안이나 9.11 테러 관련 초당적 의회 차원의 조사기구를 세우자는 민주당의 제안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진원지가 백악관에 있는 모든 백악관 발 스캔들은 언젠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지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역사가들이 돌이켜볼 때 “이때 내린 결정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거나 혹은 반대로 “여기서 비롯된 파열음이 탄핵이나 하야로 비화했다.”고 분석할 만한 그런 전환점 말이죠. 우리는 지금 그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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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현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