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 개념의 문제(2/2)
2017년 3월 27일  |  By:   |  과학  |  1 comment

만약 자아의 고갈이 틀린 개념으로 판명된다면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를 그토록 분명한 사실로 믿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한편 이 개념의 등장과 소멸은 의지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그저 생각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관련된 연구들은 의지력을 믿는지 아닌지가 사람들의 자기 통제력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지력이 제한된 자원이며 자아의 고갈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일련의 실험에서 자기 통제력을 더 쉽게 잃었습니다. 편향된 질문지를 통해 자아의 고갈이 존재한다고 믿게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통제 테스트를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지력이라는 개념이 가진 문제는 ‘자아의 고갈’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의지력과 관련된 일반적인 학계의 단순화 역시 공격받고 있습니다. 널리 인용된 2011년 논문에서 후지타 켄타로(Kentaro Fujita)는 동료 심리학자들에게 자기통제력을 충동억제노력(effortful impulse inhibition) 이상으로 개념화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며, 장기적인 동기의 관점에서 보다 폭넓게 접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몇몇 행동경제학자들은 자기 통제는 단순히 단기 욕망의 억제가 아니라 “내적 자아 간의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리 내부의 다양한 의사 결정 시스템이 때로 충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델은 시간에 따른 우선순위와 동기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정확히 내게 찾아왔던 존이 자신의 음주 습관이 주는 여러 장단점을 새롭게 비교한 일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간과된 자기통제의 또 다른 측면은 감정 조절(emotion regulation)입니다. 이는 최근 몇십 년 동안 발전된 분야로, 1990년대 초반 이후 5년마다 다섯 배씩 인용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기통제의 이러한 측면이 간과된 이유 역시 의지력이라는 1차원적 개념이 이 분야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종류의 의지력에 감정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짜증 나는 친척에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감정적 자기조절은 매우 복잡한 기능이며, 정신의학에서 오랫동안 확인해온 것처럼 한 사람의 감정적 상태를 완력으로 관리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조절하려면 주의를 전환시키고(다른 생각을 하게 만듦으로써), 생리적 반응을 조절하고(심호흡을 하게 하는 등), 부정적 감정을 참고 인내심을 키우며, 생각의 관점을 바꾸는 등 다양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생각의 관점을 바꿀 경우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예를 “미래 할인(temporal discounting)” 현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미래의 큰 보상보다 지금 당장 주어지는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오늘 5달러와 한 달 뒤의 10달러를 선택하게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당장 5 달러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때 두 선택을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내도록 질문을 바꾸면 – 예를 들어 “오늘 5달러를 받고 한 달 뒤에 0달러를 받을래, 아니면 오늘 0달러를 받고 한 달 뒤 10달러를 받을래?” 처럼 – 사람들은 미래의 큰 보상을 선택했습니다. 즉, 질문의 관점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은 다른 인지 기능을 이용해 이 문제에 접근하게 되며, 이는 사람들이 현재보다 미래의 가치를 더 높게 판단하도록 만듭니다. 뇌 영상을 이용한 연구에서, 질문이 바뀌었을 때 사람들의 뇌에서 보상 영역의 활동 감소와 더불어 자기통제와 관련된 측면 전두엽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적 관점의 변화는 의지력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 의지력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지력과는 다릅니다. 이런 종류의 의지력은 그저 충동에 저항하려는 능력이 아니라, 애초에 저항할 필요가 없도록 문제를 재정의하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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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지력의 다양한 측면은 기존의 학문적 정의에 의문을 가지게 하며, 또한 우리가 많은 것을 잃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의지력을 편협하고 단순하게 정의할 경우 이 개념은 거의 쓸모없어질 것이며, 모호한 상태로 계속 사용할 경우 그저 다양한 정신적 기능의 잡탕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의지력은 연구에서 도출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철학적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며 엄격한 실험이 가능해지기 전에 이미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버린 것으로, 어쩌면 과학 이전 시대의 유물과 같은 개념일지 모릅니다. 이 용어가 현대 심리학에 자리 잡은 이유는 이 개념이 상상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지력을 근육처럼 생각하는 것은 욕망에 저항하는 것과 같은 제한된 예에서 잘 맞아떨어지며, 이는 또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서 시작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며, 자기통제를 위한 노력 역시 방해합니다. 이제 이 “의지력”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도덕적 문제들 또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의지력이라는 개념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 쉽게 사용됩니다. 만약 가난이 경제적 원칙을 지키지 못한 문제라면, 그리고 건강이 개인의 의지력의 문제라면 사람들은 더 쉽게 사회적 안전망을 해체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는 마약과의 전쟁에 있어 마약의 사용을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치부해 처벌만이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일반적인 사회 문제를 과도하게 도덕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속합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쓰레기가 문제가 되자 아메리칸 캔 컴퍼니(American Can Company)와 다른 기업들은 “미국을 아름답게 유지하자(Keep America Beautiful)”라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그들이 제조하는 엄청난 양의, 많은 이익을 주는 저질의 포장재가 아니라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의지력에 기반을 둔 도덕적 지탄은 가장 손쉬운 비난의 도구입니다.

특히 의지력에 대한 믿음은 전적으로 불필요합니다. 이제 나는 “의지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를 더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낍니다. 토마스는 정말 의지력의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일까요? 비록 술을 계속 원하는 건 문제이긴 했지만, 그는 직장에서는 계속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뉴욕 시에서 개최하는 아마추어 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바람직한 목표를 좇아가며 생활하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에 대한 욕구는 참지 못했지만, 이 문제가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계획을 고수하는 데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를 “자기 훈련(self-discipline)”이라 부르며 충동을 제어하거나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과 구별합니다. 이 중 어떤 능력이 “진짜” 의지력일까요?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이미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결국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음주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가 사실 자신이 느끼던 스트레스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몰아붙였을 뿐 아니라 자신이 술을 강제로 즉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직장과 가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관리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를 엄밀하게 따져보는 등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식의 접근을 통해 그는 그렇게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음주량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력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죠.

1부로

(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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