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로운 PC의 도래, “포퓰리즘적 올바름”
2017년 3월 3일  |  By:   |  문화, 세계, 정치, 칼럼  |  1 comment

미국의 트럼프 집권,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함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무슨 말이든 거리낌없이 할 수 있고, 누구를 공격하거나 기분 상하게 하는 말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정치적 올바름이 죽고 불탄 잿더미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PC문화가 있습니다. 가히 “포퓰리즘적 올바름(Populist correctness)”라 부를만 한 현상입니다.

새로운 PC는 특정 시각에 “엘리트주의”, 즉 “대중의 뜻에 반하고 애국적이지 않다”는 딱지를 붙여 폄하하고 침묵시키는 문화입니다. 브렉시트 반대파를 “영국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민주, 비애국 불평분자들”로 몰아가는 현재 영국의 분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헤드라인이 타블로이드지 1면을 장식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죠.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려 한다니,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보수주의자들의 평소 원칙에 어긋나는 모습이 아닙니까!

새로운 PC의 교활한 구석은 스스로 민주주의인 척 포장한다는 점입니다. 테레사 메이 총리 역시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향해 “지금은 영국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표출한 의견에 딴지를 걸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브렉시트는 “영국 국민의 뜻”이 아닙니다. 찬성은 1740만 표, 반대가 1610만 표,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 1290만 명에 달합니다. “영국 국민의 뜻”이란 매우 복잡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클린턴이 300만 표 이상을 더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PC란 이런 불편한 세부 사항은 무시하고, 모든 것을 일반 대중과 엘리트의 대립으로 파악합니다.

새로운 PC문화는 반대하는 목소리에 엘리트주의라는 낙인을 찍을 뿐 아니라, 사상과 아이디어에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우파는 자신들이 무엇이든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 하지만, 실제로 나치를 나치로, 인종차별주의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렀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나치라니요, “대안 우파(alt-right)”죠.

단어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내는 것은 리버럴들의 전유물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던 모양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이 늘 리버럴들을 향해 “민감한 눈송이”라고 놀리길래, 자신들은 안 그런 줄 알았죠.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 스타벅스 종이컵에서부터 이민 문제를 다룬 버드와이저 광고, 바지를 입지 않은 개구리 캐릭터 커밋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에 화를 내곤 합니다.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조롱은 그냥 농담일 뿐이라면서, 백인을 농담의 소재로 삼으면 “역(逆)인종주의”라며 발끈하죠. 실제로 넷플릭스가 “백인들에게(Dear White People)”이라는 코메디 프로그램을 선보이자 백인 회원들이 줄지어 탈퇴하기도 했으니까요.

연말 인사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스로를 매우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미국인 가운데 종교적인 연말 인사(Merry Christmas)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10%에 불과했지만, 스스로를 매우 보수적이라고 여기는 미국인 가운데 종교색이 없는 인사(Happy holidays)에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은 그 두 배에 달했죠. 국가가 나오는 가운데 무릎을 꿇는 행위도 문제가 됩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국민의례 중에 무릎을 꿇은 미식 축구선수는 스스로를 “애국자”로 부르는 수많은 미국인들로부터 격한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래도 리버럴이 “민감한 눈송이”인가요?

민감한 눈송이의 제왕은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비난의 기미만 보여도 어마어마한 분노를 표출하죠. 뮤지컬 “해밀턴” 출연진이 극장을 찾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매우 정중하게 항의 표시를 했을 때도, 대뜸 “극장은 안전하고 특별한 공간이어야 한다”며 발끈하는 트윗을 날렸습니다.

이렇게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를 비하하고 놀려대다가도,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는 이데올로기적 분노를 쏟아냅니다. “민감한 눈송이”들은 모든 것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조롱당했습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한발짝 더 나아가 자신들의 분노를 도덕적으로 옳은 것으로 포장합니다. “나”를 모욕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나라”를 욕보였으니 나의 분노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이죠.

새로운 PC의 가장 위험한 점은 리버럴들이 이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늘 자책에 일가견이 있던 리버럴들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크게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대중들로부터 동떨어진 엘리트주의자였을지 모른다고 자책하는 칼럼이 줄을 이었죠. 정말로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이 잘못이라고, 인종주의자라는 말 대신 대안 우파라는 말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PC, 포퓰리즘적 올바름은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언어를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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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환

    진짜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 칼럼쓴 이가 다 해주네요!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