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발전소
2017년 3월 2일  |  By:   |  Blog  |  No Comment

머리말

2016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키워드 촛불에 외신들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최순실이란 이름과 박 대통령의 측근이 저지른 범죄 혐의, 그리고 박 대통령의 연루 혹은 범죄 지시 혐의에 대한 보도 못지않게 시민 수백만 명이 평화롭게, 하지만 대단히 끈기 있게 벌인 촛불집회를 직접 민주주의의 인상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했다. 외신이 바라본 촛불의 기록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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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시민들, 촛불을 들다

미르 재단, 최순실 씨 태블릿 PC에 드러난 국정개입 정황 등 국내 언론이 국정농단 사태에 관한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자 (영미권) 외신들도 10월 말부터 박근혜 게이트 관련 소식을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함께 든 촛불은 외신에 사안의 중대성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10월 29일. AP통신은 “한국 시위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라는 제목 아래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 소식을 전했다. 10월 29일 집회는 ‘박근혜 게이트’의 서막이 열리고 모인 첫 번째 촛불이었다. 기사는 촛불집회 자체보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에 관해 한국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박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사이비 종교지도자의 딸이자 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최순실 씨는 대통령의 중요한 연설문을 수정하고 주요 인사에 개입했으며, 공익 재단을 세운 뒤 대기업에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추산 1만 2천 명의 시위대는 서울시청 광장 주변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시민들은 또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누가 진짜 대통령이냐”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10월 30일. BBC도 “한국 정부 스캔들: 박 대통령의 친구 최순실 씨 귀국”이라는 제목으로 불거지는 게이트 상황을 보도하며 촛불 집회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지난 29일 거리에 나선 시위대가 든 팻말에 적힌 글귀다. 집회에 참석해 발언한 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TV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을 진정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국정 실패를 둘러싼 비난만 거세졌다.

같은 날 CNN도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을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시위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였다.

 

11월: 불어나는 의혹, 커지는 촛불

유권자가 뽑은 대통령 대신 권력을 위임받은 적 없는 인물이 국정을 좌우한 정황은 한국 언론의 취재를 통해 연이어 드러났다.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대통령은 혐의를 일체 부인하며 일방적인 대국민 사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지만, 의혹은 커지기만 했다. 커지는 의혹만큼 촛불의 규모도 매주 기록을 경신하며 불어났다.

주요 통신사들도 앞다투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을 보도했으며, 외신들도 박근혜 게이트 상황을 보도하면서 특히 축제를 방불케 하는 시위 현장을 소개했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촛불이 모인 토요일마다 외신들은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한 새로운 소식을 타전하며 기사의 시작과 끝에 촛불집회 현장을 조명하고 시위대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11월 5일. 로이터 통신은 “시위대 수만 명,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불어나는 국정농단 의혹과 함께 두 번째 촛불집회 소식을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경찰 추산 4만3천 명, 주최측 추산 10만 명이 모였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갤럽이 한국에서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래 대통령의 지지율로는 가장 낮은 5%로 떨어졌다. 고등학생 변우혁(18) 군은 “평범한 학생인 우리도 사회의 부조리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 친구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와 결합한 3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수는 지난 두 차례 촛불보다 많이 늘어났다. 워싱턴포스트는 “거리에 모인 수많은 한국 시민, 대통령에 저항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최측의 추산을 따라 100만 명이 서울에 모였다고 보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시민들이 서울로 모였다. 토요일 밤 서울 도심에서 평화 시위를 벌인 이들은 노래와 구호를 외치고 팻말과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잇단 스캔들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총 1백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집회와 시위가 잦은 한국임을 고려하더라도 지난 10여 년 넘도록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부패 추문에 이른바 비선 실세가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심각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어제 집회는 토요일을 기준으로 3주 연속 일어난 집회다. 시민들이 운집한 광화문과 청계광장 일대에서 청와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다.

주최측은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에서 평화롭게 치러진 집회에 백만 명이 모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참가 인원을 26만 명으로 집계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어느 경우든 앞선 토요일에 열린 두 차례 집회나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때보다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건 사실이다.

부산이나 울산 등 다른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러 서울로 왔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도 1천여 명에 달했다.

학생, 여성, 노동자 농민 단체들은 삼삼오오 모여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루었다. 공식 행사인 총궐기 대회에는 많은 이들의 발언과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폭력으로 비화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부모, 휠체어를 탄 사람,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나온 가족 등 구성원도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촛불을 밝히며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청와대 쪽으로 평화 행진을 벌이는 사람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내용의 가사를 붙인 구호와 노래를 불렀다.

외신들은 특히 이렇게 많은 시민이 모인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박 대통령과 대통령의 측근들을 수사하는 검찰과 정치권 전체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날인 11월 12일 AFP통신은 “수십만 시위대,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하며 행진”이란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지난 두 차례 집회와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젊은 연인들,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에 은퇴한 노년층까지 다양한 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초등학생 박예나(11) 양은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으니 하야해야 해요.”

행진에 흥을 돋는 북소리에 끊이지 않는 구호, 음악까지 요란한 가운데서도 집회는 상당히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는 기발한 문구와 즉각 퇴진하라는 구호가 담긴 팻말이 곳곳에 가득했다.

조주표 씨는 아내와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어제가 사실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거든요. 원래는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생각을 바꿔서 여행을 취소하고 광화문으로 왔습니다. 어린 딸아이에게 특히 중요한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요.”

11월 19일. 네 번째 촛불집회는 3차보다는 규모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주최측 추산 50만 명이 서울 도심에 모였다.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던 말을 뒤집어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촛불 민심의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로이터 통신은 “박근혜 대통령 물러나라는 수십만 시위대와 현재 상황이 못마땅한 노년층 보수 세력”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4주째 이어진 촛불집회와 함께 규모는 훨씬 작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보수단체 집회를 찾았다.

19일 집회는 지난주보다 참가 인원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서울뿐 아니라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집회가 계속됐다. 수십만 명이 모인 광화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서울역 광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경찰 추산 1만1천 명에 이르는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을 든 시민을 “종북세력”이라고 비난하며, “반정부 시위가 이렇게 거세게 일어나는 모습이 외국 언론에 어떻게 비칠지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과 달리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와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하게 재단 출연금을 모금한 범죄를 공모했다는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후 더 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추운 날씨에 첫눈까지 내렸음에도 서울에만 150만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시위 참여 인원이 26만 명이라고 집계했지만, 2주 전 (주최측 추산) 100만 명에 달했던 집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집회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심지어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초와 방석, 따뜻한 음료나 먹을거리를 팔았고, 일부 노점에서는 시민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행진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 애완견에 옷을 든든히 입혀 나온 시민들도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추운 날씨에 손을 꼭 잡고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가사가 울려 퍼지는 스피커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시민들이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 가운데는 한국의 헌법 제1조 1항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불소추특권 덕분에 박 대통령은 범죄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기소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 발표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자신의 처신이 잘못됐다고 사과했지만, 하야하라는 주요 언론과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일부의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한 촛불 민심의 답은 명확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한 시위대는 큰소리로 외쳤다. “당장 청와대에서 나와라!”

경찰은 버스 수백 대와 경력 수천 명을 동원해 사실상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을 완전히 막았다. 집회가 허락된 건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지점까지였다.

시위대는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행사장 가운데 마련된 무대에서는 유명 가수가 자신의 인기곡 가사를 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으로 바꾼 노래를 불렀다. 박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사진을 합성해 들고나온 시민들도 있었다.

한 편에서는 300명이 넘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 10대 소녀는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똑바로 대응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0명 넘는 사람 가운데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정부가 주도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권은 내년 전국 중고등학교에 국정교과서를 배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시위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을 아버지가 통치하던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대기업을 쥐락펴락하던 건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어둠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는 의미에서 집회 도중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동시에 들고 있던 촛불을 껐다. 광화문 일대가 순간 어둠으로 덮였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해진 임기를 무사히 마쳐서는 안 된다며 탄핵당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생 김용진 군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있자면 정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결말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우리 모두 추구하는 정의가 구현되는 쪽으로 났으면 좋겠어요.”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목소리는 뉴욕타임스 외에도 많은 언론에 지속적으로 소개됐다. BBC도 같은 날인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상황을 전했다. (기사 제목: 박근혜 대통령 반대 시위 사상 최대 규모)

11월 28일 타임은 온라인판에 소개한 “5주째 이어진 대규모 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짚고, 특히 과거에 비해 집회에 나온 여성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집회 규모는 회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다. 노동조합원, 학생, 좌우 정치인들, 여성주의자 시민운동가,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유가족도 시민들과 함께했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기에 인재로 기록될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박근혜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지만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편 여성주의자와는 무척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젖은 나이 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되었고, 여성 대통령보다 ‘박정희의 딸’로서 어필한 측면이 크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박근혜 정권 아래서 오히려 늘어났다. 한국 여성의 유리천장은 점점 낮아지고 갈수록 깨기 어려워졌다. 한국 대중 집회의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대개 남성이었지만,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여성 참가자들의 역할이 돋보인다. 첫 여성 대통령이라지만 한국의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는 사실상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박근혜에 대한 여성들의 실망과 배신감은 상당히 높은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그거 봐라, 여자가 대통령 하니까 이 모양이지 않으냐는 식으로 말하는 게 짜증 난다.”는 식의 이야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온라인 미디어 쿼츠는 12월 1일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세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동시에 가장 평화적으로 조직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규모 인파가 축제처럼 시위를 치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한 달 넘게 이어진 촛불을 100초 길이의 동영상으로 정리해 소개했다. 동영상 속 자막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들은 시위를 정말 잘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화면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 장면입니다. 시위대는 만연한 부패의 배후로 지목된 대통령을 퇴진 직전까지 압박했습니다.

시위를 효과적으로 잘 조직하고 치러내는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첫째,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입니다. 지난주 집회에는 서울 도심에만 150만 명이 모였습니다. 전체 인구의 3%가 촛불을 들고 같은 공간에 모인 겁니다. (미국 인구의 3%는 1천만 명)

둘째, 집회는 비폭력적입니다. (맞불집회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과 일부 실랑이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경찰 2만5천 명이 서울에 투입됐지만, 시위대의 폭력 사태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집회가 끝나면 주변에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하는 일을 돕기도 합니다.

셋째, 집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농민, 노동자, 스님, 학생이 모두 함께 시위를 벌입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과거의 집회에 비해 여성의 참여율이 높아지고 역할이 커진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양성평등이나 여권 신장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넷째, 촛불을 든 시민들의 대체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우선 집회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집회는 또한 재밌습니다. 물론 이들의 목표는 상당히 진지하죠. 하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이나 참가자들이 쓰고 온 재미있는 가면, 팻말을 보면 이내 흥겨운 분위기가 샘솟습니다.

쿼츠는 한국의 집회가 항상 이렇게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1980년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 수백 명을 학살했고, 지난해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서도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있었다고 전했다.

 

12월: 탄핵, 촛불을 다시금 조명하는 외신

12월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모였다. 탄핵안을 발의하고도 다소 갈팡질팡하던 국회에 지치지 않은 촛불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고, 12월 9일 국회는 찬성 234, 반대 56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튿날인 12월 10일에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일곱 번째 촛불은 전날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것을 축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 그리고 이들에게 돈을 건넨 재벌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탄핵이 가결된 뒤 외신들은 특히 그간 이어 온 박근혜 게이트 보도 내용을 한데 묶어 다시 소개하고 전망을 덧붙여 보도했다. 탄핵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상적인 촛불 집회에 관한 분석도 잇따라 내놓았다.

먼저 BBC는 12월 10일, “박근혜 탄핵: 한국 시위대 조속한 퇴진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데 대해 축하하며 서로를 격려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또 조속한 심판을 통해 탄핵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는 “한국 시민, 새로운 시대에 대규모 집회라는 익숙한 무기를 꺼내 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과 2016년 촛불을 비교하며 한국의 시위 문화를 민주화와 민주화 이후의 역사와 함께 소개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뉴욕타임스 도쿄 특파원으로 서울의 시위를 직접 취재했던 수잔 치라(Susan Chira) 기자는 선명하고도 힘 있는 문체로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다.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을 바라보는 외신의 시각이 잘 드러난 이 기사는 전문을 번역했다.

연세 비치 클럽(Yonsei Beach Club).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데모’하는 것을 기록하던 몇 안 되는 기자와 사진사들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1987년의 일이다. 한국 시민들은 엄청난 규모로 거리로 몰려나갔고, 정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끝내 굴복했다.

지금처럼 그때도 대규모 집회는 시민들이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거리 말고는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 시민을 만날 곳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는 시민들은 거리로 나온다. 한국이 민주화를 이룩한 지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간 한국 민주주의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민주화 이전 독재정권 아래서 모든 집회는 불법이었다. 고문과 구금, 계엄령의 공포는 언제나 시민을 옥죄고 있었다.

비치 클럽의 상징은 방독면이었다. 다스베이더 같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진압경찰은 최루탄을 학생들에게 마구 쏘아댔다. 학생들의 무기라고 해봤자 도덕적으로 옳다는 신념을 빼면 돌멩이와 사제 화염병이 전부였다.

한국의 활화산 같은 시위 역사에서 학생들은 오랫동안 최전선을 지켜 왔다. 학문하는 자는 그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유교 전통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1960년 이승만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도,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의 횃불을 먼저 든 것도 학생들이었다. 계엄군은 1980년 광주 시민을 학살했고, 군을 장악하고 진압을 지휘한 전두환은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가 숨진다. 박종철의 나이 21살이었다. 전두환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다. 한국의 독재자는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시민을 억압하고 법 위에 군림했다. 시민들은 마침내 이를 참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1987년 봄 연세대학교에서는 매일 시위가 이어졌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학생들이 모이면 경찰은 이들을 덮쳤다. 학생들의 진격을 막은 건 최루탄이었다. 그러다 연세대학교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머리에 직접 맞아 숨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한열의 나이도 21살이었다.

시위는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서울 도심으로, 전국 주요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의 충돌도 잦아졌지만, 시위대의 요구는 점점 분명해졌다.

동이 튼 거리에는 경찰이 쏜 최루탄 빈 통, 시위대가 썼을 돌멩이 조각이 가득했다. 아직 남은 매캐한 최루탄 가스 때문에 살갗이 따끔거리고 숨 쉴 때마다 허파가 쓰라렸다.

모든 진압 경찰이 방독면을 쓰고 있던 건 아니다. 얼핏 보면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경찰서 근처에 모여 차를 마시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백골단”이라 불린 이들은 진짜 대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깡패나 다름없는 무술 유단자들은 시위대 속에 섞여 있다가 돌변해 시위대를 두들겨 팼다.

하지만 백골단과 폭력 경찰도 끝내 거리에 나선 수백만 시민을 이길 수 없었다. 두려움을 잊은 시민들은 어깨를 걸고 경찰에 맞섰다.

현장을 취재하던 나는 머리에 단정하게 두건을 쓴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이 핸드백으로 경찰을 때리는 모습을 봤다. 젊은 아버지는 어린 딸을 목말 태워 거리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나섰는지 보여줬다. 딸은 두꺼운 마스크를 썼다. 그 마스크가 최루가스를 온전히 차단해줄지 의문이었다. 광주의 한 학생은 혈서로 직접 시위 문구를 작성했다.

시민들은 보도블록을 깨서 대학생들에게 일사불란하게 건넸다. 학생들은 이를 받아 진압경찰을 향해 힘껏 던졌다. 예전에는 집회에 나섰다가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던 사무직 노동자들은 밤에 나와 경적을 울려대며 연대의 뜻을 알렸다. 사람들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거리를 향해 물을 뿌려댔다. 매캐한 최루가스를 조금이라도 희석하려는 의도였다.

하루는 호텔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우리 중 몇 명은 계엄령이 발동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거리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근처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에 전기가 쏠려 발생한 정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멋쩍게 숙소로 돌아왔다.

몇 년 동안 잊을 수 없던 장면은 젊은 학생들을 고문했던 사람에 대한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규모 집회로 전두환 정권의 항복 약속을 받아낸 지 이제 막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피고는 몇 달 전 학생의 목을 욕조 벽면에 짓누르며 저항하는 학생의 머리를 계속해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박종철 군의 아버지는 법정에서 아들을 죽인 경찰관 세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법원 경호원 50명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왜소한 경찰관들의 얼굴에는 이제 두려움이 서렸다. 법원은 상당히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순식간에 이를 비난하는 야유와 비명이 터져 나왔고, 어떤 이는 판사를 향해 지갑을 던지기도 했다. 수감 중인 자녀들의 어머니들이 경찰관의 호송 차량을 향해 달려들며 창문으로 물병을 던졌다. 사복 경찰이 나타나 어머니 네 명을 거칠게 밀쳤고,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에 비해 이번 촛불집회는 대단히 평화롭게 진행됐다. 정부는 집회에 나선 이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한국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지만, 지난 몇 달간 나타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도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은 여전히 약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대치 상태인 북한의 도발이나 간첩 행위 등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안보 위협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악용된 사례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30년 전부터 시민을 억압하는 일에 국가보안법이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반대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직무 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은 진보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고 정당을 이끌던 정치인을 감옥에 보냈다.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죄목이 핵심이었다.

1980년대 현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정부 모든 부처에 안기부 관리를 심어놓았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국정원은 여전히 정부기관 곳곳에 관리를 배치하고 있다. 국정원은 또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여당 출신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를 음으로 도왔다는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부에 비판하는 세력이나 언론을 고소하고 재갈을 물려 왔다. 경찰, 검찰, 국세청 같은 기관은 항상 대통령이 장악하게 되는데, 이번에 드러나고 있는 고질적인 부패는 그 자체로 재앙일뿐더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1987년 당시 젊은 특파원으로서 한국의 민주화 시위를 목도했던 나는 한국 민중의 용기와 강인함, 열정에 경외감을 느꼈다. 이번 촛불 집회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다 30년 전 느꼈던 경외감이 다시 떠올랐다.

민주화 이후 많은 것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순종적이지 않다. 싸이와 강남 스타일의 나라이자,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 인터넷에 중독된 자녀를 해병대 캠프에 보내기도 하는 곳이 한국이다.

이제 서울은 오래전 기억을 간직한 내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번쩍번쩍 윤이 나도록 발전하고 부유해졌다고들 한다. 여전히 안보만을 앞세우던 정권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사회의 2016년 촛불을 통해 내가 다시 한 번 깨달은 오래된 진리가 하나 있다. 민중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가디언도 12월 12일, “한국 시위대 50만 명,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축하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이제 시작이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격앙된 분노를 쏟아내던 시위대는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뒤 처음 열린 촛불집회에서 “국민이 승리했다”며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지난 토요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튿날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했고, 불꽃놀이까지 곁들여졌다.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도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행진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건 변함이 없다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청와대 안에 머물고 있었을 박 대통령은 어쩌면 시위대의 외침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는 즉각 하야하라!”, “당장 퇴진하고 감옥에 가라!”

시민 김혜인 씨는 탄핵은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늘은 국민이 한목소리로 같이 행동하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생생히 깨닫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 없어요.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박근혜의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그 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시민 박성수 씨는 평화로운 혁명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오랫동안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을 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번 탄핵 과정에서는 우리가, 그러니까 국민이 정치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알려주고 정치인이 국민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이 속한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다수 이탈표가 나오면서 탄핵 소추안은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의원들은 매주 춥고 궂은 날씨에도 전국의 거리를 가득 메운 수백만 촛불 민심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으면 이는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고 시민 불복종 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형석 씨는 말했다.

“탄핵이 어그러지면, 그때는 지금의 촛불이 횃불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