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족을 위한 변명 2
2017년 3월 1일  |  By:   |  문화  |  No Comment

옮긴이: 지난해 복스의 브라이언 레즈닉 기자는 최신 연구결과를 인용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삶이 생체주기에 훨씬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습니다. (뉴스페퍼민트가 옮긴 해당 기사 보기: 올빼미족을 위한 변명) 이들에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권하는 건 심한 경우 폭력적인 강요일 수 있다는 거죠. 이번에는 크리스천 투데이의 케이트 셸넛 기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올빼미족에게 공감을 살 만한 탄탄한 주장을 담은 글을 복스에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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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의 일이었습니다. 마트까지 장을 보러 가는데 단 한 번도 빨간불 신호에 걸리지 않고 무사통과였습니다. 장 볼 목록에 적어간 물건들을 골라 계산하고 나오는 데까지는 15분도 안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해 먹고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배고프다고 빨리 밥 달라고 보채는 이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을 때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제 신경을 분산시키는 글 하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받은편지함의 읽지 않은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야 하는 곳엔 답을 했습니다. 바로 다시 답이 오는 메시지도 마침 없어 저는 무사히 아까 쓰다 만 기사를 마무리하고 퇴고까지 한달음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상이 조화를 부려놓은 듯한 이 꿈 같은 상황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방금 나열한 모든 일을 정확히 자정에 시작한 거죠.

아침형 인간이 근면·성실한 모범으로 칭송받는 세상에서 올빼미족은 게으르거나 다른 일에 신경이 팔려 할 일을 제때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우리는 단지 모두가 잠들었을 때 일하고 창작하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도 말이죠. 매일 저녁 저는 다른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는 TV 프로그램들이 끝나고 어둠이 내려앉아 일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영감이 저를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수면 위상 지연 장애(Delayed Sleep Phase Disorder). 저를 포함해 많은 올빼미족에게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세상은 저희의 생활 리듬에 장애나 질병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늦잠 증후군, 올빼밋과 병이라는 말도 쓰이니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저 생체 주기가 남들이 잠들고 깨어나는 시간보다 몇 시간 늦게 정해진 것일 뿐입니다.

늦게까지 깨어있는 일은 저희에겐 식은 죽 먹기입니다. 반대로 일찍 일어나서 아침형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올빼미족을 여전히 철이 덜 들고 게으르며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아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더 그렇죠. 게다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잠 잘 자는 법이나 수면의 질은 모두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올빼미족은 더욱 무책임한 이들로 그려지곤 합니다.

저는 사회가 정한 근무시간인 9시~5시보다 더 늦은 시간에 훨씬 일이 잘됩니다. 에너지도 넘치고 영감도 충만하다고 할까요? 불면증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피곤해지는 시간에 잘 준비를 하고 나면 저는 아주 깊고 달게 잠을 잡니다. 단지 그 시간대가 새벽 2시 반쯤으로 남들보다 좀 늦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침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일어나죠. 조금 부족한 수면은 오후나 저녁에 낮잠으로 보충합니다.

올빼미족이 되는 원인에는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섞여 있습니다. 즉,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은 몸이 언제 어떻게 피곤해지고 언제까지 얼마나 잠을 자야 피로를 떨쳐내고 개운하게 일어나는지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과 관계없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아침형 인간 신화는 계속될 겁니다. 아침형 인간 위주로 짜인 각종 일정도 여전히 올빼미족을 배려해주지 않을 겁니다. 친구들은 선의로 “남들 잘 때 자면 여러모로 좋지 않으냐”는 충고를 건네겠죠.

그게 아니라는 아우성은 정당한 소명이 아니라 그저 부지런하게 살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둘러대는 변명 취급을 받습니다. 여전한 오해와 부당한 비방이 올빼미족을 힘겹게 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도 많이 잡아먹는다는 속담에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더라는 말을 더하면 올빼미족은 또 한 번 건강, 지혜, 부를 모두 놓치는 패배자의 전형이 되고 맙니다. 청소년의 10% 정도는 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시기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1%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몸이 편합니다.

10대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특히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종종 늦잠을 자곤 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올빼미족더러 철이 덜 들었다고 손가락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꼭두새벽까지 깨어 있는 건 젊었을 때나 하는 일이지, 나이 들고 철 들었으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좀 피곤해도 상쾌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12월 31일에도 12시가 되기 전에 눈이 스르르 감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뭐 제야의 종소리 듣는 건 애들이나 하는 일이라 하신다면 그런 것이죠)

남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우리를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깔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오늘 내가 한 일들” 목록을 자랑스레 소셜미디어에 올려놓는 친구를 보면 “아침형 인간이 되는 방법”을 친절하게 정리해놓은 수많은 기사를 접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아침형 인간이 항상 옳고, 이들이 짠 스케줄에 맞추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세상은 수없이 되풀이합니다.

남편의 알람은 새벽 4시 반에 울립니다.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쯤은 그때까지 자지 않고 일하고 있는 저와 남편이 마주치곤 합니다. 침대에서 나와 잠이 덜 깬 눈으로 한창 소파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바라본 남편은 거의 예외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남편 전화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만 들어도 괜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죄책감이 듭니다.

누군가의 집에 머물거나 출장 가서 동료와 호텔 방을 같이 쓸 때 저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의 습관을 미리 알립니다. 일찍 자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는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은 그저 TV를 보거나 비디오게임을 할 거라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장을 보는 일부터 잡일을 처리하고 중요한 일을 하며 얼마든지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잡는다는 구절은 사실 성경에 나온 말입니다. 기독교인인 저로서는 더욱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죠. 미국의 독실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매일 아침 마음을 정갈히 하고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새벽 기도나 성경공부 모임의 이유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아침 일찍 영적으로 더 깨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하도 노출되다 보니, 어느 날 저는 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체 리듬이 죄인지 말이죠. 늦게까지 안 자는 게 이기적인 것인가? 남들에게 큰 피해를 주나? 남들의 스케줄에 맞추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게 잘못인가?

사실 죄책감보다 더 큰 문제는 올빼미족은 특히 아침형 인간 위주로 돌아가는 일터에서 고전한다는 데 있습니다. 회사들이 근무 일정을 유연하게 짜도록 허락해주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일찍 출근해서 할 일을 깔끔히 처리하는 아침형 인간이 좋은 점수를 받고 유연 근무제를 찾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같은 유연 근무제 아래서도 사람들은 늦은 시간에 일하는 사람이 이른 시간에 일하는 사람보다 게으르고 업무 효율이 낮다고 가정했습니다.

저는 재택근무 요건을 계약서에 명시해두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동료들에게 가능한 한 제가 일하는 시간을 숨깁니다. 새벽 1시가 넘어 대부분 이메일을 써놓고 바로 보내는 대신 9시에 알람을 맞췄다가 (마치 그때 막 쓴 것처럼) 보냅니다. 9시든 10시든 11시든 오전에 통화할 때는 대개 목이 잠겨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개와 대화를 합니다. 오전에는 머리도 안 감은 채로 잠옷 차림일 때가 많다 보니 가끔 화상 통화를 하자는 사람이 있어 난감한데, 그때마다 저는 지금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화상 통화가 어렵다고 둘러댑니다.

가끔 깜빡하고 새벽에 깨어 있는 저를 노출할 때가 있죠. 얼마 전엔 새벽에 한창 일을 하는데 회사 메신저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길래 별 생각 없이 답을 했습니다. “어머나, 어떡해, 저 때문에 깨신 거 아녜요?” 케냐 나이로비에 출장 가 있던 동료는 아침이 되면 확인할 줄 알고 메시지를 보내놓았다가 당황한 겁니다. 나이로비는 오전 11시, 제가 있는 미국 동부는 새벽 3시였습니다.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자정에서 새벽 4시 사이에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5%가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올빼미족은 사회가 정한 정시에 피곤한 몸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일합니다.

직장인들의 고충 상담 사이트 “Ask A Manager”에는 한 올빼미족 과학자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그녀는 실험실에서는 정해진 시간 없이 자신의 일정에 맞춰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연구원이 됐습니다. 직장을 구할 때도 늦게까지 일해도 된다는 약속을 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대부분 실험은 아침에 배정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냥 제가 좀 피곤해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보려고 더 노력해야 하는 건지 걱정됐어요.”

그녀는 일찍 일어나면 몸이 아프고 컨디션 조절을 잘 못 한다고 밝히면서도 이렇게 말하면 사회생활할 줄 모른다며 그냥 참고 견디라는 댓글이 달릴까 걱정된다고 썼습니다. 다행히 또 다른 올빼미족이 그녀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아주 중요한 겁니다.”

대부분 미국인은 밤 10시에서 자정 사이에 잠자리에 듭니다. 지난 몇 년간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해 봤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더 행복하고, 그래서 건강하다는 연구결과를 마냥 무시하기 어려웠죠.

아침형 인간인 남편의 생활 주기에 저를 맞추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먼저 한 달 동안 카페인을 아예 끊고, 가끔 밤늦게 영화 보던 일정을 없앴습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잠들기 좋다는 편안한 음악을 틀어놓고 관자놀이에는 숙면에 좋다는 에센스 오일을 발랐습니다. 수면 패턴을 추적해가며 분석했고, 잠이 들 때 몸에서 나오는 성분인 멜라토닌까지 먹어 봤습니다.

이 시도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매번 그냥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어서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가 평소 제가 잠이 들던 그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일찍 잠이 드는 건 마치 갑자기 10cm 이상 키가 자란다거나 온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일처럼 제가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예전에 제 룸메이트였던 친구 한 명은 수면과 감정 장애를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됐습니다. 그녀는 7년 전 대학원생이던 제가 늦은 시간까지 일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녀에게 아직도 올빼미족으로 살고 있다며 저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늦게 잠들어서 (남들보다) 좀 늦게 일어나는 게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대뜸 지연 수면(delayed sleep)이라고 말했죠.

저는 제가 편하고 좋아서 새벽 3시에 잠이 듭니다. 제 친구도 늦게 자는 것 자체가 문제 될 건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어떤 식으로든 제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일찍 자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죠. 전체적인 수면 시간이 줄어들거나, 만성 피로가 오거나 일에 집중이 잘 안 될 경우, 그때 가서 다시 문제를 들여다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수면 주기를 바꾸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 몸을 자연스럽게 속여 몸의 시계를 앞이나 뒤로 감는 건데, 며칠 동안 멜라토닌을 복용하거나 아침에 억지로 빛을 쬐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됩니다.

결국, 지연 수면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더 정확히 알고 난 뒤에 저는 더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밤늦게 글이 잘 써지고, 주말에는 몇 시간씩 낮잠을 자고, 아침에는 유난히 뭐든 하기 싫은 이유가 다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수면 시간은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에게 상담을 받기 전에도 올빼미족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이제 그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됐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어딘가 모를 동질감을 느낍니다. 저마다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일부러 깨어있는 사람도 있고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파서, 한 시간마다 깨서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마감을 앞두고 벼락치기 하느라, 아니면 그냥 밤늦은 시간에 일이 잘돼서. 이유가 어찌 됐든 저와 같은 올빼미족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닙니다. 더 창의적이고, 감성이 충만하며, 전략적인 사고에 능하다는 평가도 있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예술가, 발명가, 작가에게 밤은 무척 잘 어울리는 시간입니다.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감독 조시 폭스는 꼭 밤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올빼미족입니다. 제 직업이 올빼미족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 행운이라면 행운이죠. 가장 좋은 영화적 상상력이나 감흥은 꼭 한밤중에 떠오르거든요. 친구들은 새벽 3시에 제가 당연히 깨어 있다는 걸 알고 전화를 겁니다. 대신 엄한 시간에는 전화를 안 하죠. 아침 8시처럼 당연히 제가 잘 시간에는요.”

저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습니다. 매일 밤 제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니까요. 매일 밤 머리가 맑아지고 활력이 넘쳐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게다가 밤에는 일이 잘될 때까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여유도 있죠. 주말이나 모두가 휴가를 떠나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가서 회의나 쉼 없이 걸려오는 전화 같은 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며 혼자 해야 할 일을 집중력 있게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올빼미족에게 자신의 생체 리듬을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해주면 업무 만족도부터 실제 결과에 이르기까지 분명 많은 부분이 나아질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성적 수면 부족이나 건강에 해로운 수면 습관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수면 부족을 콕 집어 문제 삼기도 했죠. 하지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수면 부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올빼미족도, 아침형 인간도,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에 있을 우리 모두 언제 자느냐에 관계없이 건강한 수면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잘 때는 침실에 스마트폰을 아예 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6~8시간 방해받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늦게까지 일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의 수면 부족을 고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권유하는 건 소용없는 일입니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만큼 늦게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맞습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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