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취업비자 제한, 인도 인재들의 귀국으로 이어질까?
2017년 2월 8일  |  By:   |  경영, 세계  |  No Comment

법원이 제동을 걸었음에도 난민 입국 금지, 특정 이슬람 국가 국민 입국 금지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취업비자(H-1B)와 상용비자 등 고학력 우수 인재의 유입에 필요한 비자 정책도 개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업 비자인 H-1B를 받으면 외국인도 최대 6년까지 고용주인 기업의 보증 아래 미국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H-1B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외국인이 빼앗아간다는 논리를 폅니다. 특히 미국 테크 기업들은 미국인보다 외국인을 선호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보고서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 전체 노동력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안 되지만, 테크 업계 일자리만 놓고 보면 이 비중이 12%에 달합니다.

H-1B 비자를 받는 요건이 까다로워지거나 비자 한도 자체를 줄이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는 단연 인도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미국에 유학 오는 인도 학생의 숫자는 매년 가파르게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총 1백만 명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15% 이상이 인도 국적 학생이었습니다. 국적별로 살펴봤을 때 H-1B 비자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도 단연 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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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별 H-1B 비자 보유 현황, 2014년 (자료 출처: 미국이민국, 그래프: ATLAS)

여기서 주목할 것은 H-1B 비자를 신청한 인도인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만 비자를 받는다는 겁니다. 2/3는 비자를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죠. 트럼프 행정부가 비자 요건을 강화하면 미국 기업은 외국인 인재를 고용하기 더 어려워지고, 아예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으로 미국에 유학 오는 학생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 가운데 창업을 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속속 등장하는데, 인도의 스냅딜(Snapdeal)을 세운 쿠날 바흘(Kunal Bahl)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바흘은 2007년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엔지니어로 취직했습니다. 학생 비자가 만료된 뒤 취업 비자를 받아야만 일을 계속할 수 있는데 바흘은 운이 없게도 계속 H-1B 비자 추첨에서 떨어졌고, 어쩔 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3년 뒤 바흘은 친구 로힛 반살(Rohit Bansal)과 이커머스 업체 스냅딜을 창업합니다.

인도 경제의 성장과 함께 급증한 중산층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하며 높은 구매력을 지닌 고객층을 형성했습니다. 스냅딜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해 빠르게 성장했고, 또 다른 인도 토종 업체인 플립카트, 그리고 아마존과 함께 인도 온라인쇼핑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알리바바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냅딜에는 판매자 혹은 판매 업체만 30만 곳이 있고, 전체 이용자는 5천만 명이 넘습니다. 1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비자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쿠날 바흘과 같은 인재의 유출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바흘과 스냅딜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교육 받고 실리콘밸리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인도로 돌아온 인재들이 창업한 기업 가운데 유니콘(10억 달러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비공개 스타트업)의 반열에 오른 기업이 여럿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10억 달러 클럽”에 포함된 인도 스타트업 아홉 곳 중 스냅딜을 포함해 세 곳의 창업자가 미국 유학파입니다. 뉴델리 근처 구르가운 기반 온라인 쇼핑 업체 숍클루스(Shopclues)를 차린 산딥 아가르왈(Sandeep Aggarwal)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MBA를 수료했습니다. 인도 최대의 모바일 광고업체 인모비(InMobi)를 창업한 나빈 테와리(Naveen Tewari)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이를 단지 미국 비자 프로그램의 실패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도는 신흥 경제대국 가운데서도 특히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나라입니다. 특히 테크 분야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로 갔던 인재들이 돌아올 만한 매력적인 곳으로 거듭난 겁니다. 구글에서 플립카트로 옮긴 사람들도 있고, 페이스북에 있다 인도로 돌아와 델리의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조마토(Zomato)를 차린 이도 있습니다. 미국의 테크 기업들이 당장 인재 유출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도 시장이 성장하고, 비자 요건이 까다로워지면 인도에서 미국으로 오는 유학생 자체가 줄어들고 인도의 인재가 아예 인도를 벗어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 품귀 현상이 일어난 지는 꽤 됐습니다.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15만 달러 이상입니다. 비자 요건이 강화되거나 취업 비자 규모가 줄어들면 아예 실리콘밸리에 설립되는 스타트업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외국인 기업가, 학생, 인재들이 우리 경제와 커뮤니티 전반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훌륭한 인재를 다른 나라로 내몰아 결국 그들과 경쟁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세운 이민법 개혁 로비단체 FWD.us의 리지아 달라의 말입니다. (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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