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반란에서 배워야 하는 것
2017년 1월 11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 하버드대학 철학과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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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많은 시민은 자신이 경제와 문화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낍니다. 이는 마치 지진과도 같았던 정치 사건들 –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 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포퓰리즘을 단순히 인종차별주의, 이민자들에 대한 외국인 혐오주의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포퓰리즘이 세계화가 진행되고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기존 정치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기존의 정치 시스템이 소외감을 느끼는 시민들의 분노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했고, 나아가 문제를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능력했다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은 시민들이 모든 기득권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퍼져 나갔지만, 사실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정당은 주로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들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보면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상위 계층에 속한 이들의 입맛에 맞는 진보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다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전에 과연 진보정당의 사명과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포퓰리즘의 이면에는 더는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시민들의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월급이 적고 일자리가 부족한 사실만으로 이 슬픔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정당들은 아래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소득 불균형의 문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소득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은 대부분 사람에게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미국의 경우, 하위 20%에 속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중 오직 4%만이 상위 20%로 올라갑니다. 43%의 사람들은 하위 20%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흔히 사회적 유동성이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이 믿음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차라리 소득 불균형을 직접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이에 사다리 한 칸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능력 우선주의의 문제(Meritocratic hubris): 본인이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고, 사회적 지위는 그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반영한다는 철학은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야기합니다. 재능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믿음은 성공한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그 실패가 온전히 본인 책임이라는 생각을 강요합니다.

일의 존엄성: 기술이 인력을 대체하고 단순한 업무는 더 값싼 인력으로 대체되면서 사회는 노동자들을 예전만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경제 활동 대부분이 물건을 만드는 것에서 돈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이 하던 일은 점점 더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많은 일자리는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비해 모두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노동자가 설 자리가 줄어드는 미래를 받아들일지 혹은 저항할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몇 년간 정치의 핵심 쟁점이 될 것입니다.

애국심과 국가 공동체: 자유무역협정과 이민자 문제는 포퓰리즘이 성행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문제들입니다. 자유무역협정과 개방적인 이민자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일자리와 낮아지는 임금을 걱정합니다. 반면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방적인 경제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들은 국가가 자국민의 일자리보다 값싼 물건, 값싼 노동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배신감을 느끼고 그 배신감을 이민자들에 대한 분노, 이슬람에 대한 분노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표출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상호 존중과 다문화적 이해관계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말은 바른 말이라 해도 포퓰리즘의 이면에 깔린 불만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국경이 가지는 도덕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국가 내부의 단결력을 키워야 할까요? 아니면 인류 공통의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요?

기존의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포퓰리즘의 반란은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문화를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포퓰리즘 속에 얽혀 있는 시민들의 분노를 풀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 시대에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정치적 난제일 것입니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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