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극복한 테니스 선수 이덕희
2016년 12월 1일  |  By:   |  스포츠, 한국  |  No Comment

마포고등학교 테니스부는 수도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두 시간 떨어진 충북 제천 출신의 비밀병기 이덕희 선수를 전국체전에 출전시켰습니다. 이미 코치는 이덕희 선수가 초등학교 때 재능을 알아봤습니다.

동료 선수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결승전에 나선 이덕희는 첫 번째 단식 경기에 나서 게임 스코어 6:1, 6:1로 가볍게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마포고등학교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이미 세계랭킹 143위에 올라있는 이덕희의 적수가 될 만한 선수를 한국 내 또래 선수들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으니까요.

“기술, 힘, 받아치는 능력이 다른 고등학교 선수들과 차원이 달라요.”

이덕희 선수와 짝을 이뤄 복식에 참가한 정영석 선수는 말했습니다.

이덕희와 다른 테니스 선수들의 차이는 또 있습니다. 이덕희는 청각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청각장애 선수가 장애가 없는 선수들과 겨뤄 이 정도 수준에 오른 일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공과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테니스지만, 그저 잘 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강서브와 빠른 그라운드스트로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백분의 일초, 천분의 일초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경기가 테니스입니다.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됩니다.

“테니스공에 걸리는 회전의 종류는 무수히 많습니다. 누가 어떻게 힘을 줘서 공을 쳤는지를 저는 각각 회전이 걸리는 소리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청각장애인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들은 상대방이 어떤 자세로 공을 치는지, 네트를 넘어오는 공이 어떤 속도와 궤도로 오는지 등을 더욱 집중해서 보고 반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교 테니스 코치이자 미국 청각장애 국가대표팀을 지도하고 있기도 한 케이티 만세보 코치의 말입니다.

마포고등학교 테니스부의 주현상 코치는 솔직히 이덕희 선수를 처음 봤을 때는 이 선수가 성공할 수 있을지 다소 회의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랬죠.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훌륭한 선수가 되는 데 명백한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덕희가 노력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신감을 얻었죠. 지금은 덕희가 더 훌륭한 선수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18세 이하 선수들 가운데 두 번째로 세계 랭킹이 높은 이덕희는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는 중입니다. 아직 그랜드슬램이나 ATP 투어 대회에 출전권을 얻지는 못했지만, 지난 9월 대만에서 열린 챌린저 대회(ATP 투어보다 한 단계 아래 대회)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고, 이후 준결승에 두 차례나 더 진출했습니다.

현재의 성장세가 계속된다면 이덕희는 테니스에 관한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름으로 기록에 남을 것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시각 자극보다 청각 자극에 더 빨리 반응합니다. 이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각 자극에 대한 인간의 평균 반응속도는 0.18~0.2초지만, 청각 자극에 대한 인간의 평균 반응속도는 0.14~0.16초로 더 빨랐습니다.

2003년 윔블던 대회에 참가했던 앤디 로딕은 상대방이 친 공의 정보 가운데 가장 먼저 인지되는 건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공을 얼마나 세게 쳤는지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어요. 정말 세게 쳤을 경우 펑 하고 튀는 소리가 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한 청각 정보가 실제로 네트를 넘어오는 공을 보기도 전에 입력이 되고 저는 그에 따라 반응을 하는 거죠. 반대로 상대방이 갑자기 네트 앞쪽에 떨어뜨리는 드롭샷을 시도하면 당연히 다른 소리가 나죠. 그럼 저는 또 그에 맞춰서 반응하고 동작을 준비합니다. 최고 수준의 테니스 경기에서는 소리를 명확히 듣는 능력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복식 선수 출신인 호주의 토드 페리 코치는 이따금 선수들의 스트로크에서 개선할 부분이 어디일지 찾기 위해 공을 치는 소리만 듣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을 지도하다 보면 라켓에 제대로 맞은 좋은 샷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히 있거든요. 이 소리가 나는 샷을 칠 수 있도록 이것저것 바꿔보며 선수들을 지도하는 겁니다. 소리가 하나의 기준이 되는 거죠. 사람들의 테니스 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샷에서 나는 소리도 굉장히 다릅니다.”

티모시 골위(W. Timothy Gallwey)는 테니스 교본의 고전과도 같은 저서 “테니스 이너게임(The Inner Game of Tennis, 1974년 작)”에서 성공적인 샷의 비결을 찾아내 이를 무수히 반복해 몸에 익히는 법으로 공을 칠 때 나는 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좋은 샷에서 나는 소리를 각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습니다.

우리의 뇌는 특정한 소리를 기억해 그것을 어떤 특질과 결부하는 데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포핸드 샷을 칠 때 나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면 그 사람은 공이 라켓에 잘 맞아서 좋은 샷이 나왔을 때 났던 소리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몸은 그 좋은 소리가 난 샷을 쳤을 때 어떤 자세와 동작을 취했는지를 기억해 이를 따라 하고 익히려 노력하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소리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던 선수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나브라틸로바는 공을 치면서 지나치게 큰 소리로 기합을 내는 선수들의 플레이는 공이 맞을 때 나는 소리를 덮기 때문에 일종의 꼼수이자 심한 경우 반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 US오픈에서는 경기 도중 하늘 위로 날아가던 비행기 소음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네트 앞에서 플레이할 때는 (상대방이 친) 공이 어떻게 맞는지 소리를 듣고 판단하게 돼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빨리 어떤 회전이 걸려 오는 공인지를 파악하고 반응해야 하는데, 소리를 못 들으면 제대로 반응할 재간이 없죠. 실제로 소리를 못 들어서 놓친 랠리도 몇 차례나 있었어요.”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레이도 올해 US오픈에서 새로 선을 보인 돔구장 지붕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거슬려 플레이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이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 경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귀도 정말 중요합니다. 공이 얼마나 빨리 오는지, 어떤 회전이 걸려있는지, 또 상대방이 얼마나 공을 세게 쳤는지도 소리를 듣고 분간할 수 있어요. 만약 귀마개를 하거나 헤드폰을 쓰고 경기를 하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면 이는 상대방에게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 될 겁니다. 큰 차이 아닐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테니스를 할 수야 있겠죠. 하지만 분명 소리를 못 듣는 건 엄청난 핸디캡입니다.”

머레이가 묘사한 실험이 실제로 한 번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청각장애인 국제스포츠 위원회의 기술이사로 일하는 청각장애 스포츠 선수 출신 토비아스 버즈는 한 번 청각장애가 없는 수준 높은 선수와 테니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버즈에게 1세트를 6:2로 이겼던 그 선수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테니스를 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두 번째 세트에는 귀에 귀마개를 꽂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버즈는 두 번째 세트를 6:3으로 따냈습니다.

 

청천벽력 같았던 청각장애 진단

어머니 박미자 씨와 아버지 이상진 씨는 아들 덕희가 처음부터 어딘가 조금 다르다는 점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진단을 받지 않았습니다. 덕희는 아버지 상진 씨가 군 복무 중에 태어났습니다. 남편의 지원 없이 사실상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던 박미자 씨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다 무사히 지나가고 이겨내리라 다짐했습니다.

박미자 씨가 아들 덕희를 병원에 데리고 간 건 덕희가 두 살 때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덕희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고 청각 장애가 있다고 하셨어요. 너무 놀라서 아무런 말도 안 나왔어요. 그저 이 길로 집에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 했죠.”

서울에 살던 언니 집에 간신히 찾아가서야 미자 씨는 아들의 아픔을 실감하며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언니를 보는데 그제야 온갖 슬픔과 회한이 밀려오더라고요. 도저히 울음을 멈출 수 없었죠.”

몇 시간을 울고 나서야 미자 씨는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제천에서 서울까지 부인을 데리러 왔습니다. 다시 제천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부부는 이 시련에 굴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그만 슬퍼하고 어떻게 하면 덕희를 제대로 뒷바라지하고 잘 키울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죠. 덕희는 우리의 소중한 첫아들이었어요. (덕희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긴 했지만) 슬픔은 일주일이 채 가지 않았어요. 우리는 먼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특수 교육 시설을 찾아봤어요.”

부모는 덕희가 네 살 때 덕희를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청주에 있는 장애아동 특수학교에 보냈습니다. 대부분 학생이 학교 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가족과는 주말에만 만났지만, 아들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미자 씨는 매일 왕복 두 시간을 운전해 덕희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데리고 왔습니다. 부모는 오후에 덕희를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보냈습니다.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만 둘러싸여 생활하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덕희를 노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덕희가 보통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으면 했어요. 특수 학교에 더 오래 다닌 덕희보다 위 또래 학생들을 보니까 대부분 수화로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내버스에 타면 (수화를 모르는) 버스 기사와는 종이에 글을 써서 필요한 말을 하더라고요. 18살이나 19살이 됐을 때 수화만 할 줄 알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훨씬 힘들어 보였고요.”

청각장애 학교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본 박미자 씨는 아들에게 말하는 법과 다른 사람의 입 모양을 읽는 법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덕희는 청각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 학교를 완전히 떠나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덕희 선수는 아직도 수화를 할 줄 모릅니다. 부모의 바람대로 자라준 것이죠.

“청각장애 학생들 가운데 비장애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이들은 정말 몇 안 돼요. 대부분 도전해보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혀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쪽을 택하죠. 우리는 덕희가 스스로 독립해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덕희 선수의 아버지 이상진 씨는 고등학교 때 참가한 전국체전에서 200m 대회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운동선수 출신이었습니다. 아들도 재능과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스포츠 선수로 키울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죠. 상진 씨는 아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팀 동료와 소통해야 하는 종목은 처음부터 제외하고 골프나 양궁, 사격 등 개인종목을 후보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덕희는 사촌형인 우충효 코치가 테니스를 치는 걸 보고 단번에 테니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테니스를 보자마자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도 당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촌형이 제게 라켓을 쥐여줬고, 몇 번 공을 쳐보자마자 제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순간 테니스의 매력에 푹 빠졌죠. 라켓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부모는 테니스 선수가 되려는 아들의 노력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습니다. 박미자 씨는 그저 취미로, 재미 삼아 해보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 진지했죠. 남편과 제가 덕희의 첫 번째 코치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도 이를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저희는 그저 재미 삼아 테니스를 좀 가르쳐보려는 게 아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신중한 투자를 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요. 그러니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덕희를 지도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만약 코치 선생님이 보시기에 덕희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 바로 이야기해달라고도 부탁드렸죠.”

미용사인 엄마와 기자인 아빠와 충북 제천에서 함께 머물며 운동을 하던 이덕희 선수의 실력은 점점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또래 선수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며 성장하는 이덕희 선수에게도 과연 그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코치들이나 다른 선수들의 가족 가운데 90% 정도는 덕희가 프로가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비관적으로 말했어요. 다들 지금이야 초등학교 수준으로 공이 왔다 갔다 하는 속도가 무척 느리니까 덕희가 잘하지만, 프로 레벨에서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공을 받게 될 텐데 듣지 못 하는 덕희가 반응하기 어려울 거라고들 했죠.”

박미자 씨는 그런 종류의 비판이나 우려에는 이골이 났다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걸러 듣거나 무시하는 법도 익혔다고 말합니다.

“저와 남편은 그저 아들에게 그가 평생 즐기며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당시 저희가 유일하게 찾아낸 것이 테니스였고요.”

 

대학 수준에서의 성공 사례

프로로 전향한 청각장애 테니스 선수 가운데는 이덕희 선수만큼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지만, 미국 대학 선수들 가운데는 청각장애를 지니고도 훌륭한 성적을 낸 선수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세계 청각장애 어린이재단을 설립한 페이지 스트링어는 워싱턴대학교 소속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청각장애가 있던 복식 파트너와 짝을 이뤘습니다. 듣지 못하는 단점을 한 사람이 아닌 두 명의 눈으로 보완하면 더 잘 극복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가정은 결과적으로 꽤 들어맞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달한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다른 이의 표정이나 몸짓에 나타난 미묘한 감정을 (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들보다 더 잘 알아차리죠. 시각 능력이 발달한 경우도 많아요. 한 감각이 제한되면 그만큼 다른 감각이 발달해 이를 보완하곤 하거든요. 제 가정이 사실이라면 아예 듣지 못하거나 잘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시각이 더 발달해 공의 움직임을 더 잘 보고 그만큼 빨리 반응해 테니스 선수가 되는 데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어요.”

소리를 잘 못 듣는 선수들이 테니스에서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깨닫고 배우는 건 청각장애인들끼리 겨루는 청각장애인 올림픽(Deaflympic) 같은 대회에서입니다. 이런 대회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끼고 있는 보청기나 인공 달팽이관 등을 착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청력 보조장치를 착용하고 테니스를 해본 선수들이 장치 없이 테니스를 쳐보면 소리가 테니스라는 경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누구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플로리아걸프코스트 대학교의 에반 핀터 선수는 청력 보조장치를 빼고 경기를 할 때 가장 불편했던 건 무엇보다 자기가 친 공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보조장치 없이 경기를 하다 보니 점점 불안했어요. 제가 치는 공을 비롯해 스트로크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경기하는 게 훨씬 편해요. 저는 특히 제가 정확히 원하는 대로 공을 치는 순간 나는 그 소리를 듣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 샷은 잘 맞았다는 자신감이 드는 그런 순간이죠.”

테네시주립대학 채터누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에밀리 행스테퍼도 보조장치 없이 경기하는 건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청각장애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보조장치를 빼고 훈련을 해봤는데 그제야 제가 테니스를 할 때 소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어요. 듣는 것 없이 오로지 보는 것만으로 공에 집중해서 테니스를 치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무려 5주나 걸렸어요. 청각이 사라지자 그제야 저는 촉각이나 시각 등 다른 감각에 의존하며 이를 훈련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덕희 선수는 상대방의 플레이를 대단히 정확히 예측합니다. 이덕희 선수의 사촌형인 우충효 코치는 이덕희 선수가 상대방이 공을 치기 전 팔을 뒤로 뻗는 백스윙 동작만 보고도 구질을 예측하는 데 능통하다고 말합니다. 이덕희 선수와 겨뤘던 적이 있는 크리스토퍼 룽캇 선수도 이덕희의 예측 능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덕희는 제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볼을 받아칠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냥 막연한 추측은 아니었을 테고, 뭐랄까 마치 제 마음을 읽는 것 같았어요.”

 

최고를 겨누다

이덕희 선수의 꿈은 물론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먼저인데, 역대 한국 테니스 선수가 기록한 가장 높은 세계랭킹은 이형택 선수의 36위(2007년)입니다. 이형택은 ATP 투어에서 한 차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테니스는 대체로 야구나 축구에 밀려 인기 있는 스포츠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ATP 투어 대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덕희 선수를 비롯해 현재 세계랭킹 104위인 정현(20) 선수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한국 테니스 협회는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다시 한번 월드 그룹으로의 승격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앞서 2008년 월드 그룹에서 경기를 한 바 있습니다.

협회는 새로 마련한 재정을 이덕희, 정현을 비롯해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을 지원하는 한편 선수들을 겨울에 추운 한국 대신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 보내 기량을 향상하는 데 쓸 계획입니다.

이덕희 선수는 자신의 청각장애가 경기를 하는 데 지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우려하는 신체적인 불리함은 작은 키였습니다. 이덕희 선수의 신장은 175cm로 키 큰 선수들이 즐비한 테니스 세계에서는 무척 작은 편에 속합니다. 체격과 체력이 갈수록 기량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 테니스 랭킹 50위 안에 드는 선수들 가운데 이덕희와 신장이 비슷한 선수는 21위 다비드 페러(David Ferrer) 단 한 명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덕희 선수보다 키가 큽니다. 6피트, 약 183cm가 안 되는 선수들도 50위 안에 여섯 명뿐입니다.

이덕희 선수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사촌형인 우충효 코치와 함께 다닙니다. 우 코치는 이덕희 선수의 훈련 파트너이자 짧은 영어로 통역 역할까지 맡으며 사촌동생을 돕고 있습니다. 우 코치는 가끔 덕희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눅 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인 자세로 경기와 대회에 임하며 다른 선수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이덕희 선수는 가끔 심판의 판정을 듣지 못할 때를 제외하면 경기를 치르는 데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덕희 선수가 더 성장하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선수는 언론사의 요청이 있으면 경기가 끝난 뒤 반드시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덕희 선수는 몸짓을 비롯한 여러 방식을 동원해 언어장벽이나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 인터뷰는 통역의 입 모양을 정확히 읽고 자신의 의사를 (다소 어눌한 탓에 제한적인) 말로 표현해야 하므로 제약이 따를 수 있습니다. 전국체전에 참가한 이덕희 선수를 인터뷰한 한국 방송사들도 인터뷰 화면에 자막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덕희 선수의 에이전트 이동엽 씨는 유례가 없는 덕희의 성장과 선전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당연히 덕희가 다른 선수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죠. 하지만 청각장애 선수라는 것이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분명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니까요.”

현대자동차는 이덕희 선수가 13살 때부터 그를 후원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후원 계약을 2020년까지 갱신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청각장애를 안고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덕희 선수의 열정과 정신력에 놀라고 감복했다.”며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으로서 이덕희 선수를 최대한 지원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후원 덕분에 이덕희 선수는 다른 유망주들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덕희 선수의 에이전트는 더 많은 후원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성적을 얻어 상금도 더 많이 받게 되면 언젠가 전담 코치와 통역 등 ‘팀 이덕희’를 이끌고 세계 대회에 참가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돈이 적잖이 들어요. 재정을 확보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덕희 선수는 이번 주 중국 주하이에서 열리는 호주오픈 지역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참가합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멜버른에서 열리는 호주오픈 예선에 참가해 3승을 올리면 꿈에 그리던 생애 첫 그랜드슬램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최근 챌린저 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올리며 점수를 쌓았기 때문에 이덕희의 세계랭킹도 머지않아 100위 언저리까지 올라갈 겁니다. 100위 안에 들면 따로 예선을 치르지 않고도 그랜드슬램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세계 청각장애 어린이재단의 페이지 스트링어는 청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최고 수준의 테니스 대회에서 청각장애가 없는 이들과 겨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느 스포츠든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되는 데는 남다른 재능과 노력 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만 할 겁니다. 결국, 확률 싸움이라면 테니스의 경우 세계 150위권 안에 드는 훌륭한 선수들 가운데 (청각장애가 없는) 비장애인이 청각장애인보다 더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전체 인구 가운데서도 청각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소수니까요. 이덕희 선수는 재능과 인격, 영민함, 성실함, 그에게 주어졌던 여러 기회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이들 덕분에 이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테니스 선수로 지금껏 성장하고 성공하는 데 듣지 못한다는 건 별다른 장애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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