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보수지가 악의와 협박에 대처하는 방법
2016년 10월 20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1 comment

말과 글로 먹고사는 분야에 평생을 종사해 온 제가 이처럼 말문을 잃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고 난 직후, 저는 말 그대로 할 말을 잃었죠.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밤길 조심해라, 회사를 불태워 버리겠다, 반역자는 총살에 처해야 한다”와 같은 말에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런 협박을 듣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1년 전, “리퍼블릭”의 데스크는 도널드 트럼프의 언행과 포지셔닝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기사를 통해 그의 원칙은 보수주의의 원칙이 아니며, 공화당과 애리조나 주에도 해롭고, 미국에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125년의 역사 속에서 “리퍼블릭”이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대선 경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사이의 힘겨운 고민이었죠.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결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트럼프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꾸준히 밝혀왔지만, 보수색이 강한 주의 보수지가 공화당에 등을 돌리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당보다는 나라가 먼저라고 생각했고,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쏟아져 들어왔죠.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협박이었습니다. 이런 악의적인 협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우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40년 전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에 목숨을 잃은 <리퍼블릭>의 기자 돈 볼스(Don Bolles)의 이름을 언급하며 우리 직원들이 같은 꼴을 당할 거라고 말씀하셨던 익명의 독자들께는 킴벌리를 소개합니다. 킴벌리는 여러분의 전화를 받았던 젊은 여성입니다. 그녀는 제 사무실에서 차분하게 형사분들께 여러분이 하신 말씀을 전했죠. 킴벌리는 전화를 받은 후 교회에 가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했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인내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고요. 킴벌리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인정과 연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따위 신문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불을 지르겠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망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 분들에게는 편집자인 니콜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협박이 쏟아져 들어온 후, 그녀는 취재 배지를 달고 취재기자, 촬영기자와 함께 트럼프 유세장으로 향했습니다.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기자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라고 독려하는 현장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공정한 기사가 나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니콜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열린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와 의견이 다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들께는 사설면 담당 편집자인 필을 소개합니다. 평생 공화당원이자 보수주의자, 애국자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회사 내에서 트럼프가 공화당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 신문을 배달하는 젊은이들에게 침을 뱉고, 고함을 내지른 분들께는, 바로 그 신문 배달원들을 소개합니다. 대부분은 학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젊은이들입니다. 이 지면에 이름을 올리기조차 두려워하고 있지만, 배달일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가 성실함과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저질 언론으로 매도하며 “미국인답지 못하다”고 비난하신 분들에게는 데니스를 소개합니다. 데니스는 참전 용사 병원의 처참한 운영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던 탐사보도 전문기자입니다. 그의 기사는 대대적인 토론으로 이어졌고 변화를 낳았습니다. 미국 전역의 참전 용사 가족들은 데니스의 탐사보도팀을 영웅이라 여깁니다. 데니스는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신문의 발행인을 지낸 진 퓰리엄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하신 분들에게는 진의 아내 니나를 소개합니다. 볼스가 기자의 소명을 다 했다는 이유로 폭탄 테러범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때 니나는 12일간 사투를 벌인 볼스의 병상을 지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퓰리엄 부부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후보 지지 선언 이후, 현 발행인인 저를 향한 협박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심판할 것이다, 지옥 불에서 고통받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은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들에게는 목사였던 저희 할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신앙 때문에 투옥과 고문을 겪었고, 가장 친한 친구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이렇게나 위협받기 쉽고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알려주신 분입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저도 살면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자들이 그렇게 좋으면 미국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분들,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신 분들에게 저는 조브 코치를 소개합니다. 교수이자 군인이었던 그는 2차대전 이후 나의 어머니와 이모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수 있게 후원해주셨던 분입니다. 그 덕분에 저와 제 이종사촌들은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변호사로, 엔지니어로, 목사로, 교사로, 사업가로, 군인으로, 기자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로서 미국이 가진 힘을 믿었고, 한 사람의 친절이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신 분들, 우리의 원칙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직원들의 집에 폭탄을 설치하거나 가족을 해치겠는 말은 하지 않은 모든 분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냐고 물어보신 분들께는 저의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어머니는 교육의 권리도, 언론, 종교,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도, 투표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독재 정권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와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기자를 길러내셨죠.

돈 볼스와 니나 퓰리엄, 조브 삼촌은 이제 돌아가시고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기자들은 오늘도 자신의 소명을 다 하기 위해 편집국으로, 출입처로,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이들이 출근길에 지나치는 벽면에는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45단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입니다. (애리조나 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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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이 굉장히 파워풀 하더라구요. 한인 이민 2세대가 이렇게 꽃을 피우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