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의 캐나다
2016년 10월 7일  |  By:   |  세계, 정치  |  1 comment

아직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5년 10월 19일, 캐나다의 정치적 지형이 급변했습니다. 캐나다 자유당의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가 10년 동안 정권을 쥐고 있던 보수당과 하퍼(Stephen Harper) 총리를 누른 것입니다. 그날 저녁, 만 43세의 트뤼도는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께서는 캐나다가 지난 10년 동안 연민과 국제사회에서의 생산적인 공헌을 잃어버렸다고 우려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께 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러한 연설을 총리 취임 이후에도 수차례 되풀이합니다. 런던에서도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캐나다는 강해지는 법을 체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내부의 다양성 덕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이러한 능력이 그 자체로 주목받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식 언어가 두 개 존재하고, 10여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며, 정체성의 갈등도 없는 것이 아닌 캐나다에서, 쥐스탱 트뤼도는 분명하게 다문화주의를 지지합니다. 2015년 9월 12일에는 오타와의 모스크에서 박애를 언급했고, 10월 11일에도 오타와에서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시크교 전통 축제에 참여했으며, 2016년 7월 31일에는 밴쿠버에서 동성애 단체의 연례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미국과 유럽이 난민 수용과 관련된 끝 없는 논쟁에 휘말려 있었음에도, 캐나다는 25,000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할 준비를 지속했습니다.

최초의 “탈민족주의(postnational)” 국가 캐나다

집권 일 년 만에 쥐스탱 트뤼도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의 행로를 이끄는 정치 철학은 무엇일까요? 트뤼도는 캐나다가 최초의 탈민족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합니다. 탈민족주의 국가란 더는 단일한 국가 정체성이나 다수의 종족성, 혹은 지배적인 언어로 정의되지 않으며, 대신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 연민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이,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로 정의되는 국가입니다. 이 견해는 현재로써는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9월 20일, 캐나다 여론조사기관인 나노스 리서치(Nanos Research)의 조사에 의하면 69%의 캐나다인이 트뤼도가 좋은 정치 지도자의 자격을 갖췄다고 답했습니다. 즉 아직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젊은 총리와 국민들 사이의 밀월 관계가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임자들이 법률가거나 사업가였던 데 비해 트뤼도는 자원봉사 활동가이자 교육자인 “스노보드 강사”였습니다.

그의 수학 기간, 그리고 그의 짧은 정치 경력 동안 – 그는 2008년 의회에 입성했으며 2013년 캐나다 자유당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 그는 어떠한 업적이 될 만한 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캐나다의 가장 중요한 총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t Trudeau)와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는 1968~1979년, 그리고 다시 1980~1984년 두 차례 정부를 이끌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의 양립을 모든 연방 기관에 강제하였을 뿐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여 권리와 자유의 캐나다 헌장을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캐나다 다문화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며,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이혼을 합법화했으며, 낙태와 동성애의 법적 제재를 철폐했습니다.

지적인 근간

그러나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쥐스탱 트뤼도가 지적인 근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퀘벡 라발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기 라포레스트(Guy Laforest)는 총리는 많은 지식인을 끌어들이는 사상의 흐름인 “캐나다식 이상주의”의 정신적인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자유당 전 대표(2008-2011)이자 하버드대 교수이며 인권(les droits de la personne) 투사인 미카엘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혼혈 문화의 지지자인 존 롤스턴 사울(John Ralston Saul), 다문화주의와 “합리적 조정(reasonable accommodations)”의 예찬가가 되어버린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이 이러한 사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즉 캐나다는 일전에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가 희망했던 것과 같이 21세기 인류를 구축하는 데 지적으로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쥐스탱 트뤼도가 내세우는 아이디어는 자신의 정치적 형성 과정의 기초에 깊게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 조직인 캐나다 자유당(PLC, Le Parti libéral du Canada, Liberal Party of Canada)은 역사적으로 중도파이지만, 몇몇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을 수정하고자 하는 등 캐나다 자유당은 “레이먼드 아론(Raymond Aron)이 사회적-자유적 통합이라 불리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랫 동안 노력해 왔던 정당”이라고 몬트리올의 퀘벡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마크 셰브리에(Marc Chevrier)는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캐나다 자유당은 쥐스탱 트뤼도 덕분에 그 가치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강조, 캐나다를 다시금 국제기구에 진입시키려는 그의 희망, 경제적으로 강한 국가의 건설에 대한 그의 담화 등이 캐나다 자유당의 목표를 보여줍니다. 셰브리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에서 트뤼도는 이상적인 소명에 부응하는 신국가주의의 계승자입니다.”

그가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19세기 캐나다에 정착된 자유주의 전통에 매우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리화나의 합법화 같은 캐나다인들에게 큰 충격이 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부합하는 진보적 요소를 자신의 이념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쥐스틴 트뤼도를 1940년대 가장 강하고 진보적이던 자유당의 계승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브래들리 밀러(Bradley Miller)가 말합니다. 그 당시 캐나다 자유당은 당의 이미지를 “변화와 진보를 구별하는 자유주의 정당”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들은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으면서도 진보적 정치를 옹호하였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입장은 중도파들을 조금씩 좌측 혹은 우측으로 옮겨가도록 하였습니다. 젊은 총리는 이러한 추세에 합세하였습니다. “총리가 제안하는 것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통제할 수 있는 진보, 이뤄낼 수 있는 진보입니다.” 브래들리 밀러가 요약합니다. 트뢰도를 보며 밀러는 타협주의자이자 낙관주의자였던 1896년 총리, 중도파 윌프리드 로리에(Wilfrid Laurier)를 떠올립니다.

관용과 다양성의 섬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는 캐나다 다문화주의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쥐스탱 트뤼도는 캐나다에 ‘탈민족주의’를 부과하고 다양성을 주장하는 ‘탈다문화주의자’입니다.”

앨버타 대학의 정치학자 프레데릭 보일리(Frédéric Boily)의 말입니다. 우리는 캐나다가 민족주의의 점증, 대중영합주의와 외국인 혐오주의에 빠진 서구 세계에 마지막 남은 다양성과 관용의 섬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임기 시작 일 년 후, 총리는 아무런 오류도 범하지 않았을까요? 토론토의 요크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인 조디 커밍스(Jordy Cummings)는 더욱 신중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 정치학도는 지난 9월 9일, 좌파 잡지 자코뱅에 “쥐스틴 트뤼도는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글에서 그는 잘 포장되어 드러나지 않는 트뤼도의 여러 모순점을 열거합니다. 국제적으로 인권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경장갑차를 판매하고, 노동조합과 캐나다 우체국 간의 협상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국내 취업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유럽연합과 캐나다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하는 등이 그 모순점입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수개월 동안 분명한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국내 쟁점들과 환경 보호, 사회경제적 논쟁 등 많은 분야에서 총리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선거 제도의 개혁, 온실가스 배출의 감소 등 여러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언제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쥐스탱 트뤼도의 아우라는 지속될 수 있을까요?

다비드 사부와(David Savoie)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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