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저는 아이들에게 장애를 물려준 엄마입니다
2016년 9월 9일  |  By:   |  건강, 칼럼  |  1 comment

제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산부인과 담당의는 ‘혹시 모르니’ 유전병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왜소증의 원인이 되는 저인산혈증성 구루병·골연화증(XLH)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만났던 유전병 전문가는 XLH이 매우 희귀한 질환이라, 다른 구루병 환자와 결혼하지 않는 이상 아이에게 유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7개월 후에 태어난 첫째 애나벨은 의사의 말대로 XLH를 물려받지 않았죠.

그로부터 6년 후, 둘째를 갓 출산한 저는 신생아 입원실 유리창 너머로 아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아들은 남편과 저의 혈액형부적합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수차례 수혈을 받아야 했죠.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아들을 바라보던 저는 문득 아들의 다리 모양이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담당 의사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아들이 XLH인 것 같아요.” 의사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다음날 나온 검사 결과는 달랐습니다.

XLH 환자들은 인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키가 작고, 다리가 잘 휘며 뼈와 치아가 약합니다. 제가 첫째를 가졌을 때만 해도 이 병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의사도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수 없었지만,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XLH 환자는 50%의 확률로 자녀에게 질환을 물려주게 됩니다. 첫째인 애너벨은 이 확률은 피해갔지만, 둘째인 워커와 셋째인 일라이자가 저와 같은 질환을 갖고 태어났죠.

몇 년 전, 저는 신앙심이 독실한 한 친척분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대뜸 내가 절대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죠. 조금은 어색한 순간이었습니다. “너 너무 예뻐졌다”는 말 속에 실은 그 사람이 이전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가 나의 질환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잠깐은 슬픔에 잠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멀대같이 키가 큰 사춘기 아들을 상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아들의 상태에 대해 한탄하지 않았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로 손가락질당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친척 어른의 전화를 받고서야 저는 장애인이 장애를 물려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아이를 낳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장애인”의 심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XLH 환자들은 키가 작고 걸음이 어색한 것 빼고는 오히려 건강한 편이지만, 오래 걸으면 지치거나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아이와 저는 모두 키가 150cm 정도입니다. 작은 키는 딸인 셋째와 저보다는 아들에게 조금 더 민감한 문제입니다.

요즘은 “디자이너 베이비”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유전자를 미리 검사하고 조작해, 부모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됩니다. 둘째까지는 유전 가능성을 모르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셋째는 위험성을 알고도 낳기로 한 경우죠. 내가 유전병에 대한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자문하곤 합니다.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전으로 한두 세대 안에,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저나 제 아이들과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사라질 수도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키와 “행복 지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구 결과의 평균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죠. 키가 작은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장애가 있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장애에 관해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대부분 의식은 하죠. 워커의 상태가 더 눈에 띄는 편이라, 일라이자가 미안해할 때도 있습니다. 오빠와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데 자신은 얼핏 보면 “정상”처럼 보이니까요. 워커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고, 일라이자는 요가에 푹 빠져있습니다. 둘 다 달리기나 걷기보다 아이들 몸 상태에 적합한 운동입니다. 오히려 스포츠를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첫째입니다.

두 아이에게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일상의 일부입니다. 제가 받아들이기 가장 힘든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친척 어른이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세상에는 키만 조금 작을 뿐 완벽한 자녀에게 성장 호르몬 주사를 놓아주는 부모도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저는 그래도 아이들이 살면서 장애가 주는 고통을 초월해낼 것이라고 믿는 편입니다. 워커는 키가 좀 작지만, 매력이 넘치는 소년입니다. 친구도 많고, 포부도 크며,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농담을 하는 센스도 일품이죠. 일라이자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입니다. 샤워할 때는 노래를 부르고, 마당에서 재주넘기를 즐깁니다. 하지만 식이장애와 불안장애를 겪고 있기도 하죠. 워커 역시 평온한 날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너무나 괴로운 날에는 벽을 치거나 자전거를 타고 폭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고 있는 이런 문제가 모두 장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애나벨도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겁니다. 방황하는 23세 청춘인 애나벨은 유기견을 입양하고, 문신을 즐기며,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진로 고민도 한창입니다. 멋진 시를 써내지만, 주로 불안과 고뇌가 묻어난 글들이죠.

XLH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생 자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모와 키,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습니다.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물론 저도 워커와 일리이자가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빛나는 순간들도 있죠. 한번은 둘째와 셋째를 양옆에 거느리고 함께 길을 걷다가, 우리 모두 똑같이 “장애인다운” 걸음걸이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정체성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들과 다르게 걷는 법을 익히면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60년대에는 제 미래에 대해 함부로 넘겨짚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톨릭 학교의 교사 한 분은 제가 어차피 결혼할 수 없을 테니 수녀가 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셨고, 한 친구의 아버지는 “별로 안 예쁜 여자애들도 과학을 전공하면 멋진 커리어를 가질 수 있다”며 제게 생물학 전공을 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언들은 실현되지 않았죠. 저주인지 축복인지 그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젊은 시절에는 성생활도 왕성했습니다. 괴로운 연애도 몇 차례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행복한 연애도 해보았죠.

저도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들이 저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이상한 남자를 만나 마음고생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과도한 음주, 흡연 같은 나쁜 버릇을 들이지 않기를 바라고, 남들 눈에 멋져 보이는 삶에 연연하기보다는 내면을 다지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저질러도 어쩔 수 없지요. 생각해보면 이런 모든 인생의 고민거리들은 XLH, 또는 다른 어떤 장애와도 큰 관련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물려준 장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둘 다 장애가 사전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지만, 선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라이자는 장애 때문에 사람들 틈에 쉽게 섞일 수 없지만, 덕분에 공감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키가 작고, 아프니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어서 정말 기뻐요.” 워커가 한 말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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