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 가려면 아이티(Haiti)부터 가라?
2016년 8월 19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미시간주 플린트(Flint)에 있는 가톨릭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 딜런 에르난데즈(Dylan Hernandez)는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지난해 이맘때와 비슷한 내용의 글과 사진이 친구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속속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저 빼고 모두가 그랬다고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친구가 중앙아메리카나 아프리카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어요. 사실 그런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은 대개 집이 좀 잘 사는 친구들이니까 저 빼고 전부라고 할 수는 없긴 하겠네요.”

제게 보낸 이메일에서 에르난데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 가운데는 멘트까지 판에 박힌 것처럼 비슷한 내용이 많습니다.

“두 살에서 여섯 살 사이쯤 되는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찍은 사진에 달린 글은 대부분 이런 식이죠.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두고 차마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네.’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러나 끝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한 학생은 아마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오죠. 짧게는 일주일 정도 미지의 나라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다 쓰러져가는 학교나 도서관 보수작업을 도와주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면, 이 학생들은 대학교 지원서 중 자기소개서에 채워 넣을 인상적인 이야깃거리를 얻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깨달음을 주었고, 그를 통해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 유려하게 설명해내는 건 이제 포장하기에 달렸습니다.

에르난데즈는 봉사활동이나 뜻깊은 일을 하러 다른 나라에까지 가본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사는 플린트의 YMCA를 통해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놀아주는 등 폭넓은 봉사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는 가끔 해외에 다녀오는 몇몇 친구들의 모습이 좀 거슬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친구가 좋은 뜻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간다는 거 저도 잘 알죠. 그렇지만 가끔 몇몇 친구들은 그저 이국적인 여행에 대한 낭만만 잔뜩 품고 갔다가 정작 그곳에서 가난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요. 멀리 갈 필요 있을까요? 사실 제가 YMCA를 통해 인연을 맺은 아이들은 저희 또래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주기만 해도 정말 좋아하고 즐거워해요. 여권도 필요 없고, 세관 신고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요.”

에르난데즈는 제가 대학 입시 과정에 관해 쓴 글들을 읽은 적이 있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먼저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그가 들려준 주변의 이야기들은 저를 비롯해 현행 입학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해 온 이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왔던 사항이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사실은 그저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 정도에 불과한 여행을 대단한 봉사활동이라도 한 것처럼 꾸민 뒤 명문 대학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그런 경험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집어넣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목격한 가난과 힘든 삶은 그 학생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키운 공감 능력은 과외 활동을 통해 기른 장점 항목에 자리 잡습니다.

이런 상황이 더 우려스러운 건 지금과 같은 입시 과정을 겪은 학생들이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면 특정 시기를 놓치지 않고 꼭 해야만 하고, 실제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에 관계없이 그저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며 이력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그런 전략이 먹힐 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개 다른 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자선 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시늉만 하면 입학사정관의 눈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역효과가 날 수도 있죠. 하트포드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입학처장 앙헬 페레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학처 사람들은 자연히 수많은 지원서를 보게 되죠. 저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열대우림을 지키기 위해 코스타리카로 떠난 선교 여행”이에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길래 선교를 목적으로 와서 열대우림을 지키겠다는 건지, 너무 허황한 포장이라는 거죠.”

케년 칼리지에서 오랫동안 입학사정관으로 일한 제니퍼 델라헌티도 자기소개서 중에 선교 여행의 경험을 서술한 부분은 과장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라 특히 꼼꼼히 읽게 된다고 말합니다.

“대개 이런 자소서가 내리는 결론이 거의 비슷해요.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에 감명했다거나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이더라는 식의 결론이죠. 실제로 어떤 학생들에게는 그 경험이 분명 신선한 충격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충격을 에세이에 고스란히 담아낼 필요는 없어요. 특히 다른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말을 그냥 끌어다 놓고 만 에세이는 학생 본인이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게 되죠.”

선교 여행을 떠나거나 해외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학생 중 진심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잠깐이나마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활동에 참여해 정말로 값진 경험을 얻고 돌아가는 학생들도 많을 겁니다. 페레즈도, 델라헌티도 이 점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동시에 다소 냉소적인 시선을 완전히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 대학 입시전략 상담사가 제게 이야기해준 본인의 경험입니다. 하루는 자신의 고객 가운데 부유한 유럽인 학부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고 합니다. 매년 8월 떠나는 가족 휴가를 취소하고, 당장 아들을 개발도상국 어딘가에 도로 건설 현장에 보내 자원봉사를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대학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경험으로 길을 내는 봉사활동이 꼽혔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거나 읽은 모양이었습니다.

상담사는 학부모에게 어느 나라에 보내실 건지 생각해보았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는 그것도 생각해본 적 없었습니다. 그저 무턱대고 봉사활동을 못 하면 아들이 대학교에 못 갈까 덜컥 겁이 났던 겁니다.

하버드에 출강하는 아동 심리학자 리처드 바이스보드는 대학입학 전형을 개선하고자 현행 제도를 꼼꼼히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인터뷰한 학부모 가운데는 보츠와나에 있는 보육원을 아예 사 버린 돈 많은 학부모가 있었습니다. 보육원을 인수한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자식에게 대입 자기소개서나 면접시험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례 중에는 같은 이유로 가난한 나라의 에이즈를 치료하는 의원을 직접 사들인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누가 하나 하면 남들도 따라 하게 되거든요.”

바이스보드는 말했습니다.

리더십을 평가하는 항목이 중요해지면서 나타난 폐해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스스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학생이 많아졌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훌륭한 단체가 엄연히 있는데도, 그냥 그 단체에서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게 훨씬 체계적이고 효과적일 텐데도 스스로 무언가를 설립하면 리더십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나타난 부작용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교 여행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 세상 어디에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선교 여행이나 스스로 무얼 세우는 행위 자체를 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채플힐의 스티븐 파머 학부 입학처장은 말했습니다. 파머 처장은 선교 활동이나 자선 활동,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얻게 되는 값진 혜택이 많은데, 이런 활동이 점차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활동을 통해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재산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만 하니까요. 점점 활동은 요식적인 의무사항이 되어, 후다닥 해치운 뒤 금세 잊어버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파머 처장도 이 점을 우려했습니다.

“걱정스러운 점은 학생들이 이런 활동을 의무사항으로 여기고 억지로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겁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스스로 고민한 뒤에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만큼 얻는 것도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많은 학생이 쫓기듯 이런 활동을 해치웁니다. 로드아일랜드주 이스트 그리니치에 있는 록키힐 학교의 진학 상담부장 타라 도울링은 많은 중고등학교가 학생들에게 최소 몇 시간 이상 봉사활동 혹은 자선 활동 등을 하도록 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SAT 준비에 운동, 미술 등 방과 후 활동까지 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든데도 말이죠.

이러다 보니 중앙아메리카 어디든 잠깐 가서 무엇이든 한 뒤에 봉사활동 이름을 붙여 시간을 이수하는 것이 (그럴 만한 재력이 있다면) 전략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됩니다. 봉사활동을 장려하는 원래 취지가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과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고민의 깊이가 부족한 학생?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돈으로 소위 지름길을 가게 해준 학부모? 도울링은 일단 학생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변호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이런 경험들을 앞으로의 삶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어떤 교훈을 새겨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해요.”

선교 여행 가운데는 원래 그 학생이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 성당에서 떠나는 아주 알차고 뜻깊은 프로그램도 당연히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다소 급조한 탓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프로그램도 있기 마련이죠.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배울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선교 여행 말고도 무수히 많습니다. 좋은 캠프 프로그램도 있고, 의미 있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습니다.

페레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접수된 원서 가운데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학생은 여름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더라고요. 뭐라고 썼나 봤더니 자기가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보기 전까지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더군요. 자기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아보니 그제야 알겠더래요. 사람들도 자기를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았다면서요.”

잠깐, 혹시나 극성인 부모님들 또 서둘러 동네 커피숍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계시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진정하세요. 페레즈가 한 말은 자녀에게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시키라는 소리가 아니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혀야 깨달음을 얻고 자기만의 경험으로 체득해야 교훈을 새길 수 있다는 말을 한 겁니다. 노동의 가치를 깨우쳐주고 싶다면, 멀리 갈 것 없이 집안일부터 적당히 분담해서 같이 땀을 흘려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이미 우리 청소년들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꽤 많은 경험을 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에르난데즈처럼 말이죠. 많은 친구가 다른 나라로 요란한 여행을 떠나고 플린트의 YMCA에 남겨진 에르난데즈는 무척 외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100만 원도 넘는 돈을 써가며 왕복 20시간도 더 걸리는 여정으로 과테말라에 가서 일주일 동안 120시간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을지 수없이 자문해봤다고 합니다. 답을 얻지는 못했죠. 에르난데즈가 걱정된 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도 있을 아이들입니다.

“돈 많은 미국인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이 우르르 와서 같이 놀아주다가 며칠 만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나면, 그 아이들이 느낄 상실감은 누가 채워줄까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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