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스튜어트] 세 번째 문화: 수학의 힘과 영광(1/2)
2016년 8월 9일  |  By:   |  과학  |  No Comment

과학자이자 소설가였던 C. P. 스노우는 1959년 리드 강좌에서 자신이 관찰한 예술과 과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의 간격을 설명했습니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였던 F. R. 리비스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세상에는 하나의 문화만이 존재하며, 곧 예술만이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기초과학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래야할 필요는 없다는 스노우의 주장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스노우의 강좌는 그가 1956년 뉴 스테이츠맨에 쓴 글에 어느 정도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문화적 입장을 대변한다는 이 잡지의 첫 번째 사설이 보여준 전통을 이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그리고 지적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화학자나 생물학자가 자신의 시험관이나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어떤 요소도 무시하지 않고, 어떤 선입견도 보이지 않으면서, 진실의 내용과 무관하게 이를 찾아내 널리 알리겠다는 자세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대할 것이다.”

독자들을 너무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편집자는 과학적 비유에 대해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저울이나 자로 측정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사회적 문제는 어쩌면 – 아니 실제로 –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의 과학적 분석에는 적절하지 않을 지 모른다.” 당시에는 이런 관점이 일리가 있었겠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습니다. 오늘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태도나 행동, 신체적 특성을 측정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비만이라는 사회 문제는 실제로 인간을 저울에 단 숫자들의 통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뉴 스테이츠맨 의 편집자들도 그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 과학적 정신이 일부라도 적용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문제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 정신을 고양하고 이를 현재 논쟁이 되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뉴 스테이츠맨의 눈 앞에 주어진 과제이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보람있는 과제였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이자, 100년 전보다 오늘날 더욱 의미 있을 수 있는 과제입니다.

예술과 과학, 두 문화 사이의 간격은 스노우의 강의 이래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간격은 줄어들었다기 보다는 몇 개의 다리를 통해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다리는 충분히 넓고 튼튼하지만, 어떤 다리는 불안하며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학도들과 예술학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서로에 대해 인류의 지적재산에 아무런 가치를 더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평생을 바쳐온, 제 3의 문화가 있습니다. 이 분야는 예술과 과학에 모두 걸쳐있으면서도 또한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둘 사이의 교집합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이 분야는 예술과 과학을 모두 닮았지만, 또한 어느 한 쪽에만 포함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둘과 충분히 다릅니다. 이 분야는 학교에 따라 똑같은 수업을 받고도 예술학사(Bachelor of Arts) 혹은 과학학사(Bachelor of Science)를 받게 되는 유일한 분야입니다. 바로 수학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반인, 많은 저명한 과학자, 거의 모든 예술가, 상당한 다수의 정치가와 지구상 거의 모든 정부는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리비스는 과학에 반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과학이 문화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과학은 교양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아니며, 그저 실용적인 목적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종종 더 심한 대접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수학을 못하는 것을 마치 자랑처럼 여깁니다. 어쩌면 이는 방어기제일 수 있습니다. 수학자를 만났을 때 “나는 학창시절 때 수학을 잘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수학에 관련된 이야기에 자신을 부르지 말아달라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종종 이 말을 덧붙입니다. “머리가 좋은 모양이에요.” 이 말도 오해가 있습니다. 수학은 이 세상을 크게 바꾸었으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수학은 극히 창조적이며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늘날 더 빨리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이 무엇인지, 수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수학을 해야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또한 자신이 틀렸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수학이 사회에서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서는, 그 수학이 눈에 띄지 않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수학 박사학위가 필요하다면 스마트폰이 이렇게 많이 쓰일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런 형태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도의, 심지어 난해하게도 보이는 수학을 스마트폰에 적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엔지니어들이 없었다면 스마트폰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호의 품질이 너무 낮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며, 네트워 용량이 너무 작아, 인터넷을 쓰기 위해서는 미리 그 시간을 예약해야 했을 것입니다. 스노우 시대의 국제전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왜 수학이 예술과 과학 사이에 불안하게 걸쳐 있으면서 어느 분야에도 확실하게 속하지 않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르네상스 시대의 7학인 트리비움(문법, 논리, 수사학)과 쿼드리비움(산수, 기하, 음악, 천문학)에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수와 기학은 바로 수학이며, 천문학 역시 그 시대에는 수학이었습니다. 실제로 7세기 인도에서는 수학은 천문학의 일부였습니다. 오늘날 논리는 역시 수학의 일부가 되었으며 유클리드 증명의 기본입니다. 한편 음악은 분명 예술이지만 음계라는 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법과 수사학은 문학이 되었습니다.

천문학에 쓰여진 수학은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아이삭 뉴튼 등의 활약으로 자연과학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뉴튼의 프린키피아는 “세상의 작동방식”을 수학적 법칙을 통해 밝혔습니다. 수학은 그 자체로는 과학이 아니었지만 자연과학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도구가 되었습니다. 수학이 진짜 과학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는 수학적 진실은 논리적 증명에 의할 뿐,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또한 엄밀한 논리적 일관성이라는 제한을 받기 때문에 예술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혁신적인 수학은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자유와 함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지만, 이는 수학자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면에서 중요할 뿐, 기존의 수학적 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수학적 개념은 피타고라스 정리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거짓인 것처럼 기존의 진실을 맥락에 맞게 변형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정리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여전히 참입니다.

과학도 아니며, 예술은 더더욱 아니지만, 수학은 정부의 지원이나 교육적 목적에서는 과학으로 분류되어 왔습니다(학위를 어느 쪽에서 받건 간에). 만약 둘 중에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과학에 가까울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과학에 포함됨으로써 예술에 포함될때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수학이 일종의 단순 작업에 가까운 신데렐라 과학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다른 과학분야, 예를 들어 입자물리나 전파천문학, 유전학이 받는 지원에 비해 불쌍할 정도로 적은 지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 정부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수학분야 – 순수 수학, 응용 수학, 통계학, 전산학 – 이 21세기 첫 십 년 동안 미국의 경제에 기여한 정도는 4경원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012년 딜로이트에 의해 이루어진 영국에 대한 유사한 조사는 2012년 수학관련 직업을 280만명으로, 그해 경제적 기여를 300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주된 분야는 연구 개발, 컴퓨터 서비스, 항공공학, 약학, 건축, 컨설팅 등이었으며 이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은 과학분야에서 가장 적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힉스 보존을 발견한 것은(이 발견이 정말 맞다면) 훌륭한 기초과학의 결과이며 물리학의 “근본”에 빠진 부분을 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힉스 입자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과학분야의 발전이 지체된다고 하기는 힘들며, 그런 관점에서는 이번 발견을 근본적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특히 다른 과학분야들은 이미 충분한 실험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힉스 입자의 유무는 이들 과학분야를 크게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힉스가 존재한다면, 기존의 관찰된 현상과 일관성을 가진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며, 힉스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입자물리학 뿐입니다.

CERN 의 LHC 에 쓰여진 10조원의 10%만 수학에 쓰였다면, 우리 사회가 얻게될 이득은 훨씬 거대할 수 있습니다.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계획은 1조원의 예산을 필요로 하지만 지원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차세대 슈퍼컴퓨터는 기후과학이나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할 때, 대체 에너지원을 찾을 때 등에 활용될 수 있으며, 미래의 컴퓨터 기술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힉스 입자의 발견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로 인한 이득은 입자 측정 장치를 만들면서 나오는 신기술들입니다. 이는 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얻을 수 있는 이득입니다. 나는 입자물리를 비난하거나 입자물리 지원이 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수학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위한 투자를 크게 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학은 5마일에 이르는 장비처럼 섹시하지는 않지만 그 효용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심오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는 수학적인 입력을 가지지 않는 기기를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수백 가지 중 한 가지만 들자면 GPS, 곧 자동차 네비게이션에는 다른 기술분야, 재료과학, 경영 분야 처럼 몇 가지 다른 영역의 수학이 사용됩니다. 정수론은 슈도-랜덤 수열을 만드는 데 활용되며 이는 전파신호가 인공위성에서 자동차로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을 비교하는 방법의 핵심 기술입니다.

그 시간 간격을 바탕으로 삼각법을 이용해 자동차의 위치를 계산합니다. 특수 상대론과 일반 상대론은 수리물리에 속하며 지구의 운동과 중력이 미치는 영향을 계산합니다. 뉴튼의 중력과 운동 법칙은 위성의 경로를 계산하는 데 사용됩니다. 수학은 최근 생물학 연구에서도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태아의 발생과 유기체의 형성에 관한 오랜 수학적 가설이 대체로 참이며 화학적 그래디언트에 의해 결정되는 “위치 정보(positional information)” 이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첫 번째 수학 이론은 1952년 앨런 튜링이 동물의 점과 줄무늬 형성을 수식화한 이론이며 두 번째 이론은 1976년 조나단 쿡과 크리스토퍼 지만이 척추가 형성되는 것을 수식화한 “시계와 파면(clock and wavefront)” 이론입니다.

수학은 또한 암 연구에서도 기존의 유전학과 생화학에 더해 어떤 암 세포가 자라고 퍼질지를 예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의사들로 하여금 다양한 치료방법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의 사용은 수천 군데에 이릅니다. 유전 발견, 범죄학, 식물 수정, 기후 모델링, 날씨 예측, 주식 시장, 항공기 디자인, 연료 효율, 대체 에너지, CD, DVD, 영화의 특수 효과, 구글의 검색 엔진,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 폰, 3-D TV, 컴퓨터 칩, 소프트웨어 인증, 수족구 발병, HIV, 심장병, 제세동기 디자인, 외국어 번역, 크리켓 경기에서 판정 등에 쓰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과학과 수학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조각가 피터 랜달-페이지는 기하학과 수학의 자연적인 형태를 사용합니다. 건축가 찰스 젠크스는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예술 형태를 제시했습니다 (혹은 오랜 전통을 되살렸습니다.) 그는 혼돈(chaos) 이론의 “별난 끌개(strange attractor)”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주 사색정원(Garden of Cosmic Speculation)”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최근 작 “노썸버랜디아(Northumberlandia)는 신화와 인간의 형태에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2부로

(뉴 스테이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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