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클라인, “이번 대선은 정상과 비정상의 싸움”
2016년 8월 4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복스의 편집장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이 이번 대선에 나선 클린턴과 트럼프 두 후보의 차이를 분석했습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드러난 특징적인 차이를 보면, 이번 대선은 “정상 대 비정상”의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고 클라인은 설명합니다.

이번 선거는 다릅니다. 좌우의 대결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도 아닙니다. 이번 선거를 가장 적절하게 요약한다면 “정상과 비정상의 대결” 정도가 될 겁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드러난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 집니다.

먼저 민주당 전당대회를 돌아보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정상적인 정당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뽑았습니다.

  • 클린턴은 오랫동안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 경선에서 힐러리에게 패한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고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통합을 호소했습니다.
  •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도 클린턴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도 클린턴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 수많은 연사들은 연설 곳곳에 힐러리라는 이름을 넣었습니다.
  • 상대방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감이 아니라며 선거에서 클린턴이 트럼프를 꺾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껏 보아 온 전형적인 전당대회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민주당 전당대회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늘 그렇듯 이견이 있었고, 단합해 선거를 치르려면 아직 처리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당이라는 조직이 원래 의견이 똑같은 이들만 모여있는 조직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이번 민주당 경선은 예상 외로 치열하게 전개됐고, 그 결과 샌더스 상원의원의 열렬한 지지자들 가운데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야유를 멈추지 않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민주당이 갈라지거나 양당제의 기반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전당대회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상적인 전당대회였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옹립한 공화당 전당대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비정상적인 전당대회였습니다. 아래 열거한 사실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특징과 비교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 트럼프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처음으로 공화당원이 됐습니다. 선출직 공무원으로서의 정치 경험은 전무합니다.
  •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테드 크루즈는 전당대회 주요 시간대에 연설 시간을 배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연설 내내 크루즈는 끝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양심에 따라 투표합시다(vote your conscience)”였습니다.
  • 생존해 있는 두 공화당 소속 전직 대통령, 부시 부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전당대회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 지난 두 차례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와 존 매케인도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전당대회에 불참했습니다.
  •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법무부장관이 유력한 크리스 크리스티를 포함한 수많은 연사들은 선거에서 승리하자는 것 이상의 구호를 시종일관 외쳤습니다. “범죄자 클린턴을 투옥하라”는 외침이었습니다.

비교적 정상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사실 이상한 점 투성이었습니다. 텍사스 주지사 출신이자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서기도 했던 릭 페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말을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능한 한 자제하려는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풍겼습니다.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연설문은 미셸 오바마의 연설문을 베낀 것이 탄로나 곤욕을 치렀습니다. 전당대회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다른 활동은 자제하는 것이 관례이자 상식입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 첫째날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폭스뉴스와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어 골프 채널은 트럼프와의 한 시간 짜리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부통령 후보 마이크 펜스의 후보 수락 연설에 쏠려야 할 관심을 가로채간 것도 트럼프 본인이었습니다. 나토 조약에 문제가 있다며 미국이 조약에 얽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뉴스거리’를 뉴욕타임스에 던져줬죠. 트럼프의 연설에 열광하고 환호한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은 KKK의 수장이었던 데이비드 듀크였습니다.

전당대회가 끝난 뒤 트럼프의 행보는 더욱 문제였습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테드 크루즈를 향해 단단히 벼른 듯 악담을 퍼부었는데, 테드 크루즈의 아버지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사실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식 중상모략에 이어 어차피 크루즈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 기억에 이토록 제무덤을 파는 이상한 정치 행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수 언론도 무척 당황한 모습입니다. 위클리 스탠다드의 스테판 해이예스는 트럼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다음주, 트럼프는 마치 민주당 전당대회를 중계라도 하듯 열심히 트위터에 열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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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중 트럼프가 올린 트윗. “사기꾼 힐러리에게 이메일의 발명은 아주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이 무능한 데다가 거짓말쟁이라는 것까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으니까요!”

이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포카혼타스라고 비꼬아 부른 것이야 전에도 여러 차례 그래왔던 것이니 그렇다 치고,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버지니아 상원의원 팀 케인이 뉴저지에서 저지른 실정을 문제삼은 건 아마도 뉴저지 전 주지사인 톰 킨과 헷갈려 그랬을 수 있다고 칩시다. 참고로 톰 킨은 공화당 소속이었지만요.

그리고 문제의 러시아 해킹 발언이 나옵니다.

“듣고 있나요 러시아? 민주당 전당대회 관련 이메일 가운데 사라진 이메일 3만3천 건이 어디있는지 해킹해서 세상에 낱낱이 공개해준다면, 아마 언론의 칭찬이 자자할 겁니다. 그러니 해킹 능력을 총동원해서 어떻게 좀 해보세요.”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당선을 위해 외국 정부가 미국 정당에 해킹 공격을 가해달라고 공식적으로 부탁한 겁니다. 처음에는 지지자들도 돌출발언이겠거니 하고 웃어 넘기려 했지만, 트럼프는 트위터에 다시 똑같은 내용을 올립니다. 참고로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 마이크 펜스가 만약 이번 민주당 이메일 해킹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발언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 나열한 어떤 것도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운 민주당과 보수적인 정책을 내세운 공화당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두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차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차이는 단지 이념적인 차이, 혹은 정책의 차이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범주에 속한 민주당은 정상적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뽑은 반면,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공화당은 비정상적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뽑았습니다.

결국 또 민주당 지지하는 좌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고상한 소리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자, 공화당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2012년에도, 2008년에도 공화당 전당대회는 이러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민주당이 계속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게 싫어서라도 마지 못해 트럼프를 찍으려는 유권자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런 분들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관해 어떻게 말했는지를 꼭 한 번 곱씹어봤으면 합니다.

테드 크루즈: 병적인 거짓말쟁이, 완전히 비정상, 누구도 본 적 없는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

릭 페리: 확실히 진단하고 도려내서 버려야 마땅한 보수주의의 암적인 존재.

대표적인 보수주의 잡지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 미국 보수주의에 위협적인 인물

랜드 폴 (켄터키 주 상원의원, 공화당 경선에 도전했다가 중도 사퇴): 자아도취 망상에 빠진 인물, 누런 얼굴의 수다쟁이, 트럼프보다는 먼지 뭉치가 더 나은 대통령감.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쓰이는 언어들도 우리가 익히 알던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정치적인 비판이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한 언어입니다. 그만큼 공화당 정치인들도 지금 당이 대통령 후보로 뽑은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 아니며, 쉽게 말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유권자들에게 똑똑히 말하고 있는 겁니다.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유능하고, 무엇보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뽑읍시다.”

클린턴은 예측이 가능한 후보입니다. 전반적으로 대통령 클린턴이 어떤 목표 아래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지 유권자들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블랙박스입니다. 대통령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온갖 음모론을 진짜 얼마나 믿고 있는지, 어떤 정치를 펼지, 미국 정부가 이전에 맺은 조약, 협약을 어디까지 지키려 할지 등 수많은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인종차별주의 발언, 나토 조약과 동맹국에 대한 비하 발언, 외국 정부의 선거 개입을 장려하는 듯한 발언으로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발언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꽤 난처할 겁니다. 아무리 이번 선거가 정상과 비정상의 대결이라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후보와 더 보수적인 후보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부자 감세나 낙태에 반대하는 대법관을 임명할 것은 자명합니다. 아마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트럼프가 인간적으로 하자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좌파 정부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에 트럼프를 찍을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이건 정말 위험한 도박과도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사회는 법이 일일이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은 규범에 의거해 유지되고 굴러가는 사회입니다. 정당에도 지켜야 할 일종의 규범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수준의 후보를 내세우느냐, 어느 선까지 행동을 받아들이느냐, 당의 기조가 무엇이냐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는 이러한 규범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후보입니다. 그런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공화당은 스스로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체화하며 비정상적인 정당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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