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퇴에 표를 던진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
2016년 6월 30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적인 원칙 가운데 하나인 1인 1표는 (투표 연령을 넘긴) 모든 성인의 한 표에 같은 값어치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에 따라 받는 영향은 유권자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인 효과가 큰 결정일 경우에는 특히 연령대에 따라 이 차이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표심을 연령층에 따라 나누어본 아래 표는 이미 온라인은 물론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화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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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고브(YouGov) 출구조사. 원문 복스 링크에서 캡처.

브렉시트 결정의 영향을 가장 오랫동안 받게 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유럽연합에 남아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반대로 유럽연합을 떠나자는 데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준 노년층은 정작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유럽연합 탈퇴 절차가 마무리되고 난 뒤에는 (평균적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누구보다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이들은 영국의 젊은이들입니다. 옥스포드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올 가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는 잭 레나드(Jack Lennard)가 복스에 개인 자격으로 기고한 글을 번역해 소개합니다. 원문 제목은 “Brexit is a middle finger from the baby boomers to young people like me”로 그대로 옮기면 “브렉시트는 베이비붐 세대가 저 같은 젊은이들을 제대로 엿먹인 사건” 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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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한 결정을 지켜보며 저는 좌절했습니다. 같은 영국인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상황은 간단합니다. 누가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 유권자 분포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유권자들 가운데 탈퇴에 표를 던진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반대로 사전 여론조사에서 18~24세 유권자는 72%가 잔류를 지지했습니다. 국민투표에서 모든 표는 똑같은 값어치를 지니지만, 그 표에 담긴 열망이나 투표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유권자마다 당연히 다를 겁니다. 실제로 투표 결과가 미치는 영향도 모두에게 같지 않습니다.

(캐머런 총리가 밝힌 대로) 올 가을 새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항을 발동해 탈퇴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영국이 유럽연합을 완전히 떠나는 건 일러야 2018년 말 쯤이 될 겁니다. 공식적으로 탈퇴하는 것이 그 때지 상품이나 서비스, 노동자가 오가는 것을 비롯한 세세한 규정을 타결하는 데는 수 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유럽연합 내 다른 27개 회원국을 자유로이 오가는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1970년대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영국을 구해낸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투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노년층이 유럽연합 시민이 아닌 영국인으로 살아야 할 날은 평균 16년. 반면 유럽연합에 남고 싶은 여론이 훨씬 높았던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살 날이 길지 않은 이들의 뜻에 따라 앞으로 평균 69년을 유럽연합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브렉시트 표심을 좌우한 이들은 정작 브렉시트의 장기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그 전에 죽을 테니까요.

시쳇말로 이 결과는 베이비붐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빅엿’을 먹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엄청난 빚을 떠맡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요동치는 집값, 땅값에 노동시장을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게 만들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무상 교육에 탄탄한 연금 제도의 혜택을 보고 나서 자신들이 올라온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불태워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베이비붐 세대는 아주 노골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유럽연합 내 다른 27개 회원국을 자유로이 오가는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1970년대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영국을 구해낸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경제적 희망, 영광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영국독립당의 당수 나이젤 파라지는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날을 새로운 영국의 탄생을 기리는 독립기념일이라 부르며 감격에 겨워했지만 이는 누구도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혼란의 서막을 알리는 우울한 계시일 뿐입니다. (제국주의 깃발 아래 온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어놓았던 영국이 ‘독립’ 운운하는 것부터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영국에게 닥칠 각종 경제적 문제를 나열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왜 21살 대학생인 제가 배신감이 들 정도로 분한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국은 더 이상 석탄을 캐서, 배를 만들어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철강 산업도 이미 오래전에 사양화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물자가 오가는 세계화의 속도와 흐름을 고려하면 식품업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 자명합니다. 영국이란 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국가 신용도를 AAA로 유지해주는 건 모두 아시다시피 금융업과 학문, 연구 분야입니다.

영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 모여 있습니다. 세계 최고 대학 순위 10위 안에 네 곳이 영국 대학교인데, 그 중에는 제가 이제 막 학부 과정을 마친 옥스포드 대학도 있습니다. 또 다른 명문 대학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저는 10월부터 석사 과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대학들이 최고 대학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에 걸맞는 돈을 지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게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옥스포드 대학이 유럽연합으로부터 연간 지원받는 돈은 6,600만 파운드(우리돈 약 1,000억 원)를 지원받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옥스포드로서는 어쩌면 브렉시트로 인해 이 적잖은 지원금을 잃는 것보다도 유럽 유수의 연구기관, 대학들과 함께 팀을 꾸리고 협력해가며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됐을 때 저와 제 친구들은 모두 절망했습니다. 슬픔과 좌절을 묘사하는 그 어떤 표현도 들어맞았을 겁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상황은 더 우려스럽습니다. 마이클 아서 총장은 영국이 유럽연합 전체에 연구비를 지출하는 것보다 보조받는 연구비가 더 많다며 결국 브렉시트로 인해 고등교육에 드는 돈을 조달하기 훨씬 어려워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유럽연합 내 대학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연구하고 공부하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서 제외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영국 대학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호라이즌2020 (Horizon 2020) 같은 프로그램도 폐지된다는 뜻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은 학생의 12%와 지원금 4천만 파운드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나열한 효과는 투표 이전에 거의 모두가 알던 사실입니다. 전문가들도 거의 이견 없이 비슷한 손실이 있을 거라 예측했습니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유권자들은 끝내 묵살했습니다. 탈퇴 캠페인을 이끈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자 향후 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영국에는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며 그들을 나치 때 있던 전문가들과 비교하기까지 했습니다. 탈퇴 캠페인은 경제적인 효과에 대한 온갖 분석을 단호히 거부하고 무시했스니다. 대신 근거가 빈약한, 혹은 아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내세웠습니다. 이제 영국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됐습니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제 친구들은 모두 절망했습니다. 분노, 최악을 피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희망,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간절함, 결과를 무르고 다시 투표를 하자는 청원에 동참하자는 운동까지 슬픔과 좌절, 혼란을 묘사하는 그 어떤 표현도 들어맞았을 겁니다.

제 부모님은 잔류에 투표하셨습니다. 탈퇴가 불러올 부정적인 효과를 잘 알고 계셨죠. 하지만 부모님보다 앞 세대, 그러니까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떤 효과가 올지 잘 알지도 모른 채 탈퇴표를 던지셨습니다. 20세기 초 중부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이 탈퇴 캠페인의 외국인 혐오 논리에 동조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이고 위선인지도 전혀 모르시는 듯하고요.

많은 이들은 윈스턴 처칠의 상징과도 같았던 불굴의 의지를 주문합니다. 심각한 위기를 맞았지만, 나라가 하나로 똘똘 뭉쳐 이겨낼 궁리를 해야지 주저앉아 한탄해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죠.

저 같은 젊은 세대는 원래 희망의 상징이어야 합니다. 지난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풀고 새로운 진보와 인류애를 달성하는 데 앞장서야 하죠. 지난 세기에 이룬 기술 발전을 세계대전이 아닌 다른 쓸모있는 곳에 적용하는 일도 저희의 몫입니다. 우리는 결국 낙관주의자여야 합니다.

그런 저희가 도저히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 만큼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호기심과 야망, 희망을 품고 꿈을 한창 펼치기 시작할 20대에 모든 게 시작부터 꼬여버렸습니다. 지난 브렉시트 투표는 한 세대를 향한 사망 선고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이제 영국은 절대로 하나로 뭉치지 못합니다. 이 투표로 당장 젊은 세대 안에서 냉소주의가 부활했습니다. 브렉시트는 지난 몇 년간 이어온 얼마 안 되는 낙관주의마저 집어삼키고 말 것입니다.

잭 레너드는 고고학과 인류학 전공으로 올 봄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오는 10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문화 유산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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