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반기문 UN 사무총장 후임은 어떻게 뽑아야 할까? (2)
2016년 5월 27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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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의 역량 차이에 목숨이 달려 있다 (The margins matter)

사무총장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반기문 총장이 아니라 누구였더라도 반 총장 임기 중에 발발한 분쟁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다. 최근 브룬디나 콩고 동부에서 발생한 분쟁 등에 UN 사무총장 혼자 힘으로 마침표를 찍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사무총장의 역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UN이 결함이 많은 조직이라도 여전히 내전이 일어나고 정세가 혼란할 때 우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UN이기 때문이다. 갈등이 증폭되고 분쟁으로 비화되는 걸 UN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도, UN 사무총장은 많은 경우 분쟁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앉힐 수 있는 대단한 권위를 가진 존재다. 협상이 이뤄진 다음에 위태위태한 평화를 관리하고 정착시키는 임무도 결국 UN의 몫이다. 정말 가까스로 상황을 진정시키거나 간신히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정도일 때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최악의 사태를 한 번 피함으로써 분쟁 지역에 사는 사람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일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무총장의 작은 역량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문제인 것이다.

UN 사무총장은 UN의 최고 행정 수반이기도 하다. 행정가로서도 반기문 총장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반 총장 임기 내내 UN은 시급한 개혁을 해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UN에서 일했던 앤서니 밴버리(Anthony Banbury)는 지난 3월 UN을 떠난 뒤 <뉴욕타임스>에 쓴 글에서 작심한 듯 UN을 위한 직언을 쏟아냈다. 그는 현재 UN은 “조직의 운영상 문제점이 너무나도 많아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UN 평화유지군을 운영하는 데 드는 예산부터 놀랄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편성되고 제대로 된 감사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을 충원하는 것을 비롯한 인사 체계인데, 채용 절차가 너무나 복잡해 사람 한 명을 채용하는 데 평균 213일이 걸린다고 썼다.

실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정치적인 고려가 먼저 이뤄지는 곳이 UN이다. 어느 자리에는 어느 지역 출신이 몇 명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관행 때문에 능력이 없거나 심지어 부패한 사람이 UN 직원이 되기도 한다. 반 총장 취임 전에 일어났던 이라크의 석유-식량 비리 사건만 보더라도 많은 고위 관료들이 뇌물이 오가는 정황을 알고도 이를 막지 못했고, 아예 여기에 연루된 관료도 있었다. 최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UN 평화유지군이 지켜줘야 할 시민들을 오히려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유지군을 구성하기 어려워지자 콩고민주공화국군처럼 악명높은 군대에 머릿수를 채워달라고 요청한 정치적 편의주의가 빚어낸 끔찍한 일이었다. UN 인권위원회의 스웨덴 출신 관료 안데르스 콤파스(Anders Kompass) 씨는 프랑스군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을 고발하고 나섰다가 오히려 자격이 정지됐다. 고위 관료들이 짐짓 모른 체하거나 무마하려던 문제를 제기했던 콤파스 씨는 후에 다시 복권됐지만, 이 사건은 UN이 얼마나 내부적으로 부패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다.

UN의 의사결정 과정과 통치 방식도 전반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즉,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거나 경제 성장을 이룬 신흥 강국들이 5년에 한 번씩 사무총장 뽑을 때나 주어지는 형식적인 의결권 말고 실제로 국력에 걸맞는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현재 다섯 나라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브라질, 독일, 인도, 일본 같은 나라는 상임이사국이 될 수만 있다면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다섯 나라에 주어진 절대 권력과도 같은 거부권을 처음에는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각 나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결사 반대하는 나라가 꼭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파키스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할 것이다. 중국은 절대로 일본을 받아들일 리 없다. 브라질의 진출은 아르헨티나나 멕시코의 견제를 받을 것이다. 게다가 이 나라들이 진출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상임이사국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나이지리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한 자리를 더 마련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아랍 국가들은 어떤가? 그렇게 따지면 형평성 문제는 끝도 없다.

UN의 실정, 실수는 그 어느때보다 명명백백히 드러났고, UN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거세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 개혁 논의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도 전에 좌초될 것이다.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자신들의 권한을 약화시킬지 모르는 그 어떤 시도도 사전에 차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와 약소국도 마찬가지로 UN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곳곳에 있던 눈먼돈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 각종 분담금을 낼 의무가 없는 약소국의 권력자들에게는 UN에서 받는 지원금이 이른바 자기 세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UN 사무총장의 임기를 5년 중임이 아닌 7년 단임으로 하고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더 많은 권한을 주자는 의견도 미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묵살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을 견제하려 드는 사무총장을 원치 않는다. 현명하면서도 강단 있는, 동시에 이상적인 정치적 가치를 믿는 UN 수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음번 UN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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