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일을 하고 계신가요? 힘드시겠지만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2016년 5월 17일  |  By:   |  세계  |  No Comment

세계 곳곳에서 영어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어권 밖의 다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UN이나 EU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영어가 차지하는 지분이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영어의 세상에 다른 여러 언어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형상이죠.

이런 상황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게 유리하기만 한 것일까요? 외국어로 일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을 열 때마다 적당한 어휘를 찾아 문장을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면, 자신의 주장을 조리있게 펼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담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별 내용 없이도 유창한 말로 논쟁에서 이기거나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능력, 말하자면 추가적인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죠. 최근 마이클 스카핑커(Michael Skapinker)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요령을 익혀야 한다고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카핑커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유리한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미묘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점이죠. 외국어로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보다 좀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협상 과정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이점이 되기도 하니까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한 미국인 교수가 기자에게 말했듯,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문화권 출신인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나 당연시하는 것을 지적하며 논의를 이끌어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식으로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말이죠”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이죠.

외국어로 일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점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벌거나 상대의 주의를 돌리는 것도 꽤 유용하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에서 일하는 한 러시아인의 고백입니다. 외국어로 천천히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합니다. 모국어로 술술 말하는 사람에 비해 생각보다 말이 앞서나가거나, 감정에 휘둘릴 가능성이 작죠.

또한 외국어로 말하다 보면 자신이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피드백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외국어로 의사결정을 하면 더 나은 결정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얼핏 정답처럼 보이는 오답과 같은 함정이 있는 테스트를 나눠줬을 때,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함정을 더 잘 피하는 것으로 밝혀졌죠. 윤리적인 의사 결정 상황이 주어졌을 때도, 외국어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더 공리주의적이고 덜 감정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덴마크에서 일하고 있는 한 미국인은 연봉 협상을 영어로 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덴마크어가 서툴어도 연봉 협상만은 덴마크어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어로 일하기의 이같은 이점은 모국어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다만 영어가 만국공용어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영어로 일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 뿐이죠. 일터에서는 영어를 쓰던 사람들도 각자의 사생활로 돌아가면 다시 모국어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를 오가며 사는 것은 곧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삶입니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잘 읽어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20세기 초반 미국의 뮤지컬 영화 배우였던 진저 로저스는 남성 파트너인 프레드 아스테어의 스텝을 “거꾸로, 그것도 하이힐을 신은 채” 밟아야 했지만, 그 덕분에 탁월한 댄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외국어로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이힐을 신은채 거꾸로 스텝을 밟으며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영어 공부가 힘들때면, 평생 외국어로 말하기의 장단점을 느껴보지도 못할 수많은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들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이겨나가 봅시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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