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자 무슬림으로서 빛났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추모하며
2016년 4월 4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자하 하디드는 영국 건축학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AA)에서 저보다 몇 년 위 선배였습니다. 교장실에서 그가 목소리를 높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윽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나타난 자하는 분노로 온몸을 떨었습니다. 그의 작업이 아주 좋지 않다는 평에 교장실을 박차고 나온 그는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1977년의 AA 학위상, 2004년의 프리츠커상, 영국 왕립건축가협회 스털링상, 그리고 작년의 영국왕립건축가협회의 로열 금메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하는 ‘아웃사이더’였으며, 여성, 외국인, 그리고 비싸고 괴상하게 생긴 건물을 짓는 디자이너로서 겪어야 했던 부당한 일에 맞섰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것으로 여겨지는 건축가라는 직업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그가 헤쳐나가야 했던 여성혐오, 인종차별, 그리고 반건축적 환경을 이해했던 이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무슬림, 소수자,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하는 타일 몇 조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작업을 무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무지한 정신에 빛을 비추는 횃불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건축가일 뿐 아니라 디자이너였습니다. 그의 드로잉과 채색화는 르코르뷔지에나 샤룬과 같았으며, 100여 년 전 여성운동가였던 루스 로위가 AA에 여성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싸웠던 이래 최초로 영국건축가협회의 로열 금메달을 받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물론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30여 년 전 사람들은 여성이 건축을 할 수 없다고 여겼죠. 그럼에도 아직 편견은 굉장합니다.”

자하가 AA에 다니던 시절 여성은 6%에 불과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비율은 24%로 높아졌습니다. 그들 중 다수가 7년의 훈련과 10년의 실습 과정에서 가족 문제로 힘겨워하다 탈락합니다. 자하는 독신이었고 자주 밤을 새워 일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개인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의 회사는 4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거래액이 4천4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프로젝트들을 세계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길었던 노정은 건축가라는 직업에 깃든 차별에 지불해야 했던 비용이었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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