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관이 되려면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할까요?
2016년 3월 22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만약 이력서가 너무 화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메릭 갈랜드 판사일 것입니다. 하버드 학부와 로스쿨 졸업, 연방 대법원 사법 보좌관(clerkship), 다국적 로펌에서의 파트너, 미국 법무부에서의 공직 경력에 이어 갈랜드 후보는 이제 대법관 임명에 필요한 상원 인준 절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격증과 경력에 사로잡혀 있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메릭 갈랜드의 경력은 두드러집니다. 법조계에서 더 명망 있는 자리를 위한 경쟁은 일찍부터 시작됩니다. 학부생들은 명문 로스쿨에 입학하려고 애를 쓰고 로스쿨에 입학한 뒤에는 법학 관련 논문을 심사하고 편집하는 로 리뷰(Law review)의 편집위원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그런 뒤에 사람들이 갈망하는 사법 보좌관 경험을 마친 뒤 유수의 로펌에 취직해서 파트너 자리까지 오르는 길도 경쟁의 연속입니다. 로펌의 파트너가 된 뒤에는 공직이나 법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또 시작됩니다.

갈랜드 판사의 경력은 흠잡을 데 없지만, 그의 경력과 대법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다른 이들을 보면 미국 법조계가 얼마나 좁은 틀 안에서 판사와 법조인을 배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변호사 경력의 성공 여부는 그 사람이 비교적 젊을 때 판가름이 납니다. 로펌은 엘리트 로스쿨 학생 가운데 누구를 뽑을지를 결정합니다. 가장 존경받는 판사들 역시 순위가 높은 로스쿨 출신의 사법 보좌관들로 채웁니다. 우리가 보는 대법관 후보자는 야망 있는 여성과 남성이 24세가 되기도 전에 한 선택과 계산에 따라 결정됩니다.

심지어 현재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전원이 하버드나 예일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출신 배경과 대법관이 되기 전까지 경험은 다양한 편입니다. 토마스 대법관과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비교적 어려운 환경을 딛고 대법관까지 됐습니다. 갈랜드 판사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신발 가게에서 일하고 자신이 소장한 만화책을 팔아가며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댔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색이 강한 경력을 가진 법조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현재의 상원 인준 과정이 가진 문제점 때문에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매우 제한된 경력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변호사가 기업 클라이언트를 대표하는 일을 해 왔다면, 이런 일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인준 과정에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검사도 마찬가지죠. 인준 과정에서 상원 의원들이 특정 입장을 문제 삼을 경우 법조인은 항상 고객의 처지를 대변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변명할 수 있죠. 하지만 만약 어떤 법조인이 미국 시민 자유 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변호사나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면, 이는 이마에 “급진적 좌파”라는 문신을 새기고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상원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대법관이 되겠다는 야망 있고 똑똑한 젊은 법조인이라면 이런 경력을 선택할 가능성은 작겠죠.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 미국 시민 자유 연맹에서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 변호사였습니다. 하지만 긴즈버그 대법관은 2011년에 “제가 만약 지금과 같은 정치적 환경에서 대법관 후보가 되어 인준 과정을 거쳐야 했다면 미국 시민 자유 연맹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했겠죠”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습니다.

대법관이 하버드나 예일 로스쿨을 나와야 한다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겨난 것이지만, 미국 법조계의 상층부로 갈수록 엘리트주의는 항상 강하게 존재했습니다. 미국의 초기 역사에 관해서 썼던 토크빌은 “미국식 귀족주의는 법률가가 되는 시험과 법원에서 볼 수 있다.”라고 썼을 정도입니다. 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결정 중 몇몇은 융통성 없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나쁜 결정의 근본적 원인은 다수 결정을 내린 대법관들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대법관의 자질, “세상이 정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성과주의와 능력에 대한 존경은 능력 있는 지도자를 통치 엘리트로 키워내는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트 경력 자체가 판사들에게 법의 보호가 필요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현명한 판사라면 스스로가 가진 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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