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을 문명화하던 때의 이야기
2016년 1월 21일  |  By:   |  세계  |  No Comment

전쟁은 이미지로도 수행됩니다. 여기서 전쟁은 1911년에서 1912년까지 리비아에서 벌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 전쟁은 이탈리아 군이 수행했습니다.

이탈리아 군은 자신들이 ‘문명화된 열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스통 셰로(Gaston Chérau, 1872~1937)의 사진 촬영을 통해 당시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보존하였습니다. 촬영된 사진은 트리폴리 시내 광장에서 밧줄 끝에 매달려 처형된 사람들을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리폴리의 광장에서 처형된 사람들의 모습 (@가스톤 셰로)

사진 속에서 행인들이 지나가며 이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축 쳐져 있는 처형된 이들의 몸, 뒤로 묶인 채 허공에 떠 있는 그들의 팔과 다리, 비스듬히 처진 그들의 얼굴, 이미 부러진 그들의 목이 드러납니다. 수천 명의 리비아인들이 전쟁 시작 후 1년 내에 이러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한 그 ‘위대한 문명국가’에 저항하지 않을 수밖에 별 다른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 세기 뒤, 2012년 공쿠르 상 수상자인 제롬 페라리(Jérôme Ferrari)와 칼라츠니코프 발명가에 대한 훌륭한 소책자를 저술한 올리버 로히(Oliver Rohe)는 “아랍 세계에서의 군사적 갈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인” 이 사진들을 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진들을 보며 장면의 끔찍함을 확인하였으며,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러한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었는지 자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이 사진들을 촬영하였는지, 또 왜 이 사진들은 “언제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지, 그리고 사진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 이외의 것을 말하게 되는지” 자문하였습니다.

희생자의 수를 세는 예술

결국 그들은 공동으로 짧지만 알찬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서구에서 아랍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추잡함과 저열함에 오염되지 않은 채 문제를 제기하는 일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혈연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공동체로, 공동체에서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대의 저하”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는 마티아스 에나르(Mathias Enard)가 ‘부솔(Boussole)’(옮긴이 : 2015년 공쿠르 상 수상작)에서 각종 미디어가 현재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취급하는 방식을 언급한 것과 같이 “무자비한 시체들의 민족주의”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페라리와 로히는 최근 이라크에서 있었던 사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철수와 이라크 민중 50만 명의 사망(가장 낮은 추정치)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미군 병사 4,489명의 죽음만이 이미 늦어버린 미군 철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각기 미국 영토로 송환되었던 이 전사자들은 오래 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동의를 점차 퇴색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민중들의 죽음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너무 달랐으며, 너무 자주 죽었고, 그들의 죽음은 다 비슷해 보였습니다. 인력 손실의 계산에서의 불평등은 여기서는 정확하고 양심적으로, 또 저기서는 막연하게, 생명을 더욱 존중하는 이들이 어느 쪽에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일은 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중화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또 이러한 내용이 미디어로 전파될 때 그들의 시각이 살아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더욱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셰로(Chéreau)의 빛바랜 사진들을 조사하면서 페라리와 로히는 “이탈리아의 프로파간다가 이 사진들을 경찰 작전의 일환으로 소개하며 리비아에서의 갈등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들은 이탈리아가 필연적으로 비정규전과, 점증하는 게릴라의 저항과, 전 민중이 들고 일어났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잊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 현실의 전쟁이 일어나던 장소에서 이탈리아는 언제나 자신들의 영토였던 곳에 증식하던 살인자들과 범죄자들, 부랑자들을 척결했다는 소설을 작성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경찰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죠.” 저자들은 말합니다. 군사적 수사에 대한 인기의 회복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지로는 말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스통 셰로의 경우, “장소의 이국적인 정서가 폭력을 양식화합니다. 이 경우 폭력은 더욱 멀어 보이고 더욱 수용 가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유럽 병사들과 달리 “원주민들은 폭력에 기대지 않으나: 그들은 폭력적이고, 그러므로 정체되었으며, 그러므로 문명화의 대상이고 그러므로 식민지배 대상이다”라고 시사하며 “모든 것은 리비아에서의 폭력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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