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에 가까운 인도네시아 산불을 어째서 모두 외면하는가?
2015년 11월 6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옮긴이: 이 글을 쓴 조지 몬비옷(Geroge Monbiot)은 정치, 환경에 관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입니다.

환경 대재앙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우리에게 닥쳤을 때 과연 언론이 이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관해 저는 종종 혼자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뉴스 프로그램은 먼저 사건의 개요를 짚어주겠죠. 시청자의 눈길을 확 끄는 화면이나 일화를 엮어서요.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근본적인 진단이나 해결책, 혹은 예방책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없거나 있더라도 한두 마디 정도에 그칠 겁니다. 이어 바로 경제부 기자를 연결해 이번 일이 주식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뭇 진지하게 물어볼 겁니다. 그다음은 편성표대로 스포츠뉴스 시간으로 넘어가겠죠, 아마. 네,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저도 일부 몸담고 있기도 한 언론계에 별로 신뢰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도 언론이 아예 대재앙이라 부를 만한 일을 철저히 외면해버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엄청난 면적의 땅이 불타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승에 있는 지옥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면 지금 인도네시아의 산불이 아마 그 모습에 무척 가까울 것입니다. 온 세상이 잿빛, 황톳빛 연무로 뒤덮였고, 어떤 도시에서는 가시거리가 30m도 채 되지 않습니다. 산불로 인한 사망자도 이미 발생했고,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피해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은 사태가 심각해지면 근처에 정박한 군함으로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이 터전을 잃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산불은 이미 21세기 들어 가장 끔찍한 환경 재앙입니다.

도대체 언론은 무얼 하고 있는 거죠?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의 패션부터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오늘은 또 어떤 멍청한 소리를 지껄였는지가 주요 관심사입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도 넘쳐납니다. 지난주에는 세계 보건기구에서 가공육이 발암 확률을 높인다고 발표하자 이를 두고 엄청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저는 바베큐 그릴 위에서 굽는 소시지 말고 진짜 우리가 발 디딘 땅이, 우리 지구가 불타 사라지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산불이 난 지역은 장장 5,000km에 이릅니다. 그 어떤 객관적인 수치, 자료를 들이대더라도 이는 지금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중요한 사건입니다. 전문가가 근엄한 필체로 쓴 칼럼을 읽어야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산불이 워낙 심각해 그 피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몇 가지 사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산불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미국 경제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많습니다. 불과 3주 만에 독일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보다 많은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나 유독가스 농도 말고도 산불이 초래한 위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산불로 우리의 소중한 생태 보고인 숲과 열대우림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는 이슬람국가(ISIS)가 파괴한 찬란한 고대 유적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랑우탄과 구름표범, 말레이곰, 긴팔원숭이, 수마트라 코뿔소, 수마트라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사는 동물 가운데는 멸종 위기종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그 종류는 끝도 없습니다.

산불로 불타고 있는 지역 가운데는 1963년부터 인도네시아가 불법 점령해 온 서뉴기니(West Papua) 지역도 포함됩니다. 저는 24살 때 여섯 달 동안 서뉴기니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때 제가 조사했던 몇몇 사안이 현재의 재앙이나 다름없는 산불의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때만 해도 이 지역의 습지, 골짜기 어디를 가도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동식물들이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저는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이 천연의 대자연이 지난 몇 주 사이에 잿더미가 되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졌습니다.

숲의 나무만 불타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토탄층인 이 지역의 땅으로 불씨가 스며들면 그 불씨는 길게는 몇 달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탑니다. 땅이 탄다는 건 메탄가스와 일산화탄소, 오존, 사이안화 암모늄 등 각종 해로운 가스를 대기 중으로 내뿜는다는 뜻입니다. 연기가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이웃 나라에까지 당도하자, 산불은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쩌다 산불이 이렇게 겉잡을 수 없이 번졌을까요? 인도네시아의 숲은 이미 지난 수십 년간 벌목 회사와 농장주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들은 물길을 가로막았고 습지를 농지로 개간했으며, 수많은 종이 한데 모여있는 자연을 갈아엎고 펄프나 목재를 생산하는 데 좋은 나무나 야자유 등 단일한 작물을 줄 세워 심었습니다. 땅을 개간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화전입니다. 매년 이맘때쯤 인도네시아 숲에서 산불은 으레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올해 차이가 있다면 역대 가장 강력한 엘니뇨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질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지만, 계속되는 화전과 난개발에 제동을 건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입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독재와 전체주의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사회 곳곳에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에서 고발했듯, 1960년대 수하르토의 흑색선전으로 촉발된 수백만 명의 양민 학살에 가담했던 범인들이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아직도 권세를 누리며, 심지어 사회적인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는 곳이 인도네시아입니다. 준군사조직이자 독재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했던 판카실라 청년단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권세를 앞세워 부정한 방법으로 계속 부를 축재해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대규모의 삼림파괴입니다. 진실은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채 잊혀가고 있고, 서뉴기니 지역은 여전히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살해가 버젓이 자행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인간을 향해 끔찍한 죄를 짓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은 이들은 자연을 향해서도 똑같이, 그보다 더한 죄를 짓는데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위도도 대통령이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정부 정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산불은 이미 예정된 일로 보일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야자유 생산업체에 지원되는 엄청난 액수의 정부 보조금이 그렇습니다. 야자유 생산은 숲을 태워 습지를 농지로 개간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비자 단체의 압력으로 일부 회사들이 열대우림 파괴를 멈추고 자연을 보호하는 데 힘쓰겠다는 약속을 하자, 이번에는 정치인들이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환경 운운하는 주장 때문에 경제가 발목을 잡힌다는 논리였죠. 되돌리기 어려운 생태계의 파괴로 입은 손실을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지만, 이미 300억 달러 손해를 봤다는 산불을 보고도 경제 개발이란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뾰족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야자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요 기업들 가운데 삼림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기업이 있지만, 이 문제를 계속 외면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스타벅스(Starbucks)나 펩시(PepsiCo), 크래프트 하인츠(Kraft Heinz)가 대표적입니다. 이 기업들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꿀 때까지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겁니다.

지난달 26일 위도도 대통령은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백악관은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산불 진화와 예방에 힘쓰고 있는 위도도 대통령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산불은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순간에도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죠.

언론이 중요한 문제를 보도하고 계속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면 정부도 골치 아픈 문제를 거들떠보지 않는 법입니다. 언론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그 문제를 보도하지 않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단순화, 파편화된 언론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저 기업들의 보도자료만 기다리고 있고 사진이나 눈요기만 취급하는 기계로 전락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마치 모든 언론이 공모라도 한 것처럼 이 문제는 이슈가 되지 않았고, 그 결과 언론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수많은 사람은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다음 달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도 언론은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알맹이 없는 외교적 수사나 각본에 따른 가십거리만 읊어댈지 모릅니다. 지금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환경 위기에 대해서도 그저 겉핥기식으로 훑고 넘어가겠죠. 결국, 아무도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영역으로 넘어가 시간만 때우는 회의가 끝나고 나면 다시 언론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모두에게 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은 잊힐 겁니다. 지금 언론은 정말 심각하리만치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Guardian)

원문보기

저자 몬비옷 웹사이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