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 자살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입장
2015년 10월 7일  |  By:   |  칼럼  |  No Comment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는 죽음을 재촉할 약을 처방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조력 죽음(assisted dying)’이 합법인 곳은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주, 영국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이 문제가 다시 표결에 부쳐졌습니다. 1990년대에 모두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았던 곳들이죠. 하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달랐습니다. 영국 의회가 330대 118로 존엄사 법안을 부결시킨 데 반해,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간발의 차이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안락사 지원은 곧 미국에서 가장 큰 주에서 합법이 됩니다.

사회적으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모멘텀이 형성되었던 영국에서 법안이 부결되고, 가까스로 법안이 의회까지 도달했던 캘리포니아에서 법안이 오히려 통과된 것은 의외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두 법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죠. 바로 법안을 발의한 주체가 정부가 아닌 개별 정치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안락사 지원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는 다른 곳에서도 이 문제를 공론장으로 가져오는 주체는 주류 정당이 아닌 환자 모임, 관련 단체 등입니다. 서구 시민의 다수가 불치병 환자에게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이 문제를 회피해 왔죠.

일부에서는 의사 조력 자살 합법화 조치가 대량 안락사를 촉발하게 될 거라고 우려합니다. 하지만 조력 자살을 일찌감치 합법화한 오레곤 주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17년간, 조력 자살을 택한 환자의 숫자는 1,327명입니다. 이 법이 남용되고 있다고 볼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조력 자살이 합법인 상황에서, 환자들이 주변의 압박 때문에 원치않는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죽음의 시기와 방식을 통제하니 도리어 더 큰 자유와 존엄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대다수입니다.

조력 자살 합법화를 반대하는 진영은 여전히 큰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의료인협회가 최근 조력 자살 반대 입장을 철회한 것에 반해, 영국의 의사들은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모든 종류의 자살을 비난합니다. 영국 총리 역시 의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거부권 행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지사가 누리는 양심의 자유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도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개인의 삶이 당사자의 것인 만큼이나 죽음도 당사자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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