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을 위한 변명: 도핑은 윤리적으로 비난 받을 문제가 아니다”
2015년 9월 24일  |  By:   |  과학, 스포츠, 칼럼  |  1 comment

금지약물 복용을 뜻하는 도핑(doping)은 어느 스포츠팬에게든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팬들은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선수들이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운동 능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계를 뛰어넘는 대단한 기록과 성과가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각종 개선제, 강화제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랜스 암스트롱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희대의 사기꾼, 스포츠의 순수한 정신에 먹칠을 한 범죄자로 전락했습니다. 팬들은 큰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암스트롱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우에히로 실천윤리센터(Uehiro Centre for Practical Ethics)를 이끌고 있는 생명윤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줄리안 사불레스쿠(Julian Savulescu)는 인간 복제나 세상의 종말 등 다양한 문제에 관해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을 거침없이 밝혀 왔습니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핑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2000년부터 줄곧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처벌을 반대해 왔습니다. 특히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가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그는 랜스 암스트롱의 선택이 옳았고, 금지약물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은 환상 속에 살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위스콘신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To the Best of Our Knowledge)> 제작자이자 종교와 과학에 관한 책의 저자인 스티브 폴슨(Steve Paulson)이 사불레스쿠를 인터뷰한 내용이 <노틸러스(Nautilus)>에 실렸습니다.

폴슨(이하 폴): 이미 여러 차례 도핑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해 오셨는데요, 더 많은 스포츠에서 도핑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불레스쿠(이하 사): 사람들은 스포츠를 종교처럼 진지하게 여기고 다루려 듭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의 유전적 적합도(genetical fitness), 다시 말해 타고난 건강함이나 신체적 특징을 겨루는 게 스포츠입니다. 가진 능력을 정확하게 펼치고 공정하게 겨뤄야 하는 스포츠에서 속임수는 당연히 환영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찾을 때 자신의 주어진 신체와 그 신체를 단련한 노력의 결실을 찾는 것이지 발달된 기술의 도움을 받아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치는 가장 강력하고, 완벽미를 갖춘 신체를 찾아 헤맸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포츠에서 도핑 또한 결국은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켜나가는 진화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폴: 하지만 그렇게 도핑을 전면 허용하면 결국 스포츠 자체가 뛰어난 운동선수 간의 경쟁이 아니라 뛰어난 약사(chemist)들 간의 경쟁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요?

사: 그럴 수도 있겠죠. 너무 옛날 TV 시리즈를 언급해서 좀 그렇지만 사람의 팔, 다리를 엄청 튼튼하고 빨리 달릴 수 있는 인공 팔, 다리로 교체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인공 팔, 다리로는 100m를 2초에 주파할 수 있다면, 결국 스포츠도 과학자들의 기술 싸움이 되겠죠.

폴: 미래에는 결국 지치지 않는, 엄청 빠른 인공 다리를 부착한 육상 선수가 100미터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게 될 거라는 뜻이군요?

사: 이미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현재 규정상 그런 인공 다리, 장치로 세운 기록을 인정받을 수 없을 뿐이죠. 머지않아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뛸 수 있는 인공 다리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그때 문제는 성과의 어느 정도가 기술 덕분에 가능했고, 어느 정도는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훈련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를 분간해내는 일입니다. 현재 선수들이 복용하는 금지약물의 효과는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 않습니다. 9.89초보다 빠른 100m 기록을 가진 스프린터는 전 세계에 열 명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여섯 명이 금지약물 복용이 밝혀져 징계를 받았거나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복용한 약물은 대개 성장 (촉진) 호르몬인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입니다. 부상을 당했을 때 회복 훈련을 하면 우리 몸속에서 회복을 돕기 위해 스테로이드가 생성됩니다. 한계를 뛰어넘겠다고 근육이 찢어질 만큼 운동을 하면 그만큼 스테로이드도 더 생성될 겁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생성되는 물질을 조금 더 주입해 한계를 뛰어넘도록 돕는 겁니다. 그렇게 넘은 9.8초의 벽은 멀쩡한 다리를 인공 다리로 바꿔 끼고 나서 넘은 9.8초의 벽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폴: 좀 더 이해를 돕도록 실제 사례를 들어주실 만한 게 있나요?

사: 멀리 갈 것도 없이 도로 사이클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봅시다. ‘약물 중독자이자 비열한 범죄자’ 랜스 암스트롱을 퇴출시킨 다음 사람들은 뚜르 드 프랑스가 원래의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되찾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암스트롱은 경주 직전에 적혈구 수치를 늘려 체력을 향상시켰죠. 이런 류의 속임수, 도핑을 막겠다고 대회 주최 측은 대회 중 선수들의 적혈구 수치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래 이 선수의 기본 적혈구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기본 적혈구량을 늘려줄 수 있는 약물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EPO라는 호르몬제를 소량 맞으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고 적혈구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기본 적혈구량이 늘어난 상태에서 대회 중의 적혈구 변화는 문제가 될 게 없죠. 실제로 적혈구를 늘리는 건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훈련하는 것이나 아예 산소 농도가 대기보다 옅은 방에서 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수에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대회 중 적혈구량의 변화만을 측정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폴: 도핑을 적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도핑을 인정하자는 것 역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것 아닐까요?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도록 규칙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잖아요.

사: 물론입니다. 모두가 아무런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는 건 공평합니다. 이를 정확히 감독하는 일이 중요하겠죠. 그런데 지금처럼 모두가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소량의 EPO를 복용해 원래 ‘자연 상태’보다 1~2% 정도 더 많은 적혈구를 지니고 나은 체력으로 대회에 임하는 것도 딱히 불공평한 상황은 아니에요. 모두가 다 그렇게 하니까요.

폴: 누구는 (금지) 약물을 복용하고 누구는 복용하지 않아서 그 때문에 불이익을 얻는다면 이보다 더 공정성에 위배되는 일이 없지 않나요?

사: 제 말이 딱 그 말입니다. 지금 시스템은 아주 엉성한, 성긴 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고운 가루를 걸러내겠다고 우기고 있는 꼴입니다. EPO든 성장 호르몬이든 검출되지 않는, 또는 검출되더라도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과 잘 분간이 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 한도가 있어요. 금지약물들이 쳐다보기만 해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몹시 나쁜 무언가라면 규정을 이렇게 해놓지는 않았겠죠. 아주 조금은 괜찮은데 너무 많이 하지만 말라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우리 몸속의 적혈구나 포도당이나 수분을 늘리는 건 다른 이유로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도 늘었다 줄었다 하는 성분들이니까요.

자, 제 주장은 약물이 무조건 좋다, 필요하다는 게 아닙니다. 그 약을 먹으면 말 그대로 쌩쌩 날아다닐 정도로 엄청난 효과가 즉시 나타난다면 그런 약물은 금지해야겠죠. 또 인체에 해로운 약물, 몸을 해치는 약물도 당연히 금지해야 합니다. 현재 통용되는 약물 가운데는 우리가 비난을 퍼붓는 것처럼 스포츠 정신을 송두리째 흔드는 마법의 약물이나 아주 그 효과가 악랄한 약물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암스트롱도 이렇게 희대의 범죄자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더욱 여론의 뭇매를 맞은 건 아마도 고환암을 극복하고 다시 정상에 선 그의 인생 역경이 워낙 극적이기 때문이겠죠. 여기서 암스트롱이 암에 걸린 것이 그가 약물을 복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근거를 밝혀내야 할 문제지 여전히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문제는 아니라는 제 생각을 덧붙여 밝힙니다.

폴: 그럼 도핑 테스트 결과를 믿고 스포츠 정신은 살아있다고 믿는 팬들이 너무 순진한 건가요?

사: 그 질문에 직접 답하기 전에 지금의 스포츠 판을 생각해봅시다. 스포츠를 움직이는 게 고상하고 순수한 스포츠 정신인가요? 허무맹랑한 소리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포츠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건 나이키, 코카콜라 등 대기업 후원사들입니다. 이들은 대형 스캔들을 원하지 않죠. 선수들, 감독들, 스포츠 기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적으로 지금처럼 계속 판이 돌아간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고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을 겁니다. 이 생태계에서 혼자 대단한 사명이라도 띈 것처럼 굴며 이단아 행세를 하는 게 세계반도핑기구(WADA)지만, 그래서 결국 도핑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아니, 스포츠계에는 세계반도핑기구 말고 지금의 도핑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스포츠 정신의 순수함을 믿는 건 좋지만, 좀 더 솔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Nauti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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