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농장 박물관의 가이드가 말하는 현대 미국의 인종주의
2015년 7월 10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얼마 전까지 저는 남부의 옛 노예 농장을 개조한 박물관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일했습니다. 제 일터는 한때 백 명 이상의 노예들이 일하던 농장이었고, 3인 가족이 사는 저택에서 집안일을 하는 노예가 27명이나 있던 곳이었죠.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저택 투어에 참여했던 한 남성 방문객이 저를 보고 “노예제 문제를 계속 이렇게 떠벌리는 건 미국을 끌어내리는 짓이야.”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반론을 제기하려 했지만, 그는 말을 자르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자네는 너무 어려서 모르겠지만, 미국은 훨씬 더 위대한 나라였어. 미국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 이상이 흘렀지만, 노예제가 역사 교육 과정에 포함된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남부연합기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곳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방문객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 남성 같은 방문객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삐딱한 태도로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회적인 질문으로 노예제가 생각처럼 그렇게 나쁜 제도가 아니었음을 어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무지, 또는 악의에서 나온 방문객들의 질문을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습니다.

1) 노예주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선의로 노예들을 “돌봐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노예는 월급을 못 받는 하인 정도가 아니라, 은식기, 책, 마소와 다름 없는 재산의 일부였는데도 말이죠. 이 저택에 살았던 노예주가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었는지를 묻는 방문객들이 꽤 많습니다. 심지어는 “주인이 베푸는 것에 대해 노예들이 감사하게 생각했나요?”라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죠.

2) “농장일 말고 집안일을 했던 노예들은 그래도 살만 했겠네요?”라는 질문도 수없이 받았습니다. 비슷하게, 구타나 학대를 당한 노예들만이 탈출을 시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노예제가 하나의 제도, 체제로서 나쁜 것이 아니라, 노예 개개인이 운 나쁘게 “나쁜” 노예주를 만나 가혹한 환경에 처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질문입니다.

3) 빈곤 등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노예 상태와 비교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일랜드계, 유대인, 하인, 빈곤계층, 백인 여성, 가톨릭 신자, 일용직 노동자 등 어려운 처지나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백인 집단을 들먹이면서, 이런 사람들과 비교할 때 노예들의 처지가 딱히 더 나빴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4) 왜 노예주들이 노예를 못살게 굴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생각해봐도, 밥을 많이 줘야 열심히 일할 것 아니예요?”라는 식의 질문은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노예들이 겪은 고통이 실은 모두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노예를 학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흑인이 백인보다 육체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밥을 조금만 먹고 잠을 덜 자도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거나, 실제로 피부가 더 두껍기 때문에 매를 세게 맞아도 견딜 수 있다는 게 노예주들 사이에서는 기정 사실로 여겨졌습니다.

5) 강제로 잡혀있었던 노예들의 “충성심” 여부를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도 주고, 잘 곳도 주는 주인에게 충성했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내가 도망치면 나에게 총을 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충성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반문하고 했죠.

사람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학교나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던 사람도 있고, 이런 주제를 깊이 생각해본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질문을 받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삼아 답을 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원래 생각과 달랐던 이야기에도 마음을 열곤 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이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조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내 할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죠. 이런 부류는 노예제 자체를 옹호하기보다는, 노예주들을 옹호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자신을 계급 사회의 피해자로 여기면서, 피해자로서의 연대감을 흑인과 나누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대로 사회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예가 되는 신세만은 겨우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선조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찰스턴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처럼 자신의 분노를 받아줄 희생양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었겠죠.

문제는 이런 질문의 기저에 깔려있는 생각의 위험성입니다. 만일 이들의 생각대로 노예제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면, 현대 사회에서 흑인들이 겪는 차별의 문제는 정말이지 별 것 아닌 문제가 되고 맙니다. 노예의 후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손쉽게 외면할 수 있는 논리가 마련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답들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인종주의가 머리 아닌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죠. 노예제가 왜 나쁜지 백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잘못된 생각을 바꾼다는 차원에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다른 인종의 누군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가르치고, 지역 사회와 종교 단체도 이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미디어도 특정 인종을 편견에 기반한 심볼이 아닌, 인간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느끼는 공감 능력을 사회 전반에 확산할 수 있는 우회적인 방법입니다.

매일같이 역사적 무지를 대면하는 상황에서 제가 무기로 삼았던 것은 바로 부드러운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이드에게 친밀감을 느낀 방문객들은 질문 내용에 대한 지적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가 백인이라는 점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찰스턴 총기 난사 사건에서 보듯, 인종주의는 개인적인 친분으로만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한 선배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해주었고, 저는 이 충고를 직장 생활 내내 큰 버팀목으로 삼았습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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