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들은 어떻게 곡 전체를 외울 수 있을까?
2015년 7월 8일  |  By:   |  과학  |  2 Comments

성악가나 솔로이스트는 말할 것도 없지만,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커리어의 어떤 시점에서건 한 번 이상은 곡 전체를 외워서 연주할 일이 생깁니다. 악보를 외우는 것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악보 없이 연주하면 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악보를 외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악보를 보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후자들은 무대 위에서 외운 것을 잊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오히려 표현력을 방해한다고도 말합니다. 이런 두려움으로 인한 무대 공포증은 한 뮤지션의 연주 일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실내악 연주자들은 악보 암기의 압박에서 조금 자유롭습니다. 역사상 극소수의 예외를 빼면, 사중주단은 대부분 악보를 가지고 무대에 오르죠. 올 여름 단원 전체가 전곡을 외워서 무대에 선다고 밝힌 오로라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악보 외우기가 괴로운 뮤지션은 클라라 슈만과 프란츠 리스트를 탓해야 합니다. 이들이 19세기에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유행을 선도했으니까요. 그 전에는 악보없이 연주하는 것이 오만한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멘델스존은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였지만, 악보가 없을 때는 무대 위에 아무 책이라도 세워놓고 악보인 척 보면서 연주를 했을 정도입니다. 베토벤이나 쇼팽 역시 학생들에게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르네상스 이전에는 악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곡을 외우는 것은 필수였죠.

과학자들은 1800년대부터 뮤지션들이 악보를 외우는 능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근육 기억(muscle memory)”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근육에 기억이 저장되는 것은 아니고, 운동 학습을 통한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의 일종이죠. 이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나, 세상에 대한 지식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운전이나, 타자 치기, 자전거 타기에 이 절차 기억을 활용합니다. “연습을 통해 완벽해진” 기억으로, 덕분에 우리는 운전과 같은 비교적 복잡한 행위를 큰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나 압박 하에서는 절차 기억에도 “삑사리”가 날 수 있습니다. 곡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연주자도 순간적으로 다음 음표를 잊어버리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뮤지션들은 음악과의 상호작용을 다양화하기 위해 다른 여러 전략을 사용합니다. 악보를 직접 그려보는 방식으로 시각적인 기억을 강화하기도 하고, 늘 처음에서 시작하는 대신 곡 중간의 여러 지점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연습도 합니다.

뮤지션의 기억은 뇌 활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이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뇌의 해마 부분이 활성화되는데, 뮤지션의 경우에는 일반인에 비해 해마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또한 뮤지션의 해마에는 회질이 더 많습니다. 런던의 택시 기사와 같이 높은 기억력을 필요로하는 다른 직업인들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기억들이 사라지더라도 외운 악보는 뇌 속에 살아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치매로 가까운 주변 인물도 못 알아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도 다 잊은 첼리스트가 여전히 첼로 연주를 계속하면서 악보를 읽고 새로운 곡을 익히기도 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음악이 왜 다른 기억들과는 달리 뇌 속에서 살아남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이 부분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을 때 여러 가지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현상도 잘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오건 간에 일부 뮤지션들은 계속해서 악보 암기를 고집할 겁니다. 그리고 이들의 능력은 과학자들에게 좋은 연구 거리가 될 것입니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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