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볼] 물건을 고쳐쓴다는 것(1/2)
2015년 7월 7일  |  By:   |  문화  |  2 Comments

16세기 일본의 다도 명인 센노리큐(千利休)는 주군이 가져온 송나라 다기를 무시해 결국 분노한 주군이 그 다기를 깨버리게 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깨진 다기 조각들을 일일이 찾아 다시 복원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 멋있어졌구나.” 고대 일본에는 이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귀한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서 이들은 그저 한숨을 내쉬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과거의 작품이 사라지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기회로 여겼습니다.

깨진 도자기는 래커와 쌀풀로 붙였고 금과 은이 들어간 래커로 그 부분을 더 강조했습니다. 은가루나 금가루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수리된 부분은 비단으로 문질러 광을 냈습니다. 이렇게 손질된 그릇은 보통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다도 전문가 크리스티 바틀렛은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의 순수한 모습이 보여주던 허영과 깨질 수밖에 없는 그 운명의 강조 사이의 간극”이 그러한 가치의 상승을 가져왔다고 말입니다. 물건을 고치고 나면 그 물건이 고쳐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사실 덕분에 더 특별해집니다. 오래된 테디베어처럼 수리의 흔적은 곧 그 물건에 기울인 애정의 증표인 것입니다.

일본의 농민과 장인들이 입던 보로(ぼろ)라는 옷에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옷은 한 조각의 천도 낭비되지 않도록 모든 조각을 꿰매어 만든 옷으로, 수선이라는 행위가 곧 이 옷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어떤 옷은 마치 우화 속 테세우스의 배처럼 꿰매 붙인 조각들로 온통 뒤덮이게 됩니다. 또 어떤 옷은 아예 처음부터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도쿄의 패션 시장에는 이들의 흔적이 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보로에는 이들이 느꼈던 가난의 어려움 못지않게 미적인 측면이 존재합니다.

비록 수리된 도자기의 미학과 보로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이 두 요소에는 와비사비(わびさび)로 알려진 인생의 무상함과 불완전함의 가치에 대한 일본 전통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자기를 고치려면 우선 이것이 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마음을 비운 상태, 즉 ‘무심(無心)’을 뜻하며 예술가와 무인들이 추구하던 정신자세이기도 합니다. 바틀렛은 자신의 에세이 “고친 도자기가 있는 다도실(A Tearoom View of Mended Ceramic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연히 깨진 다기를 수리하는 행동은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더 심오한 존재를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수리된 도자기의 흔적은 곧 그 도자기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금이 간 형태는 그 금을 만든 힘과 그 힘을 일으킨 사건의 흔적입니다. 올해 초, 액스 마르세유 대학의 물리학자는 깨진 유리판에 생기는 별 모양의 흔적이 충돌 시의 사건에 대해 정보를 준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깨진 조각들을 모음으로써 그 순간은 보존됩니다. 센노리큐가 무시했던 그 다기의 경우처럼 수리된 도자기가 왜 깨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영원히 그 도자기를 따라다니며 전해집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다도의 예를 갖추며 차를 낼 때 이런 이야기는 적절한 화젯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나는 옷을 기워 입었습니다. 물론 보로에는 미치지 못하지요. 바지는 무릎 부분과 주머니 부분이 해지기 시작해 허벅지 부분으로 퍼졌습니다. 덧대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천 조각의 색깔에도 신경을 덜 쓰게 되었습니다. 더는 덧댈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옷을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한 학창시절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생태학적 감수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의도가 변하자 내 행색의 의미도 변했습니다. 꿰매고 덧댄 부분이 더 반항적으로 보일수록 내가 가난하고 인색한 사람으로 보일 위험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자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일본이 가진 수리의 미학이 잠재적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곧, 자신을 변명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실용적인 서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생각입니다. 하지만 서구도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능 퍼티인 수그루(Sugru)는 손으로 형태를 만들고 하룻밤을 두면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하는 실리콘 폴리머입니다. 수그루는 깨진 화장실 변기부터 찢어진 구두, 또 벗겨진 맥북 전원 코드에도 쓸 수 있습니다. (전원 코드에서 컨버터랑 연결된 그 부분이 항상 문제죠. 그나저나 이 전원 코드는 왜 그렇게 비쌀까요?) 수그루를 발명한 사람은 런던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아일랜드의 디자이너로, 이름은 제인 니 덜샤오인타이입니다. 그녀는 은퇴한 화학자와 같이 일하다 이 수그루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타임지는 이를 2010년 최고의 발명으로 꼽았고, 단지 물건을 고치려는 이들뿐 아니라 물건을 자신만의 것으로 변형시키려는 ‘해커’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수그루는 눈에 잘 띕니다. 이것이 수그루의 핵심입니다. 시중에는 평범한 흰색 수그루도 있지만, 사람들은 수리한 자국을 돋보이게 하는 선명한 원색을 선호합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치는 일을 불운 때문에 생긴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특별하고 즐거운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기를 더하고 있는 ‘급진적 뜨개질(radical knitting)’ 문화에서도 이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물 예술가 셀리아 핌은 사람들의 옷을 덧대는 것을 ‘타인과 짧은 접점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고친 흔적을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노력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핌은 그저 옷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담한 색과 패턴을 사용해 새로운 옷으로 변화시킵니다. 핌과 수그루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수리에는 실용적인 목적뿐 아니라 미학적인 목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당신에게,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수리하게 된다면 공개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에는 ‘아소비(あそび)’로 알려진 일본의 또 다른 미학적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는 16세기의 다도 명인 푸루타 오리베가 창안한, 놀이를 통한 창의적인 활동을 말합니다. 무언가를 고치는 일은 바로 이 원칙을 생활의 측면에서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도자기가 심하게 깨져, 다른 자기의 조각으로 채워야 할 때, 우리는 마치 옷에 다른 색깔의 천을 덧대듯 다른 색의 도자기를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렇게 직접 수선한 듯한 옷을 처음부터 사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오리베도 다도에 필요한 도구들을 ‘너무 완벽하지 않도록’ 일부러 조금 부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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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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