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도마 위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2015년 6월 15일  |  By:   |  한국  |  7 Comments

아버지이자 독재자였던 박정희가 1979년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휴전선 근처 북한군 동향에 특이사항이 없는지부터 살폈다는 일화는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된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고 이를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리더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도움이 됐고, 그런 이미지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도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많은 비판을 받은 데 이어, 올해 한국 사회를 덮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대응에서도 보건 당국이 자꾸 헛발질을 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리더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연일 곤두박질 치고 있습니다. 정치 평론가들은 경제가 어렵고 연금 개혁 등 산적한 과제도 많고,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로 인한 긴장감도 여전히 남아있는, 한 마디로 여러 모로 위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대통령리더십연구원의 최진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제때 필요한 정보를 알리고 정부의 지침을 전달하기에 너무 느리고, 대단히 폐쇄적입니다.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베일에 싸인, 사람을 피하는 대통령입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가 걱정입니다.”

지난달 20일 첫 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뒤 지금까지 145명이 확진 판결을 받았고, 이 가운데 15명이 숨졌습니다. (옮긴이: 뉴욕타임스가 기사를 송고한 뒤 확진 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 숫자를 원문에서 고쳐 썼습니다) 한국의 메르스 상황은 메르스가 처음 발병한 사우디아라비아 밖에서 일어난 메르스 사태 가운데 가장 심각합니다. 3,600여 명이 격리되거나 주의 관찰 대상이었고, 학교 2,900여 곳이 휴교했습니다. 경제도 메르스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서울의 대표적인 쇼핑 지역은 눈에 띄게 한산해졌습니다. 백화점, 극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곳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고,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로 내렸습니다.

메르스를 초기에 잡는 데 실패한 원인은 환자, 보호자, 간병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응급실 문화를 비롯해 한국적인 보건 의료 체계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금요일 갤럽 코리아가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3%까지 떨어졌습니다. 메르스 사태 이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안팎이었습니다.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박 대통령은 이번주로 예정됐던 방미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김지윤 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방미 일정 연기는 일관성 없는 이미지를 남기는 행보일 뿐 그다지 실익이 없어 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될지 모릅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해왔던 한국의 보수 언론들도 박 대통령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메르스 환자가 처음 확인된 초기에 재빨리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소통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게 비판의 골자입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2주가 지나서야 관계 부처 장관과 민간 의료 전문가들을 모아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메르스 관련 정부 부처 다섯 곳이 제대로 된 지휘 계통도 없이 각자 임시 방편으로 상황을 수습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태를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마치 1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한참을 우왕좌왕했던 정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확진 환자를 포함해 의심 환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정부는 관련 통계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어느 병원을 방문했고, 어떤 경로로 메르스가 확산된 것으로 보이며, 정부는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인지, 이 모든 주요 사안들이 한동안 전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피터 벤 엠바렉(Peter Ben Embarek)은 필요한 정보가 대중에 공개되지 않으면 대중들 사이에 두려움과 공포가 빠르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꼭 움켜쥐고 통제하는 동안 오히려 환자들이 방문했던 병원 이름 등을 대중에 알리려 했던 사람들 8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괴담을 유포해 불필요한 공포심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는 메르스 예방 수칙을 발표한 보건복지부는 한국에서 낙타를 피하라니 유니콘 타고 명동 가지 말라는 소리랑 뭐가 다르냐는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미디어 앞에 좀처럼 서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지난해 단 한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던 박 대통령은 올해도 지금까지 신년 기자회견을 단 한 차례 가졌을 뿐입니다. 청와대 관료 혹은 측근들과 논의할 때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제왕적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연설할 때 장관, 참모들이 열심히 메모를 하며 내용을 경청하는 보도사진을 낼 때마다 비평가들은 김정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적은 북한 군 장성들과 다를 게 무어냐고 비꼬곤 합니다.

경희사이버대학 정치학과의 안병진 교수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흡사 군주제에 어울리는 리더십 같다”며,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과연 대통령직이 어떤 자리인지 알고 있는 걸지 궁금해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기사를 위해 청와대에 공식적으로 질문을 하고 답변을 기다렸지만, 청와대는 답변과 일체의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속한 여당 새누리당은 여전히 자중지란에 빠진 야당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병진 교수는 메르스 사태로 정치력이 대단히 약해진 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 운영에 필요한 국내, 국제적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심지어 새누리당이 내년 총선 전에 박 대통령과 확실한 선 긋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정치학자들 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에서 찾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18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자이고,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 박 대통령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아야 했습니다. 1979년 아버지를 잃은 뒤, 박 대통령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정치 일선에 뛰어들기 전까지 18년간 사실상 은둔하며 지냈습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의 카리스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보수층에게 이내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박 대통령은 “저는 나라와 결혼했습니다”라는 말로 보수층의 환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이면에 여전히 박정희 독재 시절의 위계질서와 폐쇄적 리더십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게 여러 차례 위기 상황에서 큰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한때 우리가 박 대통령이 가진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게 드러난 겁니다.”

최진 원장의 말입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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