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웨이트리스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2015년 4월 23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이번주에도 나는 일터에서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라스베가스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난 후에는 팁을 세어보고 이 정도면 견딜만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여기는 사람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나는 주간에는 대학 강사로 임금 격차와 양성 평등을 수업 주제로 다루지만, 밤에는 라운지에서 칵테일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습니다. 식당 업계는 미국에서 성희롱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터입니다. 혹자는 그걸 다 알고 취직했으니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도 매일같이 고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 그때 현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 페미니스트의 영혼 따위는 팔아버렸다는 자괴감이죠.

일터에서 경험하는 성희롱은 다양합니다. 특정 신체 부위에 낯선 이의 손이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거나, 노골적인 농담을 듣는 일은 흔합니다. 전화번호를 주면 천 달러를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죠. 그러나 나는 고객에게 좋은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팁을 많이 받기 위해, 또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이런 일들을 웃고 넘기거나 참아냅니다. 이상은 높지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동네에서 월세를 내야 하는 현실과 그 이상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죠.

라스베가스라는 동네 자체가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성을 사고 파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고 도박과 음주가 일상인 곳이죠.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가스에 묻고 간다”는 진부한 말에서 드러나듯, 관광객들은 이 곳에 오면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되곤 합니다. 자신답지 않은 행동에 결과가 따르지 않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모두가 과감해지는 이 곳에서, 성희롱은 별로 큰 잘못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나도 각종 성희롱에 무감각해집니다. 주류 도매 업체에서 못생긴 여직원을 파견했다며 불평하는 남자 매니저를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그의 면전에서 뭐라고 한 마디 하느니 다른 여성 동료들과 눈빛으로 불평을 주고받는 편이 훨씬 편하니까요.

사실 네바다 주보다 상황이 더 않 좋은 곳도 많습니다. 네바다 주의 웨이트리스들은 그래도 법으로 정해진 최저 임금, 혹은 노조가 정한 최저 임금을 보장받습니다. 42개 주에서 최저 임금은 네바다 주보다 낮고, 고작 시급 2.13달러를 받고 일하는 경우도 있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성희롱을 참아내야 하고,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더 성희롱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단골 손님”의 데이트를 신청을 거절한 후 스토킹을 당하거나 승진을 시켜준다며 사무실로 불러 추행하는 상사를 만나면, “먹고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일”이 실질적인 위험이 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내가 시카고 교외에서 시급 4달러에 서빙일을 하던 시절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성별 간 뿐 아니라 계급 간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식당 종업원-손님 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팁 문화를 없애고 식당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죠. 그러나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팁이야말로 식당일의 큰 매력이니,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밤마다 나는 팁으로 받은 현금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귀가합니다. 주변 여성 동료들을 둘러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생존법은 각각 다릅니다. 웃어 넘기는 사람도 있고, 화를 내며 푸는 사람도 있죠. 일부는 성적인 매력을 활용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오히려 권력이라며, 나름대로 이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결론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현실이 조만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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