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은 어떻게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는가
2015년 3월 18일  |  By:   |  경제, 문화  |  9 Comments

*이 글은 프린스턴대학 역사학과 교수 케빈 크루즈(Kevin Kruse)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몇 주 전, 미 공화당 지지자들 중 57%가 미국이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라고 천명하는 것을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2007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55%가 이미 미국이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인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종교에 관련된 논의가 오늘날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사람들이 미국이 만들어질 때부터 기독교 국가였다고 오해하는 것은 있을법합니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어떤 슬로건이나 세레모니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세레모니나 슬로건이 등장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1930년대로 돌아가보면, 당시 기업인들은 대공황 이후 사회적으로 지탄 받으며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들이 운영하고 있던 사업체들은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통해서 공격받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명예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기업인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을 썼지만 특별히 효과를 거둔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본주의를 기독교의 시녀, 혹은 보완물(handmaiden)라는 개념을 널리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영혼이 통하는 동반자로 묘사하고 특히 뉴딜 정책이 추진하고 있는 “서서히 진행되는 사회주의”의 대항마로서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함께 힘을 모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신념과 자유 경제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었지만 이 이후로는 그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 자본주의 리더들은 기독교의 교리와 뉴딜 정책을 통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시장 논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자본가들은 이러한 캠페인을 저극 지원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명석한 결정 중 하나는 바로 성직자를 대변인으로 고용한 점입니다. 성직자들은 여론에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 리더들은 성직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파이필드(James Fifield) 목사는 이러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적극적인 대변자 1세대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제일 연합 교회(First Congregational Church)에서 몇몇 백만장자들을 앞에 놓고 연설하면서 그는 성경을 읽는 것은 “물고기의 살점을 먹기 위해서 뼈를 발라내는 것과 같이 성경의 모든 구절이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재산이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신약 성경의 구절을 무시했습니다. 대신, 그는 기독교와 자본주의를 뉴딜의 “비기독교적인 국가 통제”에 대항하는 신념으로 묘사했습니다. 그가 1935년에 세운 전미 조직인 “정신 총동원령(Spritual Mobilization)”을 통해 그는 “신아래 자유”라는 이념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1940년대 후반에 파이필드 목사가 이끄는 그룹은 월가지와 주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서 신앙의 복음과 자유 시장 경제를 적극 전파했습니다.

아브라함 버라이드(Abraham Vereide) 목사는 기독교적 자유주의를 전미 기도 그룹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파시켰습니다. 1930년대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의 파업에 처한 기업인들에게 설교를 한 것을 계기로 버라이드 목사는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만날 수 있도록 한 아침 기도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1942년에 버라이드 목사의 영향력은 의회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하원과 상원 멤버들에게 아침 기도 모임을 시작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빌리 그래험(Billy Graham) 목사입니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던 1950년대 초에 그는 기업 이익을 너무나 열정적으로 대변한 나머지 영국의 한 신문은 그를 두고서 “대 기업 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그에 따르면 에덴의 동산은 “노동 조합 비용, 노동 조합 지도자, 뱀, 그리고 질병”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경제 행위에 있어서 모든 종류의 “정부 규제”를 “사회주의”라며 비판했습니다. 그는 1952년에 미 의회로 가서 전국적인 차원에서 종교 서비스와 관련된 기념일을 제정하도록 촉구했고 같은 해에 미 의회는 연간 전미 기도 일(National Day of Prayer)이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그는 “만약 대통령 선거에 나가고 싶어 하는 후보자라면 신과 성경에 기대어야 하며 그렇게 하면 당선될 것이다”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래험 목사의 예측을 실현시켰습니다. 그는 선거 운동 내내 “자유를 위한 위대한 십자군 전쟁”이라는 모토를 사용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후보로서 선거 운동 기간에는 기독교 자유주의자 그룹의 도움을 받았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이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자유주의자들과 기업인들이 없애려고 하는 뉴딜 국가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리석은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떠한 정당이 사회보장연급, 실업보험, 그리고 노동법이나 농업보조 프로그램등을 없애려고 시도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정치 역사에서 그 정당의 이름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여야 할 뿐만 아니라 계속 그래 왔다고 듣습니다. 이들은 미국이 “신의 가호아래 한 국가”라고 믿게 됩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탄생할 때 부터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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