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셰익스피어: 최초의 위대한 심리학자(2)
2015년 2월 10일  |  By:   |  과학  |  3 Comments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충격적인 반전을 이야기합니다. “하늘의 천사들을 눈물짓게 하는구나(as make the angels weep)”에서 우리는 희극과 부조리가 비극과 연민으로 급작스레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눈물”이라는 단어 하나로 독자와 관객들은 전혀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보여진 원숭이 같고, 술책을 저지르는 그저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결코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댓가를, 천사들 조차도 눈물짓게 만드는 그런 비극을 인간에게 강요한다는 것을 셰익스피어는 보여줍니다. 이 문장이 이런 극적인 효과를 가지는 이유는 희극에서 비극으로의 전환이 단 두 단어 “천사들을 눈물짓게(angels weep)”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특히 이 전환이 문장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문장의 마지막에 반전을 줌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고급스런 글쓰기 기법은 정보로 가득찬 문장이나 뉴스로서의 가치가 가득한 문장들에 사용됩니다. 특히 “눈물(weep)”이라는 마지막 단어는 그 앞의 모든 희극적 분위기를 날려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우스꽝스럽고, 쉽게 현혹되며,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며, 한심한 주장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은 결국 끔찍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사벨라의 이런 인간 본성의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이 커다란 고통을 야기한다는 비극적 이해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의 인용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동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주요 관점을 보여줍니다. 도덕주의자의 관점은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이는 그 행동을 스스로 선택 했으며 따라서 그를 순수한 악이라 간주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절대 이해될 수 없고 따라서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자의 관점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행동의 원인을 찾습니다. 과학자들은 판단하지 않고, 따라서 눈물을 흘리지도 앖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 이유를 묻습니다. 도덕주의자들이 피해자와 같은 관점을 가진 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그 고통이 불필요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피할 수 있는 것이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그 반대로, 가해자의 관점에 서게 됩니다. 이들은 그 악한 행동을 이해하려 하며 그 행동의 배경을 찾습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말은 가해자들이 종종 내뱉는 말이며, 가해자 역시 일반적인 인간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여기에 동조하는 듯 보입니다. 물론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들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고 이는 자신이 무죄로 방면되길 원하는 가해자와의 목표와는 다르지만, 이들의 분석적인 태도는 종종 겹치게 됩니다.

이 두 관점들, 즉 가해자와 과학자, 그리고 피해자와 도덕주의자의 관점들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모든 분석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흥미롭게도 이 두 관점을 극적으로 오갔음을 보게 됩니다. 인간을 터무니없는 술책을 저지르는 원숭이에 비유하는 것은 과학자의 관점이며 천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궁극적인 도덕주의자들의 관점입니다.

비록 과학자들의 관점이 종종 냉정하고 비도덕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책에서 이를 통해 우리는 도덕주의자보다 더 도덕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비극에 대해, 비록 그 눈물이 전적으로 합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분석적 능력을 이용해 인간이 어떻게 그런 파괴적인 행동을 저질렀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도덕주의적 충동이 때로 더 큰 폭력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세상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기반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때로 우리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안젤로는 왜 클라우디오를 사형시키려 했을까요? 그로 인해 그가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법을 실행하려 했고 따라서 도덕적 주체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시대가 가진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한 것은 순수한 악이나 나쁜 동기라기보다는 그저 그 자신의 무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능력이 그로 하여금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이런 수많은 안젤로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도덕적 목적, 예를 들어 개인의 복수, 정의의 구현, 유토피아나 신의 세상을 앞당기려는 노력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를 세어본다면 그 수는 비도적적인 약탈이나 착취로 죽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도덕주의가 이롭기 보다는 해로운 이유이며 도덕적 판단을 법제화 할때 그 행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도덕주의자로써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 번영을 이룰 책임이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도덕철학, 이성적 법리학, 법학,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과 같은 분석적 사고능력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할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그런 행동을 억제할 수 있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연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의 한계를,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불합리한 판단에 휩쓸리기 쉬운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판단할 때마다 – “하찮고 덧없는 권위로 감싼” –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틀렸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천사들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상상할 수 있을 뿐, 천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부로

(애틀랜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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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봉춘

    노자께서 도에 관해 이른 말 중에 ” 모든 사람들이 미(美)를 아름답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추악(醜惡)의 관념이 나타나고, 선(善)을 착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의 관념이 나타난다 ” 고 한 말이 있는데 글에서 말하는 도덕주의자의 한계와 통하는 바가 있네요. 결과적으로 그 분은 ‘무위’라는 태도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과학적 사고의 기본을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뭔가 고수들은 모두 통하는거 같아요

    • jpg

      솔까말, ‘무위’하고 이글에서 말하는 ‘과학적 분석주의’하고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 머릿속이 꽃밭

        jpg님과 제가 새긴 ‘무위’의 정의가 다르기에 그렇겠지요. 전 본문글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 뜻으로 첨언했을 뿐이니 맞고 틀리고가 중요해 보이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