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 도서의 등장, 교육계의 반지성주의
2015년 1월 2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저는 최근 애리조나 주 투싼의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책에 제 연구가 언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비판적 인종 이론: 개론(Critical Race Theory: Introduction)>이라는 책이죠.

애리조나 주는 “특정 인종이나 계급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거나, “특정 인종의 학생을 위해 고안된 내용”이거나, “미국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책을 학교에서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애리조나 주에서 금지시킨 인종학 관련 서적들은 한두 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여름 방학 추천도서 목록이 될 만한 분량이죠.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여러 금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인종학 관련 수업을 교과 과정에서 몽땅 삭제하는 결단을 내린 투싼 교육위원회의 한 위원은 언론에 등장해 자랑스럽게 이 수업들을 직접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로자 파크스(Rosa Parks)를 로자 클라크라고 칭하는 무식을 뽐내기도 했죠.

애리조나 주가 예외적인 경우인 것도 아닙니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교사와 교사 노조, 나아가 학계 자체에 대한 반감이 깊어지면서 금지 도서 지정과 교사 해고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한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자경단의 손에 숨진 흑인 청년 트레이본 마틴을 위한 모금 행사를 열겠다고 학교에 허락을 구했다가 해고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사는 학교로부터 “가르치라고 고용한 것이지, 사회 운동을 하라고 고용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교사가 있던 도시는 학교마다 “비용 절감”을 담당하는 관리인이 배치된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 법원의 판결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에는 한 고등학교 교사가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가장 많이 도전받은 책 100선” 리스트를 보고 검열에 대한 에세이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줬다가 해고되었는데, 법원은 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리스트에서 문제가 되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등 이었죠. 학교의 해고 사유는 이 교사의 수업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 공동체의 문제와 관계된 사안”을 다루고 있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심을 학교 고용인으로서 도리보다 앞세운 것”이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학문적 자유라는 것은 교육 시스템이 누리는 권리이지, 교사 개인이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와 같은 반지성주의 부상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대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권 의식입니다. 어떤 기자는 한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 다섯 편의 제목만 보고서, 누가 이런 논문을 읽겠느냐며 그 대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분열을 조장하는” 미국계 아프리카인 관련 연구 프로그램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눈과 귀를 가린 “백인 게토식” 편협함입니다. 이런 태도가 만연하니, 미국사의 중요한 인물인 로자 파크스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자가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반지성주의에 맞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휴스턴 커뮤니티 칼리지의 토니 디아즈 교수는 금지 도서 지정에 저항하여, 미국 남서부를 돌며 독서모임을 조직해 독서회를 열고 “지하 도서관”을 설치해 금지 도서를 기증받고 무료로 배포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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