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와 건강에 대한 ‘설’들, 괴담인가 과학인가?
2014년 12월 18일  |  By:   |  과학, 문화  |  4 Comments

“nuke”라는 영어 단어는 원래 핵무기로 공격한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그런데 남은 음식을 다시 먹기 좋게 데우려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릴 때도 같은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실제로 음식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물론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전자레인지가 온 부엌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고 음식을 엄청난 발암물질로 바꿔버리는 것처럼 묘사하고 혼비백산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이런 내용을 검색해보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온갖 설들이 끝도 없이 나옵니다. 그런 우려대로라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전자레인지는 벌써 수십 년 동안 각 가정의 부엌, 직장의 탕비실, 호텔방, 심지어 수많은 음식점을 지켜왔습니다. 뜨거운 것이 눈에 보이는 가스레인지 불이나 전자오븐과 달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전자레인지는 얼핏 마법의 기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분만 돌리고 나면 음식을 먹기 좋게 데워놓는 전자레인지는 아주 간단한 물리학의 법칙을 활용한 기구일 뿐입니다.

전자기파(electromagnetic)라는 파장이 전자레인지의 핵심입니다. 전자관(magnetron)에서 만들어진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 안에 둔 음식에 흡수될 때까지 유리, 그릇 등 다른 물질을 통과하며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음식에 흡수된 전자기파는 음식이 함유하고 있는 수분 입자를 진동시킵니다. 많은 수분 입자가 동시에 떨리면 열에너지(thermal energy)가 생겨나 그 에너지가 음식을 데우는 겁니다. 그래서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음식은 전자레인지에서 특히 조리가 빨리 되는 편입니다. 전자기파가 영양소를 파괴한다는 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빠른 시간 내에 원재료를 최대한 보존하는 조리방법인 전자레인지가 오히려 영양소를 보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채소에 있는 비타민을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을 가하지 않고) 날것으로 먹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열을 가해) 조리를 해야 한다면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는 것이 비타민을 보존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입니다.

전자레인지에서 새어나오는 전자기파는 어떨까요? 전자레인지가 사용하는 전자기파인 마이크로웨이브는 주파수가 낮기 때문에 DNA 나 세포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비전리 (non-ionizing) 전자기파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기파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라디오, TV, 컴퓨터 화면, 그리고 식당의 적외선 램프에서도 이런 대역의 전자기파는 늘 나오고 있습니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양은 기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다 합쳐도 5밀리와트 정도로 이마저도 전자레인지 반경 5cm 이상을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전자레인지의 여닫이 문에 막혀 이 전자기파는 기기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전자레인지 제조사들은 규정에 따라 특정 수준 이상의 전자기파가 기기 밖으로 배출되면 전자레인지 작동을 멈추는 안전장치를 함께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전자레인지에 관한 연구들 가운데 전자레인지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가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사례나 근거들이 하나같이 허점투성이였습니다. 반대로 최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UC Davis) 암센터의 펠튼(James Felton) 박사 연구팀은 (전자레인지가 아니라) 육류를 팬에 굽거나 튀길 때 발암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아민(heterocyclic amines)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육류를 팬에 굽기 전에 아주 짧게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나오는 육즙을 모두 제거하고 요리했더니, 발암물질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덧붙였습니다. (Take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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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추천: 이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