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에드워드 O. 윌슨의 새 책 “인간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2014년 12월 4일  |  By:   |  과학  |  2 Comments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며, 명민한 두뇌를 가진 인간은 과연 어떻게 지구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사람들은 근대 전까지 신화와 영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놀라운 이론은, 오늘날의 대부분의 생물학자들로 하여금 창조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주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실제로 우리를 얼마나 위로해 주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지요.

에드워드 O. 윌슨은 이런 인간의 기원에 관해 가장 꾸준하고 명료하게 주장하는 생물학자입니다. 20권 이상의 책을 썼고,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과학 분야와 대중을 위한 분야에 대한 공로로 수많은 상을 받은 85세의 노과학자인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이룩한 것들에 만족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인간의 세상에 대한 매혹을 말하는 “생명애(biophilia)”라는 단어를 유행시켰으며 곤충학, 생물 다양성, 사회생물학, 도서 생물지리학, 환경 심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그의 새 책 “인간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에서, 평범한 독자들에게 인간은 다른 여느 수백만 종의 생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별한 존재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는 이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최근 Pew 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약 2/3의 미국인이 아직도 이런 진화적 관점을 믿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윌슨은 올해의 전미 도서상 비소설 분야에 오른 이 얇은 책에서 이런 진화에 대한 불신과 종교적 믿음이 바로 진화의 산물임을 말해줍니다. 그는 다윈과 같은 방식으로, 자연선택이 개체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도 있었음을 주장합니다.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방인을 강하게 배척한 집단일수록 더 크게 번식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야말로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강한 내부결속의 힘이었습니다.

윌슨은 신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가치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들어주는 종교의 장점 또한 언급합니다. 그는 앞서 “생명의 편지(The Creation: An Appeal to Save Life on Earth)”(2006) 에서는 성경에 내재한 윤리적 책무가 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임을 말하며 이 책을 남부 침례교회의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기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는 여전히 진행되는 종교분쟁을 의식한 듯 “주요 종교는 비극적이게도 불필요하고 끊임없는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들은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물일 뿐이다. 종교는 패거리주의라는 인간의 단점을 상징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패거리주의는 윌슨이 “구석기시대의 저주: 수렵-채집사회에서는 효율적이었지만 현대의 도시화되 과학기술사회에서는 장애가 되는”이라고 묘사하는 인간의 특징입니다. 그는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인간의 특성들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인종주의 성향, 산아제한을 거부하는 본능, 자연을 파괴하는 습성 등을 언급합니다.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 종이 된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말 운명일까요? 자신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낙천주의자”라 부르는 그는 이 질문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아니라고 답합니다. 우리는 진화가 우리에게 준 또다른 선물인 “사회적 지성(social intelligence)”을 이용해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이와 소통하고, 협동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은 주로 흰개미와 개미 같은 곤충들에게서만 발견되는, “생물의 역사에서 겨우 스무 번 정도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는 비록 그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개미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능의 노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의 논란이 되었던 초기작인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1978)”에서 그는 “인간의 행동에는 강한 유전적 요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을 바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곤충과 달리, 우리는 행동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더 적게 낳을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낮출 수 있으며, 나무를 베는 속도보다 더 빨리 심을 수 있고, 사람을 그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의 성격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하기 위해, 윌슨은 이 책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는 까다로운 개념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그것도 챕터 하나의 제목으로 말이지요. 그 단어는 바로 “자유 의지”입니다. 그는 뇌과학자들이 곧 의식의 물리적 기반을 파악할 것이며,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는 물질적 과정을 밝힐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곧 물질적 과정의 부수적 효과에 불과하며,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인과관계의 결과라면,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고 윌슨은 암시합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확신은 생물학적인 적응”이라고 윌슨은 주장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운명론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계속 인간이라는 생물을 존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이 유물론적 우주에서, 그는 “궁극적인 현실에서” 따질 경우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계속 주장하는 대로,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지구와 생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편견을 극복하고 전쟁을 끝내자고 그렇게 독자들을 설득하는 일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떻게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의 행동과 믿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일까요?

이런 분명한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윌슨이 그의 화려한 이력에 기대어 쉬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인간을 파멸로부터 구하기 위해 우리의 이성과 상상력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를 감동하게 만듭니다.

(워싱턴 포스트)

원문 보기